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약을 한 움큼씩 털어 넣는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이 곳 저 곳에 탈이 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약을 먹기 시작한 지 벌써 몇 년째다. 이제까지는 큰 탈 없이 그냥저냥 지내왔는데 요즘 들어 다소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약으로 그럭저럭 조절되던 증상들이 요사이는 검사할 때마다 걸핏하면 비정상 범위로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그런 검사결과를 받아들 때마다 약을 먹어도 제대로 조절되지 않을 만큼 병증이 깊어진 게 아닌가 싶어 신경이 쓰이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약을 먹기 시작할 때부터 바짝 정신 차리고 관리
일본어를 배우는 중이다. 작년 초에 시작했으니 얼추 2년이 다 되어 간다. 어딘가에 필요해서, 무슨 대단한 결심을 하고 시작한 건 아니다. 단지, 매양 그 날이 그 날 같은, 변화 없이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에 혹시 신선한 자극이 될까싶어 무작정 시작해 본 일이다. 어느 한 편으로는 몇 달 간격으로 아버님, 장모님, 동생을 차례로 여의면서, 한 해 동안 세 번의 장례를 치르느라 가슴 한 구석에 무지근히 자리한 채 쉽게 떨쳐지지 않는 슬픔, 안타까움, 허망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알게, 모르게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뭔가 새
금연한지가 꽤 됐지만, 금연하기 전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골초였다. 하루에 한 갑 반 내지 두 갑이 기본이었고, 골치 아픈 일이 있거나 저녁에 회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세 갑 이상을 피워댈 정도였다. 술은 썩 즐기지 않는 편이었지만, 담배만큼은 지나칠 정도의 애연가였다. 아내의 밤낮 없는 성화에도 갖은 변명으로 때워 넘기며 줄기차게 담배를 피워댔다. 담배피우는 동안에는 단 한 차례도 금연을 시도해 본 적조차 없이, 주구장창 담배를 피워 댄 것이다. 새로운 담배가 나오면 남 먼저 그 담배를 구해 피워보는 것을 큰 재미로 여길 만큼 정말
이제 지공거사가 되었다. 나이 든 사람들의 얼마간은 자조 섞인 표현대로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사람’이 된 것이다. 전혀 의식 않고 지내다가 얼마 전 친구와 같이 지하철을 타는 바람에 어느새 나도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경로우대 대상이 되어 있음을 알았다. 지하철 토큰을 사려 지갑을 꺼내다가 친구의 귀띔에 지갑을 도로 챙겨 넣고는, 자동매표기의 어딘가에 주민등록증을 올려놓으니 토큰이 그냥 나왔다. 그 토큰을 집어 들고 개찰구를 통과하자니 공연히 겸연쩍고 기분이 아주 묘해졌다. 갑자기 확 늙어버린 것 같은, 까닭 없이 서글퍼지는, 그러
나이 들어가면서 건강을 염려해서인지 가급적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추세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모임들이 고깃집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고기를 먹게 된다. 고기를 먹을 때 마다 예외 없이 과식을 한다. 언제 먹어도 맛있기 때문이다. 이 맛난 고기를 건강 때문에 피하고 있음이 배부른 행세를 하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고리타분한 얘기지만, 우리 어릴 적에는 1년에 서너 번 고기 맛을 볼까 말까할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는데, 이제는 건강을 이유로 그 귀한 고기를 피하고 있으니 배부른 행세가 아니면 뭐겠는가. 이 맛난
집 근처에 백화점과 대형 마트가 두루두루 있어 어지간한 장보기는 다 그 곳에서 이루어지는 편이다. 가급적 무공해나 자연친화적으로 가꾼 먹거리를 챙기려 하는 아내는 가끔씩 그런 매장을 찾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를 통해 일상 용품이나 반찬거리를 장만한다. 어쩌다 한 번씩 아내를 따라 가서 카트를 밀고 뒤쫓다 보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이렇게나 많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물건들 중에 내게 필요한 것은 기껏해야 아내 눈치를 보아가며 카트에 골라 싣는 주전부리꺼리나 면도용품 정도이고, 그
