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충청권 시도지사 연석회이 모습. 자료사진.

과거에는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 데도 중앙정부가 밀어붙이고 지방자치단체는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시도지사를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면 주민의 뜻에 맞게 잘할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지금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방에선 주민들의 뜻을 무시하며 밀어붙이고, 중앙에서 이를 견제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대전시 도안호수공원 아파트는 천혜의 도심 생태하천이라는 갑천을 죽여 가며 추진하는 사업이다. 이해 관계자들이 아니면 찬성하기 힘든 사업이다. 그런데도 대전시는 기를 쓰고 밀어붙이고 있다. 시민단체가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환경부가 얼마 전 사업의 보완을 요청하면서 일단은 제동이 걸려 있는 상태다. 
충남도가 추진해온 내포 열병합발전소도 중앙정부에 의해 방향이 바뀌고 있다. 내포 열병합발전소는 5년 전 충남도의 승인으로 사업이 진행돼 왔으나 대기 오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논란을 빚었다. 열병합발전소는 안 된다는 주민들의 요구에, 도는 “도가 안전성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중앙정부와 협의를 거치면서 방향이 바뀌고 있다. 
두 사업의 최종 결과는 더 두고 봐야 할 상황이나 주민들은 지방정부보다 중앙정부에 기대하는 처지다. 지방자치의 취지를 생각하면 중앙과 지방의 입장이 180도 뒤바뀌어 있다. 주민이 뽑은 자치단체장은 그 주민들을 울리고 있고 중앙정부가 이를 달래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중앙정부는 일이 잘못되지 않도록 감독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에 앞장서라고 시도지사를 뽑고 있는데 오히려 주민을 배반하는 행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분권 강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방분권 강화를 내년 개헌에 포함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원칙은 그게 맞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대책 없는 분권 강화는 지역 주민 입장에선 지방을 더 썩고 병들게 하는 독이 될 수도 있다. 분권이 강화된다면 지방의 무책임한 폭정을 막을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전시 호수공원 아파트의 경우처럼 특정 민원인들 위해 도로를 내야 할 땅에 아파트를 짓고, 사업자가 덤벼드니까 도심공원에까지 아파트 사업을 내주는 황당한 사업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교통지옥이 되건 말건, 공원녹지가 훼손되어 시멘트 도시로 전락하건 말건 알 바 아니라는 무책임 행정이다. 지방자치 25년째를 맞고 있는 지금 우리 지방에 생긴 변화라면 변화다. 
관선시도지사였다면 지금 대전 충남은?
만일 대전시장과 충남지사가 관선으로 임명돼 왔다면 지금의 대전과 충남과는 어떻게 달랐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이것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이건 민선 시장이 아니었으면 해내기 어려운 일’이라고 할 만한 일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또 ‘이건 민선 도지사니까 해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일도 떠오르지 않는다. 차라리 관선 시도지사 시절이나 관료 출신들이 시도지사를 맡았던 ‘관선 같은 민선 초기’까지는 그마나 역동성이 있었다.
대전은 93년 대전엑스포 이후 이렇다 변화가 없다가 도청이 떠나고 호남선을 빼앗기면서 위기의 도시가 되어 있다. 100년을 함께한 호남선이 떠나갈 때도 민선 시장은 아무 역할도 못했다. 관선 시장이었다면 그렇게 무기력하게 빼앗기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관선이 아니라 민선시장이어서 실패한 게 분명한 건 도시철도2호선이다. 관선 시장이었다면 지금쯤 2호선은 개통을 앞두고 있거나 한창 공사중일 가능성이 크다.
대전 충남 ‘불운의 민선 시대’
2호선은 시민의 70~80%가 찬성하는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정치 철도’로 바뀌면서 시장이 바뀔 때마다 뒤집기를 반복하더니 이젠 트램이든 메트로든 2호선 건설 자체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정부의 도시철도 지원은 SOC 예산을 늘려도 쉽지 않을 상황인데 내년 예산은 20%나 깎았다. 2호선이 날아가면 대전시가 정부에게 받을 수 있는 ‘1조원 통장’을 시장 스스로 걷어찬 결과가 된다. 광주시는 내년부터 1.2조원의 정부 돈을 받게 돼 있다. 대전시는 새로 신청해서 4000억 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젠 ‘도시철도 지원창구’ 자체가 존속된다는 보장도 없다.
충남은 어떤가? 과거에 비하면 천안과 아산권 당진을 중심으로 북부권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충남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유일하게 바다가 없는 충북도에도 경제자유구역이 있다. 황해권의 중심이란 충남도에는 경제자유구역이 없다. 세계적인 기업 삼성이 아산에 자리 잡은 것은 ‘관선 같은 민선도백’ 시절이다. 그러나 삼성은 평택에 다른 둥지를 만들어 본거지를 옮겨갔다. 관선 도백이었다면 삼성이 떠나도록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도 도지사가 기업 유치 운운하며 외국에 나다니는 것은 가짜다.
지금 대전과 충남은 ‘불운의 민선시대’를 보내고 있다. 민선이 본래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웃 충북은 민선의 덕을 보고 있다.  민선도 민선 나름이지만 구조적 요인은 있어 보인다. 민선은 이제 감독자가 없다. 초반의 민선만 해도 언론 눈치도 보았으나 이젠 ‘확고한 지방의 갑’이 되었다. 그들이 무책임한 행정을 해도, 혹은 주민들은 눈이 빠져하 기다리는 데도외국 여행이나 다니면서 시간을 보내도 지적할 사람이 없다. 그나마 중앙정부가 이들의 ‘비행’과 ‘태만’을 견제하고 있는 것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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