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권선택 시장의 선거법 위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14일로 확정됐다. 대법원이 재판 날짜를 공개한 것을 보면 판단의 최종 결과는 이미 나온 것으로 보는 게 상식이다. 어쩌면 훨씬 전에 나왔을 수도 있다. 재판을 받는 당사자에겐 유무죄의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판결 결과가 내년 시장선거의 큰 변수가 된다는 점에서도 주목받는 사안이다.

권 시장도 억울 할 수 있는 늑장 판결

그러나 대법원 판결의 내용과 무관하게 3년 넘게 끌어온 권 시장 재판은 이미 최악의 재판이 되었다. 권 시장이 시장의 직위를 잃지 않아도 될 정도 사안을 가지고 지금까지 끌어온 것이라면 법원은 임기 내내 권 시장에게 족쇄를 채운 셈이고, 만약 권 시장이 유죄를 받는다면 시장 직무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에게 임기를 거의 다 보장해준 꼴이다. 

그제 대전시의회 행정감사에서는 대전시가 정부합동평가에서 부진한 실적을 거둔 데 대해 “시장이 재판에 발목을 잡혀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당연한 지적이다. 임기 내내 이어질 정도의 재판이면 시장의 리더십에 커다란 지장을 주었을 게 분명하다. 재판 때문에 시정이 흔들리고 이 때문에 시민들이 적지 않은 손해를 보았다면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대법원에게도 있다. 권 시장에게도 시민에게도 억울한 일이다. 

반대로 시장이 직위를 유지하지 못할 만큼의 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데도 지금까지 일부러 질질 끌어왔다면 대법원의 심각한 부도덕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동안 이른바 힘깨나 쓰는 사람의 경우 변호사를 바꿔가며 기일을 끄는 형태로 재판을 받아왔고 일종의 관행처럼 묵인돼 왔다. 이번 재판이 그런 재판은 아니었길 바란다.

선거법 재판은 신중한 재판이 '최악'

선거 관련 재판은 - 특히 당선자의 경우 - 재판 일정을 최대한 줄여야 의미가 있다. 이 때문에 선거법 관련 사건은 6개월 이내에 기소하고 기소 후 6개월 안에 대법원 판결까지 나오도록 하자는 게 선거법 사건 처리의 원칙이다. 대법원은 그런 원칙을 내규로 정해 놓고 있다. 대법원이 내규를 조금이라도 존중한다면 임기가 다 되어 가도록 재판을 끄는 일은 없을 것이다. 

법관은 어떤 사건에 대해서든 사실을 최대한 파악해서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 사건의 진실을 최대한 파악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사건마다 사건 판단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이 요구되고,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요 이상 늦어지는 재판은 정확성과 상관 없이 가장 나쁜 재판이 되고 만다. 특히 선거법 재판은 그렇다.

대통령 당선자가 부정선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치자. 재판부가 판단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재판 일정을 늦추다가 임기가 거의 되어서야 판결을 내렸다면 유죄든 무죄든 그 재판은 최악이다. 의미가 없는 재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제의 사건’이 터진 뒤 얼마 안 돼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다. 유죄가 최종 확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지금도 혼란이 거듭되고 있을 것이다.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다. 유무죄가 법적으로 최종 확정되기 전에 헌재라는 기관을 통해 지위의 유지 문제를 먼저 결정하는 이유다.

“대법원, 없어진 줄 알았는데”

시도지사나 시장 군수 구청장의 책무는 대통령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수십~수백만 명의 인구와 연간 수 조 원대의 살림을 책임지는 자리라는 점에서 결코 소홀히할 수 없는 자리다. 시도지사 재판에 대해 대법원이 ‘신중하고 정확한 판단’을 명분으로 ‘시간’이란 변수를 재판 과정에 고려하지 않는 것은 큰 잘못이다. 시도지사를 포함한 누구라도 법의 도움을 충분히 받아서 재판에 임할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치단체장 재판은 이런 점이 반영되어야 마땅하다.

정치인 특히 시도지사나 시장 군수 구청장 등의 자치단체장에 대한 재판은 해당 지역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늑장 재판이야말로 가장 나쁜 재판이다. 단체장의 혐의는 인정되지만 지위를 빼앗을 정도가 아니면 빨리 정상 상태로 돌려줘야 하고, 심각한 사안이면 빨리 유죄를 선고해야 된다. 현행법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손을 봐야 한다. 최소한 시도지사에 대해서는 대통령처럼 직위 유지 여부를 신속하게 판단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권력 비리’에 대한 검찰의 한계를 고위공직자비수사처 신설로 타개해보려 한다. 대법원의 늑장 재판이 계속된다면 ‘시간과 다투는 법원’이나 그런 제도라도 만들어서 정치인 재판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대법원의 늑장 재판은 법원의 심각한 적폐다. 그렇게 생각하는 지인 한 명에게 글을 맺을 즈음 전화가 왔다. “대법원, 없어진 줄 알았는데 아직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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