내관이 급히 내전에 있던 진왕을 찾았다.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대왕마마, 급한 전갈이옵나이다.”“무슨 급한 전갈이 있기에 이리 호들갑인고?”내관이 머리를 조아리며 다급하게 말했다.“상국께서 여씨춘추를 공포했다 하옵나이다.”“뭐라 여씨춘추를 공포해? 소상히 고하렷다.”진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상국께옵서 여씨춘추를 성문위에 내걸고 현상금 1천금을 내걸었다 하옵나이다.” 그랬다. 여불위는 여씨춘추를 진나라 수도 함양 성문위에 내걸고 현상금으로 1천금을 내걸었다. 그리고 제후들과 빈객들에게 알리는 방을 붙였다.
“그래도 과인은 법을 칼날처럼 세워야 통치가 제대로 될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날처럼 혼란한 시기에는 그것이 최상의 통치방법이 아닐까 합니다.”진왕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여불위도 마찬가지였다. 한 치의 양보 없이 자신의 의중을 진언했다.“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덕을 베풀고 의를 행하는 것이 가장 좋사옵니다. 이렇게 하면 상을 주지 않아도 백성들이 잘 따르게 될 것이며 벌을 내리지 않아도 사악한 행위가 그치게 될 것이옵니다.”진왕이 눈초리를 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진왕의 숨소리가 조금은 거칠어지고 차를
한편 여불위는 어느 왕보다도 더 넉넉한 모습으로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었다. 수시로 영을 내려 자신의 후덕함을 만천하에 알리게 했다.“죄인을 사면하고 선왕시대에 공을 세운 공신들에게 상을 내려라. 또한 그 친족들에게 덕을 베풀고 백성들에게 널리 은혜를 베풀도록 하라.”그의 영은 진나라 고을마다 나붙었고 그를 칭송하는 분위기가 날로 높아갔다. 진나라에서 여불위는 곧 왕이나 다름이 없었다. 모든 전권을 휘둘렀다. 하지만 진왕의 나이가 들면서 여불위의 이란 통치행위가 못마땅했다. 그가 내리는 영들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황공하옵나이다.”초란은 생땀을 흘리며 앉아 있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요리 조리 머리를 써보지만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대왕의 눈에서 벗어난다면 그길로 죽음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궁녀에게 희망이 있다면 대왕의 은총을 한번이라도 더 받는 것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려서 은총 받을 기회가 왔는데 그것을 수포로 돌리자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안타까운 정도가 아니라 죽음이 기다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과인이 묻는 것은 다름 아니라 궁성에서 오가는 얘기가 듣고 싶다는 말이로다.”그제야 초란이 신중하
“네 이름이 뭔고?”“소녀 초란이라 하옵나이다.”“초란이라. 이름 한번 청초하구나.”진왕은 계집을 촘촘히 살피며 말했다.“이리 가까이 와서 술을 한잔 올려 보거라. 내 너의 그 백옥 같은 손으로 올리는 술을 한잔 들고 싶구나.”진왕은 초란이 올리는 잔을 연거푸 들이키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하고 눈을 지긋이 감아 무거운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초란은 그럴 때마다 진왕에게 잔을 올렸다. 내실에서는 술따르는 소리와 약간의 숨소리 그리고 진왕의 긴 한숨 소리만 들렸다. “대왕마마. 외람된 말씀이오나 여쭈어도
“오늘은 어떤 계집인고?”내관 조고를 불러 물었다.“대왕마마. 옥체를 보전하시옵소서. 매일같이 궁녀들과 노니신다면 옥체가 크게 손상될까 우려되옵나이다.”내관 조고가 고개를 조아리며 조바심 난 목소리로 말했다.“허 그놈, 어떤 계집이냐고 묻질 않느냐?”진왕은 큰 덩치에 걸맞게 너털웃음을 내보이며 말했다. 그는 덩치만큼이나 담대했다. 키가 6척 반에 달했고 눈이 부리부리하며 코는 매부리코에 입은 호랑이 입을 하고 있었으므로 누구나 그의 앞에 서면 오금이 저릴 만큼 위압감을 주었다. 게다가 성질이 급한 관계로 신하들은 그와 단둘이 있는
내관이 여불위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소상히 고할 수 있었던 것도 삼경이 지난 뒤였다. “무어라? 상국의 집에서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냐.”진왕은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그러하옵나이다. 오늘 모인 문객의 수가 3천을 헤아렸다 하옵나이다.”“괘씸한 것들......”진왕은 미간을 찌푸리고 혼잣말을 했다. “내일 소상히 진상을 파악하여 올리렷다. 다만 이 사실은 비밀로 하렷다. 알겠느냐?”“여부가 있사옵니까? 대왕마마.”다음날 새벽 내관이 침전을 찾았다. 당시 진왕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던 내관은 조고였다. 내관 조고는 전날의 상황을
