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154>

대전의 문화예술인들은 요즘 모이기만하면 지역 문화예술계에 대한 개탄부터 시작한다. 낯 들고 다니기 부끄럽다는 자성과 함께 이대론 안 된다는 각오도 있다. 문화예술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고사하고 질시와 반목이 팽배하다고들 걱정이다. 문화예술 활동을 하며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의 자괴감은 더 크다. 도제(徒弟)라는 미명 아래 예술교육이 ‘갑질’의 대명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사립대 무용전공 학생들 공연비 횡령했다며 지도교수 검찰 고소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대전의 한 사립대 무용전공 학생들이 공연비를 횡령했다며 지도교수를 검찰에 고소했다. 학생들은 교수가 시키는 대로 같은 비밀번호로 통장을 만들어 제출했고 그 통장으로 공연비를 받았지만 돈은 교수 주머니로 들어갔다는 주장이다. 학생들은 해당교수의 지시로 군부대와 병원 같은 위문공연 등에 수시로 동원됐는데 외부공연 참석을 거부하면 한 학기 400여만원에 달하는 장학금을 끊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자신의 집에서 가진 모임에 학생들을 불러 야한 옷을 입혀 춤추게 하고 술시중까지 강요했다는 폭로는 충격적이다. 초대된 인물들이 병원, 군, 기업 등 지역의 유력인사라는데 정확히 어떤 목적의 행사이며 누가, 왜 참석했는지 밝힐 필요가 있다. 공연이 끝난 뒤 참석자들 틈에서 학생들에게 술시중을 시켰는지는 꼭 따질 문제다. 만일 사실이라면 이 사람은 교수로서 자격이 없고 참석자들도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 교수는 몇 년 전에도 자녀 결혼식에 학생들을 동원해 주차요원을 시키려다 반발이 나오자 취소했는가 하면 자신이 출연하는 유료공연을 본 뒤 감상문을 제출하도록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내년도 신입생 모집을 앞둔 대학은 전전긍긍하며 수사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수년전부터 빚어진 이 교수의 갑질 행태를 학교가 좀 더 일찍 진상 조사해 엄벌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드러난 의혹이 맞다면 어느 부모가 이런 학교에 자식을 보내고 이런 교수에게 맡기겠는가? 이 학교는 몇 년 전에도 교수가 학생들에게 반강제적으로 개인레슨을 강요하고 도열인사를 시키는 등 문제가 불거져 레슨비를 돌려준 일이 있다. 대학은 이미지 실추와 신입생 모집에서의 피해를 우려해 쉬쉬하는 데만 급급할 게 아니라 학교차원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징계는 물론 재발방지 대책도 내놔야 한다.

갑질 논란 대학교수 사임으로 대전예총 회장 보궐선거

이번 파문이 대학을 넘어 문화예술계로 확산된 이유는 이 교수가 지역문화예술계의 수장이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터지자 이 교수는 예총회장에서 슬그머니 물러났으며 예총도 보궐선거를 진행 중이다. 대학교수 갑질 논란과 예총회장 재선거를 다른 건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동일인에서 비롯됐다. 지역의 문화예술계와 예술가를 양성하는 대학이 함께 반성해야 하는 대목이다.

특히나 문화계는 지난 6월 자치구 문화원장의 상주단체 여성회원에 대한 성추행 건으로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하지만 경찰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이 사람은 문화원장과 문화원연합회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여성단체와 문화단체가 사퇴를 요청했을 뿐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자치구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대전 문화예술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것만으로도 물러날 이유가 충분한데도 말이다.

대전예총은 현재 새 회장을 뽑는 선거를 진행 중이다. 권득용 한국문인협회 대전지회장과 박홍준 서예가가 입후보해 8월 14일 새 회장을 가린다. 4년 임기 중 전임회장의 잔여분 1년 반 정도를 수행하는 반쪽짜리 회장이지만 신임회장의 어깨가 무겁다. 일련의 사건들은 개인의 실수를 넘어 관행이란 이름으로 오랫동안 빚어져온 지역 문화예술계의 단면이다. 이제라도 뿌리 뽑지 않으면 대전문화의 미래는 없다.

잘못된 관행을 배운 학생들이 예술가가 되면 악습을 반복할 소지도 있는 만큼 대학과 문화예술계가 함께 자성하고 정화에 나서야 한다. 지역민에게 외면 받는 대학이 명문대학이 될 수 없고 신뢰를 잃은 예총은 대전의 문화예술을 이끌지 못한다. 권득용·박홍준 두 후보가 예총 쇄신과 신뢰회복을 공약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기대가 된다. 대전예총은 유력 인사들과 관계를 맺어 행사 치르고 사업이나 따내려는 이미지부터 벗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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