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153>

말도 많고 탈도 많던 HD드라마타운이 ‘스튜디오 큐브(Studio Cube)’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지난 2010년 국책사업이 확정된 뒤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무려 7년 만에 빛을 봤다. 사업의 시작은 2009년 박성효 전 시장 때로 거슬러 올라가니 염홍철·권선택 시장까지 대전시장 3명의 합작품인 셈이다. 역대시장들이 의기투합해 국책사업을 성공시키면 좋겠지만 드라마타운은 시장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 행정의 잔혹사다.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드라마타운이 스튜디오 큐브가 되기까지 10년 가까운 과정을 되짚어야 하는 이유는 누가 대전시장이 되더라도 다시는 이런 행정을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타운은 엑스포과학공원 땅 2만평을 30년 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무상으로 내줬다는 것 외에도 시장에 따라 행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박에서 염으로, 또 다시 권으로 시장이 바뀌지 않았다면 드라마타운은 벌써 가동됐을지 모른다.

과학공원 땅 2만평 30년 간 콘텐츠진흥원에 무상임대

과학공원에 드라마타운을 짓는 계획은 박 시장 때인 2009년 처음 나왔다. 당시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대전을 방문해 "대전에 HD드라마타운을 조성하면 좋겠다는 게 우리의 의지"라고 낙점을 예고할 때만해도 기대를 모았다. 2012년 지상파 아날로그방송 종료에 따른 고화질 방송·영상집적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으로 국비 1,500억원이 투입돼 8,000개의 일자리와 1조원 규모의 생산유발 효과가 전망됐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사업성과 성공 가능성에 부정적 의견들이 나오면서 2010년 염 시장 취임 후 가까스로 대전유치가 확정됐다. 885억원으로 국비가 절반 가까이 줄었는데도 시는 과학공원 땅 2만평을 콘텐츠진흥원에 30년 무상임대 해줬다. 금싸라기 땅을 30년간 공짜로 내줬다는 비난에 시는 1만8,000여명의 고용창출과 1조2,000억원의 경제효과, 연간 67만 명의 관광객이 온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하지만 이리저리 위치를 조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한 드라마타운은 권 시장 취임 후인 2015년에야 착공할 수 있었다. 과학공원 관리동 쪽에서 놀이시설인 꿈돌이랜드 쪽으로, 다시 과학공원 주차장으로 위치를 바꾸느라 시간과 예산을 낭비했다. 당초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2014년 완공돼 대전에서 촬영한 영화와 드라마가 세계로 팔려나갔을 것이다. 고화질(HD)시대를 겨냥한 사업이 초고화질(UHD)시대에 완성됐다.

고화질(HD)시대 겨냥한 드라마타운 초고화질(UHD)시대 완성

몇 해 전 사업지연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문화부 관계자는 "첫 위치를 제안한 곳도 대전시인데 왜 이리저리 변경하는지 모르겠다"며 "시골 읍면도 이렇게 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꿈돌이랜드 매입문제를 집요하게 따졌던 대전시의회 김경훈 의장은 염 시장 때인 2013년 "대전시가 국책사업인 드라마타운을 핑계로 꿈돌이랜드를 매입해 주려고 꼼수를 부리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2012년 대전시와 마케팅공사가 지료와 전기세 등 67억 원의 채무가 있는 꿈돌이랜드를 118억 원에 매입해준 것부터가 특혜"라고 했었다. 시민단체도 대전시가 꿈돌이랜드를 매입해 준 것이 드라마타운 사업지연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했지만 명확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채 이래저래 사업만 늦어졌다. 그 사이 또 한 번 시장이 바뀌며 대전 땅 2만평을 공짜로 내주는 국책사업은 관심에서 밀렸다.