이때가 기원전 239년. 진왕이 권좌에 오른 지 벌써 팔년의 세월이 지나 스무 살이 되던 때였다.진왕은 상국 여불위의 집에서 ‘여씨춘추’ 확립을 축하하는 연회가 있었다는 소식을 새벽녘에야 접했다.그는 초저녁부터 침전에서 처음 본 궁녀와 함께 뒹굴고 있었다. 헐떡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그녀를 안고 뒹굴고 업고 뒤치락거리던 중이었다. 침전 문밖으로 간간이 말소리와 함께 묘한 비음이 섞여 나왔다. “대왕마마. 너무 거치오니다.”“가만히 있으라. 내 너에게 지정을 베풀고자 하질 않느냐?”이불깃이 서로 비벼지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침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술기운이 오르자 여불위는 무희들을 불렀다. 비단옷을 입은 무희들은 여불위와 좌장들을 오가며 그들의 흥취를 더했다. 짓궂은 문객들은 무희들과 함께 어울리며 바람에 날리는 비단 깃 사이로 무희들의 젖무덤을 만지기도 했다. 혹자는 만취하여 입술을 탐하기도 했다. 손버릇이 고약한 문객들은 지나는 모든 무희들은 잡아 만지고 들쑤셨다. 그럴 때마다 좌중이 웃음바다로 변하기 일쑤였다.“상국폐하. 폐하께서 윤허하시면 내 저 무희를 안고 이 자리에서 업음질을 할까 하옵나이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술에 만취한 가객이 상
물론 여불위의 탁월한 능력도 한몫을 했다. 여불위는 다른 귀족들과 달랐다. 일반 귀족들은 적당히 이들의 능력과 머리를 빌려 자신의 명예를 높이는데 그쳤다. 하지만 여불위는 그들의 능력을 빌리고 그것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일에 매진했다. 중부 여불위에게 발탁되면 곧바로 진나라 조정에 나아가 큰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여불위는 그들에게 천하를 어떻게 통일할 것인가 혹은 통일 후 중국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를 연구하도록 했다. 또 그것을 가지고 함께 토론했다. 그 내용을 글로 집필 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
여불위는 신하로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인 승상이란 자리도 흡족하지 않았다. 다른 직위를 찾아볼 것을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찾은 직위가 상국이었다. 상국은 중부가 되는 것이었다. 중부는 선왕의 형제를 말하는 것으로 신하로서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위치였다. 중부란 호칭은 춘추시대 제환공이 관중을 높여 부른데서 이른 것이었다. 제환공은 관중의 인물됨이 출중함을 알고 그를 불러 관직에 임명하려 했다. 그러나 관중은 이를 수락하지 않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제환공은 그 연유를 물었다.“신분이 비천한 사람은 존귀한 사람을 다스릴 수
우여곡절 끝에 영정은 13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게 되었다. 그를 진왕이라고 불렀다.그의 대관식은 조촐하게 치러졌다. 장양왕의 상을 치르고 난 뒤 대내외에 영정이 왕위에 즉위했음을 공포하는 정도에 그쳤다. 명분은 장양왕이 갑자기 서거한 것을 진왕이 슬퍼했으므로 화려하게 대관식을 치루지 말라는 어명이 있었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진왕은 말이 왕이지 허수아비나 다름이 없었다. 모든 것은 여불위와 태후 조희가 맡고 있었다. 그들은 어린 왕을 앞세우고 뒤에서 모든 정치를 주관했다. 조정의 대신을 인사하는 일에서부터 신임 관료를 뽑는 것이나 국
왕후 전을 물러나온 여불위는 자신의 집으로 최측근 심복 중랑을 불렀다. 그리고 단 둘이 마주앉아 주안상을 사이에 두고 술잔을 나누었다. 누구도 근접치 말 것을 가솔들에게 명했다. 둘은 밤이 늦도록 술을 푸짐하게 마셨다. 여불위는 술을 마시는 동안 고래로 숱한 왕들이 비명횡사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떤 왕은 독극물에 암살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독침을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털어놓았다. 자연스런 분위기였지만 그날 밤 이야기는 왕들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또 그 당위성에 대해서도 간과하지 않았다. 물론 왕의 입장에서는 더
혹시라도 모를 일이었다. 문밖에 있는 나인들이 자신들의 행태를 엿듣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승상은 길게 숨을 몰아쉬며 왕후를 조심스럽게 밀쳤다. 이어 큰 눈으로 문을 가리켰다.그제야 왕후가 승상의 눈치를 읽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나직하게 말했다.“뉘라도 문밖에 있으면 중문 밖으로 물리거라. 내 승상과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느니라.” 그제야 문밖에 섰던 시종이 종종걸음으로 중문을 나서는 소리가 들렸다. 왕후궁 내전에는 승상과 왕후 단 둘뿐이었다. 청춘 남녀는 아니었지만 한때 애첩으로 살을 섞으며 살았던 지간이라 불길이 일었다. 승상은
