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박사 순우월(淳于越)의 차례였다. 그는 진시황의 정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라 주청신의 아첨이 귀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깡마른 몸을 일으켜 앞으로 한걸음 나왔다. 몸이 약간 흔들렸다. 취기가 감도는 눈빛이었다. 시황제를 향해 절을 올리고 입을 열었다.

“과거의 은나라와 주나라 두 시대는 천년왕국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왕들이 공자들과 공신들에게 봉국을 내려 제후로 삼고 그들로 하여금 왕실을 도와 보위토록 했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나 지금의 폐하께서는 천하를 통일하고도 공자들이나 신하들에게 봉국을 내리지 않으셨사옵니다. 또 그들을 제후로 삼지도 않았사옵니다. 만약 나라에 변고라도 생긴다면 과연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사옵니까? 또한 만사에 옛것을 스승으로 삼지 아니하고 장구했다는 사례를 들은 적이 없사옵니다.”

순우월이 진시황 면전에서 주청신을 비판했다.

이어 순우월은 봉분제도가 옳은 것인지 진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군현제가 옳은 것인지 다시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주청했다.

또 옛 제도를 따르는 것이 옳은 일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 일인지에 대해서도 폭넓게 논의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시황제를 직접 비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판에 무거운 국정 현안을 토로함으로써 찬물을 끼얹었다. 웃음으로 가득 찼던 연회장이 일시에 납덩이같은 분위기로 돌변했다. 백관들이 진시황의 안색을 살폈다.

시황제 역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연회에서 할 이야기가 있고 조정에서 할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자신의 말 한마디에 따라 연회의 분위기가 깨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조용하게 말했다.

“짐이 들어보니 박사 순우월의 말도 일리가 있도다. 이점에 대해 백관들은 서로의 생각을 논하여 볼 지어다.”

막 왕조가 시작된 상태이므로 순우월의 말도 전혀 뜻밖의 이야기는 아니란 것이 진시황의 의중이었다.

취기가 감도는 분위기였으므로 일부 관리들은 순우월의 이야기가 전혀 맞지 않는다며 그를 비판했다. 하지만 일부의 백관들은 그의 말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며 한마디씩을 거들었다. 어떤 이들은 순우월의 주장에 덧붙여 군현제를 성토했다. 연회의 분위기가 돌변해 중대한 국사를 논하는 분위기로 변모됐다.

더 이상 이 문제를 논한다면 시황제의 생일 축하연이 도리어 막중한 국가 정책을 논하는 장이 될 지경이었다. 더욱이 가까스로 잡아놓은 국론이 분열되는 근거지가 될 것으로 우려되었다.

그때였다. 승상 이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모든 백관들이 그를 향해 이목을 집중했다. 시끄럽던 분위기가 일시에 조용해졌다.

“신 승상 이사 시황제 폐하께 아뢰옵나이다. 고래로 오제는 꼭 같은 정치를 되풀이 하지 않았고 하. 은. 주 3대도 꼭 같은 정치를 답습하지 않았사옵니다. 그러나 제각기 잘 다스려졌습니다. 이것은 다스리는 법이 상반된 것이 아니라 시세가 변천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대업을 창시하시어 만세에 전할 만한 공적을 세우셨나이다. 이것은 본디 어리석은 학자 따위가 이해할 만한 것이 못되나이다.”

승상 이사의 강한 어투가 되살아나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간다는 것을 누구나 직감할 수 있었다. 백관들은 더욱 숨을 죽였다.

이사의 말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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