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식 고인돌은 고대를선돌(Menhir)은 그들 나름대로의 시스템을제신탑(祭神塔)은 간절한 기도를 DNA처럼 내려 온 우린 그들의 후손물가는 식생을 이름은 수몰 전부터 강이 북쪽으로 가고 있음을 알려주고지금은 배를 타야만 탈출하는 섬 아닌 섬, 오대리도 있고멀지 않은 곳에 깊고 깊은 외딴 피실도 있고수변(水邊) 따라 신생 데크길에 서면밝음이 더 잘 보이는데 그것은 내가 음한 곳에 있기 때문이라고 훈수하는 명당자리에서 가부좌를 튼다.바삭 단풍이 무너지는 소리도 들리고달력이 넘어가는 향들도 풍긴다. 봄까지 갈증을 해소할 만수위로 산보다
첫눈발이 날리던 토요일에 ‘일상으로의 초대’에 발을 들여 놓았다.늙은 전투기 두어 대 있다고 보라매공원이라지만언제부터는 산책 나온 정말로 다양한 개들의 마실터그리고 보기 싫어도 보게 되는 한 다리 올리고 볼일 보는 장면들이 겹쳤다.2부 음악회에선 풍물패가 뜨겁게 문을 열었고넬슨 도르마(Nessun dorma)를 부른 털보 테너도 있었고사실 야외가 어색한 재즈, 'Route 66'을 부른 팀에 하도 박수를 보냈더니 시곗줄이 늘어나 내 손목에서 돌고 있었다. 사실 영화 서편제의 고수와 꼭 닮은 응사(鷹士)가 이사동에 산다.그는 1살 안
1. 요즘 같이 바쁜 세상엔 널 ‘탄(炭)’이라 부르련다. 우리의 마지막 코스는 뚝딱 안주가 나오는 홍두깨 식당이다.이유인즉 사실은 그곳만 새벽 시간에 문을 열기 때문이다.늘 그러하듯 두부두루치기에 파란 이슬을 시킨다.요즘 같은 겨울이면 입구의 탄난로가 취기 대신에 새벽의 굽은 손과 굳은 엉덩이를 녹여준다. 부르지도 않는데 손과 몸이 간다. 반가운 따뜻함이다.2. 나도 너처럼기억들을 그립게 재생시키는, 맘도 몸도 추운 이들을 위로하는, 태워서라도 고마워 할 줄 아는, 시작은 검지만 점점 붉어지고 마지막은 살구색으로 끝을 맺는, 처음
오지 말래도 당연히 오는 겨울, 고드름처럼 굳은 8천개의 미각세포들로 구성된 미뢰(Taste bud)들을 깨우기 위해 첩첩산골 삼군리,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강원도 사투리인 동지미 막국수집으로 씽씽 4룬 휘발유 스키를 모는 나다. 동치미 너는 고춧가루를 넣지 않는 김치의 조상으로, 가장 위는 대나무 잎가지를 덮고, 시간이 지나면 톡 쏘는 재주를 부리는, 간도 최소한이라 그 차이가 간발(間髮)인, 맛을 내기가 의외로 어려운 너다. 너는 찐 고구마와 단짝이고, 태초부터 그랬듯이 갑갑한 세상사에 체했거나 울화통이 치밀 때도 손이 먼저 가는
사실 더덕은 자기를 향으로 희생하는데니가 땡기는 날이면 군침을 흘리며 그림을 그리자그러자 머리는 추억으로 혀는 군침으로 반응한다. 본래 절 음식이라 그런지산 밑 산채식당마다 더덕고추장구이가 벌겋게 나오는데수술하는 것처럼 네 피부를 프락셀 레이져 대신에 무딘 칼로 벗긴다.하얀 속살의 Nude로 만든다.그리곤 꼭 나무방망이로 잘게 두들겨 피면 비밀의 향이 진동한다.이어 처갓집 묵은 고추장으로 버무린다.그리곤 참숯의 직화(直火)로 산에서 나는 고기의 식감과 향이 올라오게 굽고 한 점 잡고 잠시 후면 찾게 되는 것이 있으니 Bacchus!
