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답지 않게 많은 비가 내렸다. 김(글쓴이 본인)은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보문산에 올랐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매번 똑같은 코스를 돌았다. 문화광장을 시작해서 과례정을 거쳐 처음의 자리로 다시 되돌아오는 한 시간용 산행이었다.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삼일동안 계속 내린 비로 계단은 미끄러웠고 땅바닥은 밀가루 반죽처럼 질퍽했다. 비탈진 구간에선 하마터면 구를 뻔했고, 가파른 계단에선 까딱하면 미끄러질 뻔 했다. 재수 없는 날이라며 김은 투덜거렸다. 젠장, 이런 날 산에 올게 뭐람.간신히 능선까지 올라온 김은 과례정 안으로
맹자 삼락(三樂) 중의 세 번째가 ‘인재를 가르치는 기쁨’이라 했던가. 나는 얼마 전 이걸 실감 했다. 연말이 다가오며 마음은 더 괴로워졌다. 열심히 썼지만 금년에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으니까. 슬픈 것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끝도 없는 깊은 곳, 캄캄한 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떨어지며 머리와 어깨가 돌부리에 부딪혀도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차분히 앉아 학생들이 제출한 답안지를 들여다봤다. 문제는 두 개였다. 내 과목보다 전공과목에 충실 하라는 의도였다. 첫 번째 문제는 ‘선출직 공무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는 혼자 위원장이란 사람을 욕했다. 아마 개 같은, 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들어서자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주차를 끝내고 나는 위원장의 행동을 되짚어 봤다. 위원장은 평소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 웃는 얼굴과 따뜻한 말투는 그런 칭찬을 듣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의 행동은 달랐다. 은연중에 진짜가 드러난 것일까.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오늘 대전시청에서 심의위원회가 있었다. 나를 포함해 아홉 명의 심의 위원들이 참석했고, 두 시에 시작된 회의는 예정 시간보다 훨씬 지나 저녁
나는 그때 무척 화가 났었다. 그러나 그건 명백한 나의 잘못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화를 낼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할수록 부끄러워진다. 시립도서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시립도서관은 참 좋다. 공부하기 좋은 환경은 물론이고 노트북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트북 실’도` 마련해 놓았다.노트북 실에서 지난번 쓰다 만 글을 불러와 열심히 자판을 두드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머리가 반
가로수도 생기를 잃을만큼 찌는듯한 여름이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밥상 차려놓으니 신문을 본다는 아내의 불평이 이어졌고, 딸아이가 늘어놓는 담임선생에 대한 험담도 들었다. 이야기 도중 흥분한 아이가 "우리 담임 너무 이상하지 않냐"고 동의를 구할 때 맞장구를 쳐주었고 가방을 드는 순간에 맞춰 엘리베이터를 잡아줬다. 그가 그 전화를 받은 것은 한밭도서관에 도착했을 때였다. 아침 아홉시, 4층 열람실에 앉아 핸드폰을 무음모드로 바꾸려는 찰라 벨이 울렸다. 요란한 벨소리는 오래된 성채처럼 버티고 있던 고요를 깨뜨
고등학교 때 철학 수업 중에 선생님이 교과서를 보며 말씀하셨다. 공자 왈,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 참된 이치를 깨달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우리의 인생은 깨달음의 연속이고 애석하게도 직접 경험 한 후에야 그걸 알게 된다.그날 나는 당황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난감했던 것 같기도 하다. 처가에 갔을 때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아이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고모부, 아는 게 힘이 맞아요? 모르는 게 약이 맞아요? 아마도 그
법률용어 중에 ‘미필적 고의’라는 말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어떤 결과가 발생 할 것을 인식하면서도 그러한 결과가 발생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상태.’ 예컨대 이런 경우다. 보험금을 탈 목적으로 자기 집에 불을 지르려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행위로 옆집에 사는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예견하면서 죽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방화하는 경우다. 이때 고의성이 범죄성립의 중요한 요건이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은 혼자 살수 없다고.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우리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나는 요즘 마음이 뒤숭숭 하다. 그러나 이런 내 심정은 당사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지금 내 아들의 심정은 어떨까. 가기 싫은 곳을 억지로 가는 기분? 두려운 마음? 초조한 심정? 사람들은 군에 입대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다 가는 곳이고, 군대에 갔다 와야 철이 든다고. 그러나 이런 말은 당사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30년 전의 내가 그랬으니까. 내가 시작부터 군대 얘기를 꺼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눈치 빠른 분들은 금방 짐작 하셨을 것이다. 내 아들이 군대에 간다. 사흘 남
저녁에 공부방으로 올수 있어? 스승이 말했다. 목소리에 준엄함이 느껴져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칭찬은 해주지 않을 것이다. 겨울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단숨에 귀가 얼얼해지고 몸이 뻣뻣해졌다. 어둠이 내린 공부방 입구는 내 마음 만큼이나 고요했다. 딩동. 안으로 들어서자 스승은 내 소설에 대한 평가를 시작했다. 신선함이 없다, 새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건 위주로 쓰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의 감정이 드러나 있지 않다... 고개가 절로 아래로 떨어지며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나는 재주가 없는걸까?새해가 밝았을 때 다이어리 맨
심리학자 카를 융이 말했다. 어릴 때의 경험이나 기억, 특히 트라우마(상처)는 머릿속에 계속 남아 그 사람의 평생을 가져가는 콤플렉스가 된다고. “너희 아버지 산소에도 다녀왔냐?” 내 책을 선물 받은 친구 녀석이 무심코 나에게 했던 말이다. 말인즉 네 책이 출판되기 전에 너희 아버지한테도 다녀왔냐는 의미였다. 나는 이 부분에서 당황했다. 그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분인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친구 녀석이 못을 박는다. “한번 다녀오는 게 좋지 않겠니?”친구의 말이 맞는 것 같아 며칠 뒤 아버지의
이런 횡재가 있나. 해변을 거닐고 있던 중 발아래 반짝이는 것이 보여 머리를 숙였다. 금반지였다. 몇 걸음을 옮기자 반지가 또 있었다. 가만 보니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여기저기 사방에 금반지가 널려 있었다. 정신없이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다.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때 멀리서 음악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소리의 발신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으나 곧 그것이 내 휴대전화 알람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소리에 눈을 떴다. 꿈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생생했다. 반지를 줍던 손의 감촉과 묵직한 호주머니의 느낌까지 그대로였다. 인터넷으로 ‘
그것은 처음부터 무리한 일이었다. 내가 속한 창조경영 3기 원우회에서 ‘제주도 1박2일 워크숍’을 가기로 했다. 말이 좋아 워크숍이지 단순한 여행이었다. 참가하겠냐는 의사를 내게 물었을 때 “반반”이라고 대답했다. 그날은 강의가 있는 금요일이 끼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불참은 내 스스로 결정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일정과 예약을 사무총장이었던 내 이름으로 했기에 영락없이 가야 할 팔자였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강을 결정했다. 아내가 말했다. 당신 그러다 잘리는 거 아냐? 2016년 11월 25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