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법인 이 정 대표 오 정 균

▲세무법인 이정 대표 오정균(디트뉴스 자문위원).

지난해의 일이다. 모처럼 만난 후배의 얼굴이 핼쑥했다. 만날 때마다 다이어트 타령을 해대더니만 용케도 성공을 했나싶어 참 대단하다고 치사를 건넸더니 손을 내저으며 그게 아니란다.

“그럼 어디가 안 좋아서 그러냐?”니까 풀썩 웃으며 아주 비싼 다이어트를 해서 그렇단다.

얘기가 점입가경이라 농을 접고 진지하게 캐 물었더니, 최근 꽤 많은 금액의 세금을 추징당했는데, 그 문제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거기에 신경을 쓰다 보니 불과 한 달 여 만에 몇 kg이 빠졌다는 대답이다.

헛된 생각 하지 않고, 나름대로 바르고 깔끔하게 사업을 꾸려가고자 하는 친구임을 아는 터라 전혀 뜻밖의 얘기로 들렸다. 그 후배의 평소 품행으로 보아 그 많은 세금을 추징당할 일을 저질렀을 리가 없는데,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안타까운 마음에 자세한 얘기를 좀 들으려 했더니, 급한 일이 있다며 자리를 뜨는 바람에 얘기를 다음으로 미루고 헤어졌다. 그 이후 후배의 일이 언뜻언뜻 생각나 궁금해 하며 며칠을 지내다가 참지 못하고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회사에 있다가 전화를 받은 후배는 오늘 별 약속도 없고 하니 점심이나 사 달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저간의 얘기를 들어 보려 점심을 먹기에는 좀 이른 시간으로 약속을 했는데 시간이 되어 나타난 후배의 모습이 핼쑥하기는 지난번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예전의 쾌활함을 되찾아 이런 저런 얘기들을 재미있게 풀어가는 모습에 다소 안심이 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그렇게 엄청난 세금을 두드려 맞았느냐고 물으니, 낄낄대며 불가항력적이었고, 복불복인 경우였단다.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사안이라는 얘기였다.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설명에 어이없어 하는 나에게 후배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간추려서 설명해 주었다.

듣고 보니 그 후배가 표현한 것처럼 불가항력적이고, 복불복인 경우라는 것이 이해가 갔다. 결국은 세금계산서 발행과 관련된 문제였는데, 자재 납품시기와 세금계산서 발행시기가 달라 발생한 문제였다.

사업을 꾸려나가며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갑의 지위에 있는 대기업에서 저들의 필요에 의해 납품시기와 다르게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주기를 원할 경우 세법을 핑계대고 거절할 수 있는 소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게다가 그것이 가짜 세금계산서도 아니고, 시기를 달리할 뿐 명확하게 거래가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그런 요구를 받을 경우 어느 업체나 쉽게 거절하기가 어려운 입장일 것이다. 기업윤리나 도덕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아도 크게 잘못돼 보이지 않으니 큰 부담 없이 응해주지 않을까? 때로는 무리하게 허위의 세금계산서를 요구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 판에, 분명하게 거래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시기를 달리하는 정도의 세금계산서를 교부해 달라고 하는 경우 거절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될 것이다. 하필이면 그렇게 처리된 자료들이 관련 기업의 세무조사 과정에서 문제로 불거진 것이다.

참 억울한 일이긴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종종 부딪히는 사례인데, 법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사안인 것이다. 언제나 실제 거래내용과 온전하게 부합되는 세금계산서를 주고받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거래를 하다보면 때로 원칙과 다소 어긋나는 상황이 초래되기 마련이다.

어쨌든 그런 비합법적인 자료가 막상 문제가 될 경우 치러야 할 경제적·시간적 낭비는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다.

얘기를 듣고 보니 거래금액은 제법 컸어도 이문이라야 몇 푼 남지도 않았을 거래에서, 덤터기 쓰듯 세금을 추징당하였으니 억울할 법도 한데, 용케 맘을 추스르고 세금을 내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며 웃어넘기는 후배가 참으로 믿음직스러웠다.

그 한 편으로는 뛰어 넘을 수 없는 갑과 을의 세계가 엄연한 상황에서 안간힘을 쓰며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는 후배가 안쓰럽게 만 여겨졌다.

세무업무를 자문해 주는 입장임에도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는 상황이 참으로 답답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여 아주 좋은 학습을 한 셈으로 여기자며 실속 없는 말로 위로를 해 주었다.

언젠가는 부딪힐 문제인데, 이번 일이 거래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 이상 위험한 요구를 하지 않도록 각성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긍정적 측면을 생각하자는 식의 공허한 얘기를 나누면서 죄 없는 쓴 소주만 축내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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