주말마다 江멍하러 가는 가을 길마음씨 착한 이가 노란 추국을 내놓았다.길이 노랗게 변했다.저 착한 마음씨의 향은 어떨까?궁금해 차를 세우고 코를 대니 그리움이 퍼진다.머리에 꽃을 달고질마재의 미당(未堂)이 소쩍새가 봄부터 울었나보다고 한 저 꽃간들간들 코스모스만 몇 개 남은 이 계절에소담하게 피었는데넌 군자의 풍모보단 서리를 맞고도 기다리는 사랑이란 유혹이다.그러다 오는 길부고 문자를 받고장례식장에 들렀더니놓여있는 흰 국화한 송이를 올리고돌아서니너좀 더 열심히 살지 그래! 하네. 이름: 송선헌(宋瑄憲)치과의사, 의학박사, 시인대전
바람이 불지 않는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희망봉 앞바다처럼 강한 파도는 아니지만그래도 제법 쎈 곳으로 초대받았다.강의 한중간이었다.연인들이 타고 즐기던 카누도 좋지만 걸어서 갔다.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면서도 매번 잊는다.눈길도 마찬가지다.어느 날 다가오는 것은 사실 마음이 받아들인 결과다.정을 주면 다른 것들도 보인다.휙 하니 지나가는 인생처럼 차게 살면 보이지가 않는다. 설마하지만 섭씨 450℃의 심해 열수공에도 내열(耐熱)새우들이 살듯이그것도 창쟈오먀오족의 가체(加髢)처럼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뱀장어처럼 흔들리며 제법
흔히 보는 것은 그만큼 가볍게 지나간다. 그렇게 진화한 것이 생명체들이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 눈 속에 들어온다. 그렇게 심중은 가벼운 것이다. 강(江)멍 하러 금강 적하리(赤下里) 자갈밭으로 내려갔다. 물결이 비단처럼 소리 없이 북으로 흐르고 있었다. 민물 특유의 냄새도 올라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흐른다는 것은 그만큼 쌓이거나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맞다. 치런치런한 물결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얼마나 가벼운지 여긴 물꽃조차도 없다. 맑음, 그리고 맑음이다. 간들간들 흐르는 강을 건너가는 길, 빠름은 역시 중간이었다. 그 쎈 물속을
남에게 상처만 주고 사는 내가 반성하고자 구례로 갔다.구름속의 새처럼 보일 듯 말 듯 자유롭게 살고픈 집 운조루(雲鳥樓) 살림살이가 큰 만큼 걱정이 큰 법이지만사라진 집과 역사들이 얼마나 많은가?그것도 백년도 넘기지 못하고?살아남은 모든 유-무생물들은 그만큼 풍파를 잘 견딘 것바람은 민심에서 부는 것이니깐남한의 3대 길지(吉地)는 바람과 물의 풍수(風水)가 아닌200년을 상생(相生)의 조화로 삼았기에 가능했던 것집근처 100리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경주 최부잣집도 그렇고여기 운조루 목독(나무로 된 쌀독) 마개의 他人能解도 그
1. 히말라야의 빛 히말은 눈(雪)이고 라야는 집, 만년설의 집 아래 포카라로 북인도 룸비니에서 7시간 아슬아슬 낭떠러지 길로 달렸더니 그곳은 상쾌했고 ‘낮술’같은 한글 간판도 보였고 밤엔 우기의 천둥 굉음에 잠을 설쳤다. 일 년 중 40일정도 만 보여 준다는 히말라야의 해돋이! 장대한 산군(山群)에 뿌려지는 햇살이 심장이 멈추지 않은 자는 올라오라 부른다. 거대한 설산들, 아직 처녀봉인 ‘Fish Fail’ 마차푸차레(6993m)의 氣는 희다 못해 푸르고 ‘풍요로운 여신’ 안나푸르나(8091m)도 붉어지니 고봉들을 몸으로 영접한다
할메는 살아온 본능으로물이 빠지면 잔다르크처럼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순전히 자식들 멕여 살리려고 뻘배를 찬다.배라고 해야 긴 판자 조각 하나다.그것도 배라고 한 발은 판자에다른 발은 뻘을 밀고 뻘밭으로 들어간다.그곳에선 바지락도 파고 가끔은 몸 약한 남편 탕탕이라도 멕이라고 덤으로 낙지도 줍는다.하늘 한 번 못보고 개펄만 뒤지다보면세월처럼 어김없이 밀려오는 짠물그제야 매번 그랬듯이 욕심도 거기까지 놓아두고빠져나오는 뻘배엔 땀으로 축축하다.그렇게 삶은 들고 나가는 바다처럼 무거운 어깨인줄도 모르고목숨 다할 때까지 질기게 이어
어김없이 가을인가? 할 즈음이면맛도 눈치가 빨라 발길을 옮기라 하는데아귀처럼 천덕꾸러기였던 등지느러미의 끝 연조(軟條)가 긴 비늘이 번쩍이는 야행성으로 기수역(汽水域)에 내유(來游)하는 세상사 아무도 모르듯이돈 전(錢)의 전어(錢魚)가 된 지금결혼기념일인 이 즈음이 제일로 고소하여자연산이니 노포 수족관의 양식이니 따지지도 또 따닥발이이니 이수구리니도 묻지도 않고 맛이 좋아 그런지 유독 사이가 안 좋은 며느리를 빗댄 속담으로 회자(膾炙)되는 너를 만나러 남해 율포에서 서해 홍원항까지 입맛축제들 중에서도유독 550里 섬진강과 맞닿은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