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렬의 세계속으로] <41>

부다페스트 지도.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Budapest)는 도나우 강을 중심으로 고지대인 부다(Buda) 지역과 평야지대인 페스트(Pest)로 나뉘는데, 부다는 본래 ‘물’을 뜻하고, 페스트는 ‘평야’를 의미한다.   

부다 지역에서 살던 귀족 이슈트반 세체니(Szechenyi) 백작은 페스트 지역에서 살고 있는 부친의 사망 소식을 들었으나 악천후로 8일 동안 배가 운항할 수 없어서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불효와 많은 사름들의 불편을 덜어주려고 사비로 도나우 강위에 다리 건설에 나섰는데, 오랜 고생 끝에 1872년 다리를 개통함으로서 비로소 두 도시가 합쳐져 오늘날 부다페스트란 지명을 갖게 되었다. 

어부의 요새 입구.
부다 지역에는 헝가리의 왕궁을 비롯하여 어부의 요새, 마차시 성당․ 시타델라 요새 등의 고대 유적지가 많고, 평야지대인 페스트 지역에는 주민들의 주거지를 비롯하여 헝가리 독립 1000년을 기념하여 세운 영웅광장․ 성 이슈트반 대성당․ 국회의사당 등이 있다. 

어부의 요새 광장.
고지대인 부다 지역에서 가장 남쪽 ‘시다델라 요새(Citadella)’가 있는 언덕을 겔레르트 언덕(Gellert Hill)이라고 하는데, 겔레르트 언덕이란 1001년 이슈트반 1세(Saint Stephen I; 970~1083)가 기독교를 받아들여 헝가리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우자, 이탈리아의 베네딕트 수도사 겔레르트를 파견하여 가톨릭의 전도에 나섰으나 1045년 이교도들이 포도주 통에 담은 채 도나우 강으로 굴려서 순교한 것을 기념하여 그의 이름을 붙이게 된 곳이다. 

어부의 요새 성벽.
겔레르트 언덕은 해발 235m에 불과한 낮은 언덕이지만, 이곳에 올라가면 서울의 남산처럼 부다페스트 시내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도나우 강과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시타델라 요새뿐만 아니라 왕궁으로 올라가는 길목인 어부의 요새, 헝가리 최초의 성당인 마차시 성당 일대까지도 겔레르트 언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부의 요새 회랑.
어부의 요새(Fisherman’s Bastion)는 오랜 옛날 이곳에 도나우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사고파는 어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19세기 도나우 강에서 고기를 잡아 파는 어부들이 중심이 된 시민군이 겔레르트 왕궁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왕궁을 지키면서 적의 기습을 막는 요새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헝가리인들의 애국정신의 상징’으로서 헝가리 건국 이래 중요시 되어온 어부의 요새는 고깔 모양의 7개 탑과 이것을 연결하는 긴 회랑이 특징인데, 마치 동화속의 요정처럼 7개의 고깔 모양의 탑은 헝가리 건국 당시 마자르족의 7개 부족을 상징한다.

겔레르트 언덕에서 본 부다페스트 전경.
어부의 요새 1층은 무료이지만 2층은 입장권을 사야 한다. 입장권 판매소에는 안내하는 헤드셋을 빌려준다. 그러나 내부는 특별히 볼만한 것이 없고, 오랫동안 헝가리의 왕궁 성당이었던 마차시 성당(Matyas Temple)을 보호하는 성벽 같은 느낌뿐이어서 관광객들도 대부분 요새 주변을 둘러보는 것에 그친다. 다만, 어부의 요새에서 마차시 성당까지는 길게 연결된 화려한 성벽과 계단이 무척 아름답고, 어부의 요새에서 내려다보이는 도나우 강과 페스트 지역의 국회의사당, 영웅광장, 성 이슈트반 대성당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 역할을 해준다. 어부의 요새 2층에서는 이어진 회랑을 통해서도 마차시 성당으로 갈 수 있다. 

마차시 성당.
마차시 성당은 원래 헝가리를 통일한 왕인 성 이슈트반 1세(Saint Stephen I; 970~1083)가 1015년 지은 왕궁성당이 몽고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자, 1255년~1269년 벨러 4세(1206~1270)가 고딕 양식으로 다시 지은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 된 성당이다. 마차시 성당의 정식 명칭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지만, 마차시 성당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는 것은 헝가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임금으로 평가받고 있는 마차시 왕(1458~1490)이 1470년 88m에 이르는 첨탑을 증축하고 지붕을 화려하게 단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곳의 남쪽 탑에 마차시 1세 왕가의 문장과 그의 머리카락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차시 성당 첨탑.
마차시 성당을 재축한 벨러 4세는 아버지 언드라시 2세와 어머니 메라니아(Merania) 왕비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서 14세 되던 1220년 비잔티움 제국의 테오도르 1세의 공주 마리아 라스칼리나와 결혼하고 29세 되던 1235년 헝가리 국왕으로 즉위했는데, 헝가리를 크게 중흥시킨 왕으로 알려졌다. 특히 딸 킹카 공주를 폴란드의 크라카우 공작 블레 슬라우와 혼인시킬 때 공주가 결혼지참금으로 토지보다 소금광산을 원하자, ‘마라무레’ 소금광산을 줌으로서 오늘날 폴란드에서 킹가 공주는 소금광산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소금광산에는 킹카공주와 벨레 4세의 소금으로 조각한 인물상이 있다(폴란드 크라카우 소금광산을 소개할 때 상세히 설명 함). 
 
마차성당 내부.
마차시 성당은 서유럽의 성당만큼 규모가 크지 않지만, 오랫동안 헝가리 왕의 대관식과 결혼식이 거행되던 왕실 성당이었으며, 1526년 이후 오스만 튀르크가 헝가리를 지배하던 시기에는 이슬람 사원 모스크로 사용되기도 했다. 19세기 말 오스만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나자 건축사 프리제시 슐렉이 다시 가톨릭 성당으로 재축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은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이 오스만 터키제국에 점령된 이후에 이슬람의 사원이 되었다가 제국의 쇠망후 성당으로 복원된 점과 비슷하다. 특히 인상적인 성당 지붕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무늬 타일은 한 타일 회사가 광고 목적으로 기증하여 새롭게 장식한 것이라고 한다.
이스트반 1세.

마차시 성당 모형.
마차시 성당과 어부의 요새 사이에는 광장이라고 말하기도 어색한 좁은 광장이 있는데, 이곳에는 헝가리 최초로 통일왕국을 건설한 성 이슈트반 1세의 청동 기마상이 있다. 이슈트반 1세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십자가 모형의 주교봉(主敎棒)은 헝가리 왕국을 기독교국가로 삼았으며, 로마교황으로부터 대주교 결정권을 부여받았음을 상징하는데, 이슈트반 1세는 로마교황으로부터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매년 8월 20일 이곳과 페스트 지역에 있는 성 이슈트반 대성당에서는 헝가리 첫 통일왕국의 임금 이슈트반 1세를 기리는 날로서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데,  광장 한 구석에는 성당에 들어가지 않고도 성당 외부와 내부 전체를 살펴볼 수 있도록 자세한 청동 모형을 설치한 것은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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