태풍이 지나고 나면 고요가 찾아오는 것이 이치였다. 궁내에 피바람이 한차례 불고난 뒤 술렁이든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모든 것이 조용했다. 조용하다는 것은 변화가 없는 것이다. 평화이기도 하지만 따분함이기도 했다. 봄날의 햇살처럼 따사로움만 정원에 가득 고였다. 몸이 스멀거렸다.왕후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조희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녀는 9년의 세월동안 영정만을 바라보며 조나라에서 어려움을 감내했건만 진나라로 왔을 때 그를 맞은 것은 왕후란 허울 좋은 이름뿐이었다. 자초는 왕의 신분이었으므로 숱한 궁녀들과 어울리며 왕후인 조희를 찾는
장양왕 자초는 그동안 여러 명의 새 비빈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물론 그들과의 관계에서도 공자가 태어나고 그것은 태자 영정의 왕위 계승을 위협하고 있었다. 선비들은 왕후가 본래 여불위의 애첩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왕후로서의 정통성에 이의를 제기했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한번은 함양성 담벼락에 묘한 글귀가 나붙었다는 전갈이 궁으로 전해져 왔다. “뭐라고? 어떤 극악무도한 놈이 감히 태자마마의 신변에 대해 그따위 글을 써놓았단 말이냐.”승상 여불위가 대노하며 고함을 질렀다.“함양성을 다 뒤져서라도 그자를 잡아 들여라.”여불위는
동주군은 다른 제후국들과 어울려 진을 치려고 도모하는 등 손톱 밑의 가시처럼 굴었던 것이다. 여불위는 이를 평정하고 곧이어 군사를 일으켜 한나라를 정벌토록 하는 등 자신이 군왕에 버금가는 위치임을 내외에 과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화는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치고 있었다. 장양왕이 즉위하고 자신은 천하를 얻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을 때 자초가 자신에게 진나라의 반을 나누어 주겠노라고 약속을 했으므로 내심 그것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승상의 자리와 하남 그리고 낙양의 10만호 식읍을 얻는데 그쳤다. 여불위
태자궁을 나온 여불위는 곧바로 몇 안 되는 심복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저간의 사정을 말했다. 그들에게 있어 태자의 왕위 계승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사느냐 죽느냐는 문제가 그 일에 달려 있었다.여불위와 그의 심복들은 지혜를 짜낸 결과 효문왕을 독살시키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것만이 불길하게 일고 있는 조정의 여론을 잠재우고 아울러 자신들의 뜻을 세우는 길이었다. 여불위는 그날 회의에 참석한 궁중 내시를 시켜 왕의 음식에 극약을 넣게 만들어 효문왕을 독살시켰다. 이런 사실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효문왕이 죽자 조용하던 조정이 다
그제야 효문왕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알았소. 다시 태자문제에 대해 논하지 않겠소. 이리 가까이 오구려.” 그제야 화양부인이 얇은 미소를 머금으며 누워있던 효문왕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효문왕은 이미 기력이 쇠하였으므로 기운을 되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때문에 늘 화양부인의 아름다운 몸매를 눈으로 감상하는 것과 부드러운 속살을 감지하는 것으로 흡족해 했다. 아울러 화양부인의 얇은 손끝으로 자신의 굳어버린 몸 구석구석을 만져주길 기대했다. 화양부인의 손놀림은 어떤 젊은 궁녀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었다. 효문왕은 화양부인이 자신의 몸
자초가 권좌에 오르는데도 곡절이 많았다.아버지 효문왕은 상왕 소양왕이 오랜 기간 권좌에 있었으므로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다 소양왕이 붕어하자 그제야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효문왕 자신도 오랜 지병으로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한 상태였다. 자리에 누워 정사를 돌볼 지경이었다. 그래서 왕위에 오르고도 즉위하지 못하다 정식으로 즉위한 뒤 3일 만에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이렇게 된 데는 여불위의 음모가 숨어있었다.진나라로 돌아온 여불위는 자초가 태자가 되도록 하는데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전 재산을 안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