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밤을 끌어오면꿈이 숨을 빼앗으면삶이 맘을 헤집으면으레 서러움이란 어려움을 겪는다꽃의 탓이라 해두자봄밤이 작정하고 흩어놓아갈피 못 잡고 정처 모르는 별들처럼꽃이 몽우리 맺기 직전에만 발병하는꽃이 잎 떨구면 사라질계절성 질환얼마 전에 어떤이와 식사를 하면서 '가장 참기 힘든 감정'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서러움”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물론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이제 고집이 생기기 시작한 다섯 살 아이는 ‘욕심’일 것이고, 노년에 접어들면 잦아진다는 ‘노여움’일 수도 있다. 평소 의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나이 탓인가점점 서쪽을 보게 돼푸르렀으나 서서히누렇게 물드는 하늘이내 인생 도화지 같아처량함 아니라 아름다움이라고믿고 싶은 마음늦겨울 동풍에 실어서쪽하늘로 보낸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서쪽은 죽음을 상징하는 방향이다. 해가 진다는 건, 즉 어두워진다는 건 빛의 소멸이고 침묵의 시작이다. 어둡다, 조용하다는 필연적으로 죽음을 연상케 한다. 반면 동쪽은 생명의 탄생, 생동감과 역동성의 방향이다. 왕조 시절 차기 군주인 세자가 머무는 궐을 동쪽에 배치하고 동궁(東宮)이라 불렀다. 젊음을 푸른 색에(靑春), 노년을 누런 색(黃昏)에 비유하는
《튀르키예》무참하고 비참해서 처참하다냉혹하고 혹독해서 가혹하다지옥을 예습한다면 아마저곳삶이 폭삭 가라앉아죽었거나 죽고 있거나 죽고 싶은 곳어떤 신을 믿든 원망으로 끝날 기도슬픔이 끝없는 여진을 만든다 《시리아》죽은 아기가 산 아버지를지옥으로 이끈다살아남은 아버지는 아기가천국에 갔길 빈다여진이 와도 아기의 몸은 흔들림 없다여진 없이도 아빠의 몸은 흔들린다 엄청난 재난 앞에서 할말을 잃고 만다. 그저 가만히 눈 감아 죽은 사람들을 추모한다. 그냥 마음 모아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팔순 된 우리 어머니 무릎에 박힌 인공관절처럼가지 줄기 몸통 할것없이 철봉을 덧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호해야 할 나무지만예전 우리를 보호해주던 나무란다가만 듣던 낀둥이담 결려 돌지 않는 내 목에살짝 핫팩을 대어준다우리동네에 보호수가 있다. 400년 넘은 느티나무인데 언제 벼락을 맞았는지 가운데가 쪼개져 두 동강이 된 채 공원 한견에 서 있다. 그야말로 고목이고 노목이다. 유등천 산책을 오가며 보호수라는 표지석을 들여다 본다. 저것은 사람들이 보호할 나무란 뜻이겠지.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처럼... 그렇다는 듯 나무는 몸뚱이에 잔
매운 바닷바람이 東피랑으로나를 끌고 올라와冬피랑이나 凍피랑이라부르라며 귓볼에다 윽박지른다뭐라고 따지려다가 지난 여름西피랑인지 暑피랑인지에올랐을 때 녀석이 불어와서더위 쫓아준 고마운 기억이 돋아나 그냥 입을 닫았다통영을 여행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코로나가 멈춘 일상을 잠시나마 녹인 느낌이었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릴 만큼 통영은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동피랑과 서피랑이라 불리는 언덕에 오르면 알 수 있다. 동쪽벼랑, 서쪽벼랑이란 뜻인데 옛날에는 먼 바다로부터 침입하는 적선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단다. 지난 여름에는 서피랑에, 이번에는 동
눈이 아니야얼굴도 아니야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거기에 늘 손이 있다손이 없는 마음은 없다맞잡고 내밀고 쓰다듬고 밀치고 갈기고 후려치고 기쁨 반가움 살가움 미움 얄미움 서러움손은 거짓 없다 마음 가는 곳엔 늘 손이 있다손발이 찬 것이 콤플렉스다. 특히 겨울만 되면 견딜 수 없이 건조하고 마른다. 그 주제에 핸드크림을 챙겨 바르는 부지런함도 없고 장갑은 또 답답해서 싫다. 일회용 손난로가 내 겨울에게 유일한 구호품이자 필수품이다. 상태가 이렇자 악수를 꺼리는 습관도 생겼다. 손이 왜 이렇게 차냐는 소리를 듣기 십상인데 그때마다 손