결국 드라마타운의 기공식은 2015년 권 시장이 했다. 준공을 앞둔 드라마타운에 대한 대전의 대책이 없다는 비판에 권 시장은 이미 30년 무상임대 계약이 돼 있어 어렵다고 토로했다. 국책사업을 처음 따온 것도, 무상계약을 한 것도 대전시다. 우리 땅 2만평을 내주며 대전의 이익을 챙기지 않았다는 게 한심하다. 스튜디오를 보면 몇 만 명 고용창출과 1조원 이상의 경제효과, 수십만 명의 관광객 유치 전망이 공염불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스튜디오 큐브는 2만평 부지에 국내 최대라는 1,500평 규모의 대형 스튜디오와 병원·법정·공항·교도소 등 특수시설 스튜디오 등을 갖추고 다음 달부터 영화와 드라마 촬영도 예정돼 있다. 운영을 맡은 콘텐츠진흥원은 전국의 영화제작사에 스튜디오를 홍보하지만 경기도 일산에 이미 초고화질 전용 스튜디오가 구축됐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당장 서울·경기 등 수도권 스튜디오들과의 경쟁력 확보가 관건이다.

스튜디오 큐브는 2만평 부지에 국내 최대라는 1,500평 규모의 대형 스튜디오와 병원·법정·공항·교도소 등 특수시설 스튜디오 등을 갖추고 다음 달부터 영화와 드라마 촬영도 예정돼 있다.
사람·장비·밥차까지 가져오니 대전은 스튜디오 짓는 땅만 내줘

더 큰 문제는 대전시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 때 감독, 배우 등 제작진은 물론 조명과 밥차까지 세트로 움직인다. 대전 스튜디오에서 24시간 숙식을 해결하며 촬영한 뒤 서울로 올라가는 시스템이다. 사람도, 장비도, 먹거리까지 모두 외지에서 가지고 들어오니 대전은 스튜디오 지을 땅만 내준 꼴이다. 대전의 인력과 장비, 음식, 숙박 등을 이용할 강제조항도 없으며 영화·드라마 제작을 뒷받침할 산업적 역량도 미흡하다.

스튜디오 운영에는 콘텐츠진흥원 직원 7명과 시설·보안 등 50명 정도가 고작이니 대전시가 제시한 2만 명 가까운 고용창출은 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저작권과 배우들의 초상권 문제로 일반인이 촬영장에 들어가 구경하기도 쉽지 않으니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올 가능성도 희박하다. 강제로 지역의 장비와 인력, 시설을 이용하라고 하면 아예 대전에 안 올 수 있다는 게 진흥원의 걱정이다. 수도권에도 스튜디오는 많으니 그럴만하다.

그렇다고 금싸라기 땅 2만평을 30년간 공짜로 내준 대전시가 뒷짐만 지고 있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무용지물이 될 국책사업이면 유치하지 말았어야 했고 대전에 지은 이상 지역에 보탬이 되도록 운용할 책임이 있다. 다행히 운영을 맡은 콘텐츠진흥원이 대전과 적극 협력할 의지를 밝힌 만큼 대전시의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바로 옆에 액션영상센터와 영상특수효과타운, 대전CT센터가 있고 카이스트와 대덕특구의 기반기술도 있으니 말이다.

대전시 인력이라도 파견해 적극적으로 스튜디오 활용해야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는 노력이 없으면 허사다. 대전으로 촬영팀을 끌어들이는 일부터 실내 및 야외촬영과 특수효과, 컴퓨터그래픽(CG) 같은 후반부 작업까지 대전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은 물론 산업적·기술적 연계도 대전시의 몫이다. 액션센터와 CT센터 같은 지역시설과 장비를 최대한 활용하고 야외촬영도 대전에서 하며 부족한 음식·숙박에 지역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시가 적극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타 지역에서 온 콘텐츠진흥원 직원 몇 명이 다 할 수 없으니 대전시 인력이라도 파견해 업무효율을 높이는 것도 방안이다. 지역대학에서 영상을 공부하고도 일자리가 없어 서울로 떠나는 젊은이들이 스튜디오 큐브에서 제작자의 꿈을 이루고 취업도 한다면 금상첨화다. 대전시와 권 시장이 어떤 행정을 펴는지에 따라 스튜디오 큐브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미래 먹거리의 한 축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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