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속으로] <42>

부다페스트 지도.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도나우 강 건너 고지대인 부다 지역을 바라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파른 경사지에 웅장한 성벽과 고깔 모양의 첨탑이 있는 어부의 요새이다. 마치 마차시 성당을 에워싼 성벽과 같은 느낌을 주는 어부의 요새에서 남쪽으로 약5분쯤 걸어가면 부다 왕궁이 있는데, 부다 왕궁은 어부의 요새 길이 아닌 세치니 다리를 건너서도 올라갈 수 있다. 세치니 다리 건너편에는 왕궁으로 올라가는 비탈길과 별도로 마치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 비슷한 등산열차 푸니쿨라(Budavári Sikló)를 타고 올라 갈 수도 있는데, 등산열차의 종점이 왕궁 광장이다. 
도나우 강에서 바라본 부다왕궁.

해발 60m인 부다 지역에서 부다 왕궁은 약1.5㎞ 가량 길게 이어져 있는데, 이곳은 1242년 12월 몽고족의 침략을 받은 벨러 4세(Béla Ⅳ: 1206~1270, 재위 1235~1270)가 에스테르 곰에 있던 왕궁을 버리고 도나우 강 건너 남쪽 고지대에 새로 지은 것이 최초이다. 부다 왕궁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포격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현재 절반가량만 복원되어 가장 고지대의 건물은 대통령 궁과 국립현대미술관(Magyar Nemzeti Galéria)으로 사용하고, 남쪽 약간 낮은 지대의 건물들은 국립 세치니 박물관, 루드비크 박물관,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부다왕궁과 등산열차(왼편).

대통령 궁 길 건너편 지역은 지금 발굴과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어부의 요새와 마차시 성당까지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대통령 궁은 무료 관람할 수 있지만 미술관과 박물관은 각각 1400ft(약6000원, 1포린트=4.3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광장 투룰 새 동상.

왕궁의 광장 한 가운데에는 헝가리 민족을 상징하는 거대한 새 투룰(Turul) 한 마리의 청동상이 있는데, 마자르족이 헝가리 지방에 정착하던 9세기경부터 전설로 전해오던 헝가리인들의 토템인 상상의 새 투룰은 독수리를 연상시키지만, 투룰이란 터키어 '토그룰(togrul)' 혹은 '투르굴(turgul)'에서 온 말로서 '송골매'를 가리키기 때문에 매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투룰 은 한쪽 발톱으로 왕의 칼을 움켜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전해오는 이야기는 헝가리 민족의 시조인 아르파드(Árpád)의 어머니가 하늘에서 날아온 투룰 한 마리가 자신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는데, 자궁에서 솟아난 큰 샘물이 서쪽으로 흐르다가 멈춘 곳에 아름다운 황금나무가 있으며, 투롤이 나타나서 헝가리 민족을 이끌 훌륭한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해주었다는 것이다.
 
왕궁 복구현장.
또, 헝가리를 건국한 마자르의 지도자의 꿈에 투룰이 나타나서 독수리의 공격을 받는 그들의 말을 구해주고, 지금의 헝가리 땅으로 인도했다고 전해진다. 부다 왕궁 입구에 세워진 투룰은 유럽에서 가장 큰 새 조각상이고, 또 투룰은 헝가리 전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왕궁터.
부다 지역에 최초로 왕궁을 지은 벨라 4세는 언드라시 2세와 어머니 메라니아(Merania)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14세 되던 1220년 비잔티움 제국의 테오도루스 1세의 공주 마리아 라스칼리나와 결혼하고, 29세 되던 1235년 헝가리 국왕으로 즉위한 인물로서 헝가리를 중흥 시킨 임금으로 추앙받고 있다(벨라 4세에 관하여는 2017.09.29. 부다페스트 참조).
 
대통령궁 전경.
그러나 벨라 4세가 재건한 왕궁은 이후 몽골군의 습격을 받아 다시 파괴되자 15세기 마차시 1세(MatyasⅠ: 1458~1490)가 재건했다. 헝가리 역사상 최고의 인문주의자로 알려진 마차시 1세의 집권기 동안에는 수많은 유럽의 예술가들이 찾아와서 ‘헝가리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루었으며, 부다 왕궁도 르네상스식으로 건축되었다. 그리고 헝가리는 중유럽의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되었으나,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침략으로 왕궁은 다시 파괴되었다. 
 
왕궁 도나우 강쪽.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도움으로 오스만 제국에서 해방되었지만, 다시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 기간 동안 왕궁도 당시 서유럽에서 유행하던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18세기에는 마리아 테레지아 대제의 명령으로 왕궁의 203개의 방을 새로 만드는 거대한 증개축 공사를 했다(오스트리아 마리아 테레지아에 관하여는 2017. 04.07. 인스부르크 참조).
대통령궁에서 본 세치니 다리와 성이스트반 대성당.

외적의 잦은 침략으로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는 수난을 많이 겪은 부다 왕궁은 1896년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복원을 시작하여 1904년에 완공되었지만,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또다시 큰 피해를 입었다. 1956년 헝가리 혁명 때에도 소련군에 의해서 크게 파괴되어 현재는 일부만 복원되어 대통령 궁을 비롯하여 국립 현대미술관, 루드비크 박물관,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 국립 세체니 도서관 등으로 사용하는 등 박물관으로 더 많이 이용되고 있다. 투롤 조각상이 있는 광장 건너편에는 폐허가 된 왕궁 복원을 위한 발굴작업 현장이 있다.
현대 미술관.
 
거대한 청동 투룰 상이 세워진 광장에서 작은 철제로 투룰을 세워둔 아치형 정문을 들어서면 대통령 궁인데, 대통령궁 앞에는 경비병이 지키고 있다. 대통령 궁 정면 맨 위 흰색 벽면에 M DCCC Ⅵ란 로마 숫자는 라틴어로 M은 1000을, D는 500을, C는 100을, Ⅵ은 숫자 6을 각각 의미하므로 결국 1806년에 건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내부는 관람할 수 없다. 대통령 궁 앞에서는 영국여왕이 살고 있는 런던의 윈저 궁처럼 경비병 교대식을 벌이지만, 누리끼리한 제복을 입은 군인들의 모습이나 행동으로 보아서 그다지 볼만할 것 같지 않아서 지나치기로 했다(라틴 숫자에 관하여는 2017.03.31. 오스트리아 멜크 수도원 참조).
 
역사박물관.
대통령 궁을 나와서 담장 너머 오른쪽 건물은 국립현대미술관(Magyar Nemzeti Galéria)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 약간 떨어져 국립 세치니 박물관, 루드비크 박물관, 부다페스트 역사 박물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헝가리 미술이 집대성된 현대미술관은 헝가리 귀족 에스테르하지가에서 모은 15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그림, 조각, 그래픽 등 7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헝가리의 유명한 화가가 많이 배출되었던 19세기 중반에서부터 20세기 초반의 헝가리 작품들이 가장 인기가 많다. 그 옆의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은 가파른 경사지에 위치하여 전면에서 건물을 촬영할 수 없으나, 르네상스식 건물 앞에도 투룰 조각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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