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공무원 영혼보다 중요한 정치인 영혼

시도지사 집무실에서 사무관이 시장과 언성을 높이며 언쟁하는 일이 가능할까? 힘든 일이다. 그러나 대전시장 집무실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20년도 훨씬 더 된 일이다. 새파란 사무관과 현직 시장이 심한 언쟁을 했다. 어떤 정책 때문이었다. 당시 대전시의회가 정책 하나를 시장에게 제안했고, 시장은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시장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관련 부서에 지시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 사안이었다.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됐다. 담당 부서의 국장 과장 계장(사무관)은 함께 논의를 한 뒤, 시장에게 문제점을 말씀드려 막아보기로 했다. 부시장도 동의했다. 국장이 먼저 시장을 만났으나 “이미 결정난 일이니 시행하라”는 지시만 받고 돌아왔다. 이번에는 과장이 들어갔지만 마찬가지였다. 사무관이 나섰다.

사무관은 다른 건을 가지고 시장실을 찾았다. 그 문제로는 시장이 만나주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그의 손에는 문제의 안건에 대한 검토서류가 들려 있었다. 사무관은 다른 건을 보고하는 척하다가 그 문제를 꺼냈다. “제 보고를 받아주십시오.” “그건 내가 국장에게 지시한 것이니 자네는 시행만 하게.” “조금만 들어보십시오.” “(시장이 심하게 화를 내며) 국장에게 지시한 건데 왜 자네가 또 얘기하는가!”

고성 오간 대전시장과 새파란 사무관의 언쟁

마침내 고성이 오가면서 시장은 서류를 집어던졌다. 그래도 사무관은 주장을 이어갔다. 톤도 높아졌다. “자동차는 정비사가 고치고 환자는 의사가 고치는 겁니다!” 업무의 전문성을 따지는 말에 시장이 멈칫했다. 사무관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앉아서 설명해봐!” 잠시 뒤 시장은 말했다. “알겠네. 안 하도록 하겠네. 돌아가게!” “시장님,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뒤돌아 나오는 사무관을 시장이 불렀다. “이봐, 나 좀 봐!” 돌아보는 사무관에게 시장이 말했다. “소신이 있는 건 좋은 거야!”

‘사건’의 중간쯤에 비서실 여직원이 차를 들고 들어갔다가 험한 분위기에 놀라 돌아나왔다. 대략 20분 남짓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단막극 같은 실화의 ‘주연’은 사무관보다 시장이다. 그 사무관에게 그 시장은 평생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그를 존경한다고 한다. 우연히 들었던 얘기다. 우리는 종종 실화 같지 않은 실화를 접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영혼 없는 공무원’ 기사를 읽으며 그 사무관이 떠올랐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 물어봤다. 그는 기사화되는 걸 원치 않았다. ‘주인공’이 드러나지는 않게 하겠다고 하고 좀 더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나중에 생각하니까 내가 죽을 뻔한 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멋모르는 새파란 사무관 시절 얘기일 뿐이라고 했다.

그 일에 공조했던 부시장 국장 과장도 참으로 멋진 사람들이다. “내버려둬! 시장이 결정한 일인데 시장이 책임지겠지...”라며 넘겼을 수도 있다.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다들 영혼이 있는 공직자였다. 지금도 이런 공무원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혼있는 공무원’이 되는 건 쉽지 않다. 시장실로 달려온 새파란 사무관을 시장이 끝내 내치는 것으로 끝났다면 사무관의 앞날은 장담할 수 없다.

위징보다 당태종이 더 대단한 이유

‘영혼있는 공무원’은 상관의 보복을 감수해야 한다. 인사권을 가진 상관은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다. ‘영혼’은 기본적으로 업무에 대한 소신과 양심에서 나온다. 돈이 생기는 것도, 명예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승진을 보장하기는커녕 도리어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영혼 있는 공직자’ 유진룡 장관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박근혜 정부에서도 수난을 겪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영혼 있는 공직자들’이 종종 나왔다. 직간의 상징 위징(魏徵)은 대단한 ‘영혼의 공직자’였다. 당태종은 새매를 팔뚝 위에 올려놓고 놀다가 위징이 오는 것을 보고 품속에 숨겼다. 위징에게 또 한 소리 들을까 해서였다. 위징이 이를 알고 일을 아뢰면서 일부러 시간을 끄는 바람에 새매가 품속에서 죽었다. 임금과 신하가 뒤바뀐 상황이다.

위징보다 당태종이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집권 과정의 허물 때문인지 당태종은 신하들에게 진정으로 직언을 당부했다. 그래도 직언은 어려운 일이다. 위징은 타고난 언관이었고 당태종은 이를 받아주었다. 당태종도 어떨 땐 위징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그럴 땐 현명한 황후가 “직언하는 신하가 있다는 건 폐하가 현명하다는 의미”라며 오히려 축하했다. 중국 치세의 대명사처럼 된 당태종의 ‘정관지치(貞觀之治)’는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위징이 죽고 고구려를 쳤다가 낭패를 보았지만 당태종은 중국인이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 중 한 명으로 남았다.

공무원 영혼보다 중요한 시도지사의 영혼

‘공무원의 영혼’과 ‘정치인의 영혼’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어느 한쪽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시도지사 같은 정치인은 정책을 잘 결정하는 게 임무고, 공무원은 그 정책을 제대로 집행하는 게 책무다. ‘영혼’을 먼저 가져야 할 사람은 공무원보다 시도지사와 정치인이다. 위에서 멋대로 하면 아래에선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나 아래에서도 잘해야 한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되긴 어렵지만 일을 망치는 데 앞장서선 안된다.

누구든 스스로 떳떳해야 진정한 영혼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첫째 이권과 돈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그때 대전시장이 새파란 사무관의 말을 들어줄 수 있었던 것은 시장 자신이 그 일에 얽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너무 권력욕에 빠져 있거나 승진에 연연해도 영혼의 소유자가 될 수 없다. 셋째 자신의 업무에 성실하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무능하고 태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독선은 ‘영혼이 있는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바다. 독선은 나만 옳다는 생각이다. 이런 정치인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저지른 죄도 끝까지 부정한다. 양심으로는 그들의 무죄를 확신하지 않으면서 여기에 정치적으로 부화뇌동하는 정치인들도 ‘영혼 없는 정치인’이다. 여든 야든,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관료든 끼리끼리에만 익숙한 사람들이 소유한 것은 영혼과 소신이 아니라 독선이다. 우리는 독선의 파국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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