한 겨울의 수목원은 고요하다. 고요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로 적막하다. 잎을 다 떨군 채 맨 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나무들 누렇게 빛이 바랜 채 바스라져 누워 있는 풀들 사방을 둘러보아도 마냥 고적하고 쓸쓸하다. 살을 에는 추위에 찾는 사람조차 드물어 가슴이 시리도록 더 쓸쓸하고 고즈넉하다. 차라리 함박눈이라도 흠뻑 내려 하얗게 덮어 주면 오히려 더 풍요롭고 넉넉해지는 느낌이다. 이런 겨울에 수목원을 찾아 거닐다 보면 저절로 철학자가 되어 진다. 마냥 생각에 잠겨 그저 걷는 일 뿐 어느 곳의 무언가에 눈길을 빼앗겨 머뭇거리고
설을 쇤지 한참이 지났다. 대보름날 부름을 깬지도 열흘 남짓 되어 이제 그믐께니 정초 기분이 사라진 지도 오래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설 쇠고 사나흘 정도는 종일 세배와 성묘로 날을 보냈던 것 같다. 그 기간 중에 하지 못한 성묘나 세배는 늦어도 대보름 이전에는 반드시 챙겨서 빠짐없이 해야만 했고 혹시 보름이 지나도록 동네 어른들 중 누군가에게 세배를 빠뜨려 먹기라도 하면 ‘천하에 버르장머리 없는 놈’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어서 집집마다 꼬박 꼬박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그러나 요즘에는 명절이 단지 설날 하루
일주일에 서너 번쯤 목욕탕에 간다. 별일이 없는 한 아침 일찍 산책 겸 걷기 운동을 한 후, 목욕탕에 가서 몸을 씻고 출근을 하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조석으로 샤워를 하고 있으니 구태여 목욕탕엘 따로 갈 필요가 없지만,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면 피로가 쉽게 풀리는 것 같아 일부러 목욕탕을 찾는 것이다. 또 반신욕이 건강에 좋더라는 얘기를 하도 들어서 “나도 반신욕 좀 제대로 해 보자”싶어 겸사겸사 목욕탕에 간다. 기상과 동시에 샤워를 하고 일과를 시작하는 터이지만, 그래도 목욕탕에 들어서면 우선 샤워부터 다시 하고나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잠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흔한 얘기로 베개에 뒷머리만 대면 잠이 드는 체질이었다. 친구들이 한 밤에 깨어나 잠이 안와서 아주 애를 먹는다는 얘기를 해도 그저 남의 일로만 여겼다. 오래 전 일이지만, 숙부님께서 꼭 지금의 내 나이쯤 되셨을 무렵 “잠이 안와 아주 고통스럽다”고 말씀하실 때에는 뭣도 모르는 처지에서 그저 운동을 좀 더 열심히 해보시라고 얘기했을 정도로 그 면에서는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한 채 지내왔다. 그러던 내가 얼마 전부터 잠 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무슨 고민거리라도 있어서
지난해에는 건강검진을 걸렀다. 재작년에 아주 마음먹고 이 지역에서 제일 규모가 큰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진을 받았던 터라, 1년 사이에 뭐 별일이 있을까 싶어 건강검진 통지를 받았지만 그냥 지나쳐 버렸다. 새해 들어서자 몸이 옛날 같지 않은 것 같다며, 올해에는 꼭 종합검진을 받아 봐야겠다는 아내의 말에 벼르고 벼르다가 어렵사리 날을 잡았다. 원래는 연초에 일찍 해치우자 마음먹었는데 이런 저런 일들로 미루다가 7월에야 날을 잡은 것이다. 아내가 이번에는 서울의 큰 종합병원에 가서 샅샅이 검사를 받아 보자는 바람에 살짝 망설여지기도
지난해의 일이다. 모처럼 만난 후배의 얼굴이 핼쑥했다. 만날 때마다 다이어트 타령을 해대더니만 용케도 성공을 했나싶어 참 대단하다고 치사를 건넸더니 손을 내저으며 그게 아니란다.“그럼 어디가 안 좋아서 그러냐?”니까 풀썩 웃으며 아주 비싼 다이어트를 해서 그렇단다. 얘기가 점입가경이라 농을 접고 진지하게 캐 물었더니, 최근 꽤 많은 금액의 세금을 추징당했는데, 그 문제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거기에 신경을 쓰다 보니 불과 한 달 여 만에 몇 kg이 빠졌다는 대답이다.헛된 생각 하지 않고, 나름대로 바르고 깔끔하게 사업을 꾸려
나이 60이 넘으면 성정이 순해져서 웬만큼 고까운 소리를 들어도, 또는 보기에 언짢은 눈꼴 신 장면을 목격해도 빙긋이 웃으며 넘길 수 있을 줄 알았다.다른 사람도 아닌 공자님께서 ‘예순 살 부터는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함으로써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이든 들으면 쉽게 이해’를 하는 이순(耳順)의 나이라 하셨다잖은가. 그 말씀대로 그저 예순 살이 되면 저절로 못된 성품이 누그러져서 어지간한 일들은 다 너그러이 받아들이고, 매사에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 가며 살아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그런데 웬걸, 파르르한 성질머리는 여전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