겨울이 강을 호되게 윽박질러서 어는 게 아니야당신이 나를 고되게 숨막히게해떠난 게 아니듯물이 겨울을 기꺼이 받아들여서어는 거야내가 당신을끝없이 가까이하여떠난 것이듯언다는 현상은 동사凍死 위험이 있는 인간에게 두려움이다. 분자 활동이 활발하면 기체가 되고 위축되면 얼듯이 우리도 겨울엔 다운되고 침체되는 것이 당연하다(그렇다고 뜨거운 여름에 up되어 날아갈 듯 한지는 잘 모르겠다). 동장군이란 말에서 느껴지듯 얼음은 혹독함의 결과다. 그런데 꽁꽁 얼어버린 갑천을 내려다보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저 물은 원치 않는데 억지로 얼어버
살아낸 시간은수확한 쌀인가배설한 똥인가살아갈 시간은도전할 꿈인가어차피 꽝인가세밑과 새해가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동안 잘 살았나 평가와 반추, 반성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잘 살까 각오, 다짐, 기대 따위를 한다. 시간의 매듭은 이래서 쓸모가 있다. 영어로 공전을 revolution이라고 한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현상이 '혁명'과 같은 낱말이다. 많은 동음이의어가 공통된 의미에서 갈려 나왔기 때문에 궁금할 수밖에 없다. 왜 서양 조상들은 혁명이란 말로 공전을 표현했을까? 중세 유럽은 교회가 지배하던 시절이라 지동설은 금기
책 글귀 퀴즈를 낸다나무가 늙은 소년에게한숨 쉬며 마지막 하는 말미안해가 정답인데막둥이의 자신 있는 오답작작해빵 터져 웃다 보니 미안해보다더 현실적이다가끔 땡땡퀴즈라는 걸 한다. 책 글귀에 포함된 낱말을 맞히는 건데 주로 아이들이 어려서 같이 읽었던 동화책에서 낸다. 며칠 전의 픽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마지막 신이다. 노인이 되어 기력이 없는 소년은 나무를 타고 놀 수 없다. 나무도 젊은 소년에게 줄기와 열매와 가지를 모두 내어준 탓에 밑둥만 남았다. 노목과 노인은 각자 신세를 한탄하는데 나무는 소년에게 더 줄 것이 없어 미안하다
아침이 흔들어 깨우길래무슨 일인가 싶었는데지난밤 나 흘린 눈물이 얼어세상을 포장해 버렸지 뭐야그러라고 시킨 일은 아니지만내심 다행이었지 거무튀튀보단 새하얀이 낫잖아내 눈물의 육각결정이욱신거리는 네 아픔을 덮길신신파스처럼 말야수족냉증이 있어 어느 계절보다 겨울이 힘겹다. 차고 마른 손에 자꾸 입김을 불지만 요샌 마스크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다. 한때 별명이 호호아저씨였으니 이 냉건조증은 내 겨울의 트래이드마크라 불러도 좋다. 핸드크림과 핫팩이 필수품이지만 충분치 않다.겨울이 주는 거의 유일한 기쁨이라면 역시 눈이다. 좋아하면 아이고
두 달 데이트 끝에팔꿈치 통증만 남기고우리 잠시 떨어져 있자서로에게 필요한지 돌아보자다시 그리워지면 만나지겠지기쁨이 아픔과 쌍둥이인 걸아는데 더 알지 않아도 되는데굳이 오른쪽 팔뚝에다아프게 새겨 넣는다스포츠가 매력적인 것은 예측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종 빗나가는 경우 다크호스니 언더독이니 공은 둘글다 등의 표현으로 놀란다. 운의 영역도 작지 않다. 오차 없이 실력대로 줄 세우는 것이 스포츠라면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한 가지 더 감동 포인트를 꼽자면 영광과 고통이 한몸이라는 점이다. 월드컵에서 손흥민의 가면
겨우 한나절이라고 말하지마네 사랑도 짧았지만 뜨거웠고내 사랑도 작았지만 함께였다전에는 겨울이 연탄의 계절이었는데 지금은 핫팩의 계절이다. 이 작은 손난로는 손 안에 쏙 들어가서 차갑고 마른 손을 덥혀준다. 아쉬운 것은 지속시간이 길지 않아 한나절이면 수명을 다한다는 점이다. 다 쓰고 버려진 핫팩을 보면 측은지심이 든다. 쓸모를 다하고 방치되는 노동이나 애정 쏟은 후에 이별로 귀결되는 사랑이 연상된다. 열정의 熱은 핫팩의 hot과 같은 말이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야 '겨우 한나절'이라고 불만을 가져야 기술을 개발해 더 길게 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