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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풍경

세무법인 이정 대표 오정균

오정균2017.09.14 14:29:46

▲세무법인 이정 대표 오정균(디트뉴스 자문위원).

일주일에 서너 번쯤 목욕탕에 간다. 별일이 없는 한 아침 일찍 산책 겸 걷기 운동을 한 후, 목욕탕에 가서 몸을 씻고 출근을 하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조석으로 샤워를 하고 있으니 구태여 목욕탕엘 따로 갈 필요가 없지만,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면 피로가 쉽게 풀리는 것 같아 일부러 목욕탕을 찾는 것이다.

또 반신욕이 건강에 좋더라는 얘기를 하도 들어서 “나도 반신욕 좀 제대로 해 보자”싶어 겸사겸사 목욕탕에 간다.

기상과 동시에 샤워를 하고 일과를 시작하는 터이지만, 그래도 목욕탕에 들어서면 우선 샤워부터 다시 하고나서 반신욕을 위해 온탕에 들어간다.

그런데 요즘에는 반신욕을 하기 위해 탕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누가 그 곳에 들어 있는지를 살펴 본 후 탕에 들어간다.

그 탕 안에 같이 들어앉아 있기가 꺼려지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일부터 먼저 하다가 그 사람이 나오고 난 다음에야 탕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침 시간에 목욕하러 오는 사람 중 두어 명이 목욕탕 안에 들어서는 길로 몸도 씻지 않은 채 반신욕탕으로 첨벙거리며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서, 혹시 그들 중에 누구라도 그 탕에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셔서이다.

혹시 내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들 중 누군가가 들어오면 아주 기분이 언짢아져서 탕을 나와 버리기도 한다.

그런 경우 안 된 일지만,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매번 눈치 없이 막무가내로 쑥 들어와 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어이가 없어서 입만 벌리고 마는 지경이다.

목욕탕에 들어서면 어디서나 잘 보이는 벽면과 기둥 곳곳에 크고 뚜렷한 글씨로 ‘반드시 몸을 씻고 탕에 들어가십시오’라고 씌어진 표지판이 붙여져 있다.

그 중에서도 ‘몸을 씻고’부분은 보다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붉은 글씨로 써 놓았다. 그럼에도 목욕탕에 들어서는 길로 몸에 물도 묻히지 않은 채 그 표지판을 쳐다보며 천연덕스럽게 탕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목욕을 마치고 옷을 차려입은 모습을 보면 멀쩡한 사람들로 보이는데 어찌 그리 무지막지한 모습을 보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뭐라 얘기를 했다가는 싸움이라도 날 것 같아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아무 얘기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 사람들이랑 맞닥뜨리지 않기만을 바라며 지내고 있는데, 어쩌다 마주치기라도 할라치면 불쾌하기가 짝이 없다.

나만 그렇게 여기고 있는 줄 알고 있다가 그 곳을 같이 다니며 알고 지내는 몇몇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임을 알게 되니 이제 그 사람들이 측은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저네들은 스스로 무얼 잘못하는지도 모르는 채 여러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있는 셈이니, 차라리 불쌍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목욕탕에 가기가 꺼려지는 때도 있다. 별일이 없으면 아침마다 가는데 휴일 날은 가급적 피한다. 휴일 날이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 탕 안팎으로 아이들이 난리 지경이기 때문이다.

어느 때 보면 아이들이 목욕탕 안에서 달음박질을 해대기도 하고, 때로는 수영장인 듯 물장구를 치며 난리법석을 피기도 하는데 그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 누구도 제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고 그냥 제 볼 일만 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우리 같으면 다른 사람들이 언짢게 여길 정도로 시끄럽게 굴거나 탕에서 물을 튀겨가며 난리를 치면 혼을 내서라도 기본예절을 가르칠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은 열에 두, 셋 정도나 눈에 띨까?

참다못해 나서서 아이들을 제지하면 그제야 아이를 불러 주의를 주는데 그것은 그나마 다행인 경우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아예 아이들과 어울려 같이 물장난을 치는 경우도 있으니 참으로 황당할 뿐이다.

요즘 세태가 젊은이들의 잘못을 보고 꾸짖거나 타이르다가는 무슨 망신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그저 참고만 있자니 답답하기 짝이 없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한다.

식당이나, 백화점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그런 일들을 마주하면 얼굴이 달아오르며 뭔가 한마디를 해대는 나를 보고 아내는 그 때마다 불안해하며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만류를 한다.

내 입장에서도 나의 잔소리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상대방들을 보며 다 소용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잘못을 일깨워주려 잔소리를 해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나도 그냥 지나치고 만다.

언젠가 목욕탕에서 떠드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었더니 그 아이들의 아버지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 아이들에게 더 요란스럽게 떠들고 소란을 피우도록 부추기며 노골적으로 못마땅함을 표내는 모습을 본 후로는 잔소리를 접게 되었다.

뒤로 욕을 먹더라도 얼마간 개선이 된다면 모르겠는데, 그렇게 쉽사리 달라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은 사실 목욕탕에 근무하는 종사원들이 수시로 살펴보며 바로잡아 주어야 할 것인데,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뿐 제지하는 경우를 별로 못 보았다.

어쩌다 마음을 내어 간섭하고 말리려 들면 당사자들이 거세게 항의를 하는 통에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그게 맞는 말 같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냥 참아 넘기며 지내야 하는 것인지 참 답답한 노릇이다. 이런 경우 걸핏하면 학교교육이 문제라고 탓을 해 왔는데, 이것은 학교교육 이전에 가정교육의 문제가 아닐까싶다.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지켜야 할 공공예절, 공중도덕 등에 대해 가정에서 엄격하게 교육을 시켜야 할 텐데 갈수록 그런 것을 소홀히 생각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우리 자랄 때만 해도 버릇없이 굴면 언제나 불호령을 내리시던 할아버님이 계셨기에 그나마 크게 손가락질 당하지 않는 가운데 사회인이 되어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곳에도 그렇게 엄한, 권위를 지닌, 그리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불호령을 내리실 어른이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설령 그런 어른이 계시더라도 그 권위를 인정해 주지 않는 세상이 된 것이다. 안타깝지만 세태의 변화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수긍하기가 싫다.

싫지만 이제는 어지간한 일들은 그냥 보아 넘기며 느긋하게 살아가야 되리라는 생각이다. 그것이 이 풍진 세상을 그나마 속 편하게 사는 방법일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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