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황제는 함양성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뒷골목은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백성들의 생활이 넉넉지 못했다. 빈 바가지를 들고 동량을 하러 다니는 거지들도 눈에 띄었고 서푼어치도 안 되는 남새를 깔아놓고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팔리기를 기다리는 노인네들도 있었다. 차림새가 꼬질꼬질 한 것으로 미루어 삶이 궁색하다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시황제는 그들 앞을 지날 때마다 무엇이라도 하나 사주려 했지만 돈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지 못해 살수도 없었다. 

시황제 일행이 함양성 시장터를 막 벗어나려는데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늙은 사내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다가와 시황제 앞을 가로막았다.

“나으리. 한 푼 줍셔.”

“어찌 대낮부터 술에 취해 이러는고?”

시황제가 넉넉한 목소리로 물었다.

“세상살이가 대간하니까 이 모양 아니겠수. 나으리처럼 팔자가 좋다면야 왜 내가 비렁뱅이로 살겠수?”

“천하가 통일이 되었는데도 나아진 것이 없소?”

시황제가 흥미로운 듯 되물었다.

“나아지긴 뭐가 나아져. 시방 몰라서 묻는 거여?”

“나아진 것이 없다는 말이요?”

“백성들의 노역만 많아지고 조세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 뭐가 나아져. 이양반이 정신이 있나 없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다잡고 물어보슈. 나아진 게 있나. 통일인가 뭔가 했을 때는 좋아지리라고 믿었는데 하고나니까 개뿔도 없는걸. 도리어 우리 같은 백성들은 옛날이 좋았지. 암.”

“그럼 시황제께서 하시는 일들이…….”

늙은 사내는 대뜸 말을 내뱉었다.

“뭐가 얼어 죽을…….”

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시황제의 귀에 입을 가져가며 나직하게 말했다.

“시황제가 어떻다는 거여. 구중궁궐에 앉아 백성들이 죽는지 사는지도 모르는 판에 시황제가 다 뭐여. 내가 이런 얘기를 했다면 당장 목이 날아갈 일이지만 바른말은 해야지. 안그렇수?”

눈을 게슴츠레 뜬 사내가 비틀거렸다. 조고가 앞으로 나서려했다. 그러자 시황제가 손을 들어 그들을 뒤로하고 다시 물었다.

“그래도 시황제께서 천하를 통일하시고 살만한 나라를 만드시지 않았소이까?”

“음. 이양반이 나라의 녹께나 축내는 인사들의 앞잡이구만. 살만한 나라는 뭐가 살만한 나라여. 노역 안 당해 봤수. 먹고 살 것이 없어도 노역장에는 끌려가야 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여. 오죽하면 내가 이러고 다니겠수. 기집은 관리란 놈한테 빼앗기고 노역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자식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고. 이런 지경인디 시황제가 무신 빌어먹을 시황제여. 줄 돈이 없으면 가구랴.”

늙은 사내는 취기를 풀풀 풍기며 비틀비틀 시황제의 어깨를 툭치고 지나쳐 장꾼들 속으로 사라져갔다. 위위가 경호 병사들을 시켜 그를 잡으려하자 시황제가 만류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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