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 중편소설] Ⅲ. 야수-2

이광희 作.

하이에나는 어슬렁거리며 자동차로 다가와 유리창 너머로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코를 컹컹거렸다. 다들 몸을 움츠렸다. 어떤 놈은 자동차의 보닛 위에 올라와 앞 유리창 너머로 속을 들여다보았다. 하이에나와 눈이 마주치자 소름이 오싹 돋았다. 김 사장이 경적을 “빵”하고 울렸다. 그러자 호들갑스럽게 후닥닥 튀어 달아나더니 이내 살금살금 지프차주변으로 몰려왔다. 기다리면 먹을 것이 생길 것이란 심보였다.

“정말 싫다. 나는 저런 짐승이 다가오면 심장이 멎을 것 같아. 미치겠어.”
김 사장이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그래도 너는 강단이 있는 편 아니었냐?”
오 원장이 물었다.
“강단은 무슨, 개들만 봐도 겁을 내는 사람이야.”
“뭐라고 네가. 그럼 그동안 깡이 있는 것처럼 큰소리친 것이 다 허풍이었냐?”

박 교수가 코를 쑤셨다.
“뭐, 허풍이라고?”
김 사장이 펄쩍 뛰었다.
“그래, 허풍.”
“너희들 왜 그러냐. 이 사막 한가운데 와서. 얼굴만 보면 싸울 태세냐.”

오 원장이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말을 가로막았다.
“저 자식이 말끝마다 시비잖아.”
“내가 무슨 시비냐. 네 말투가 기분 나쁘게 해서 그런 거지.”
김 사장도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둘이 하나같이 털을 세우고 앙앙거렸다.
“내가 뭘?”
“이러지 좀 말자. 이러려고 이 사막에 왔냐. 밖에 하이에나들이 우글거리는데 싸울 정신이 있냐.”

오 원장이 핀잔을 주었다. 그제야 둘이 조용했다. 지프차의 작은 공간속에서 창밖만 너머다 보고 있었다. 피워놓은 모닥불이 슬그머니 사그라지자 하이에나들이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량의 틈새에 코를 들이밀고 냄새를 맡기도 하고 지붕위에 올라가 속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자신들의 먹잇감이 차량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꼼짝없이 차량에 갇혀 날이 새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이광희 作.

“오늘도 그렇잖아. 차를 찬찬히 몰았으면 안 빠졌을 것이고 그럼 지금쯤 호텔에서 편하게 자고 있을 건데. 지금 이게 뭐냐.”
박 교수가 옆으로 다리를 뻗으며 말했다.
“좋아, 내가 운전을 험하게 해서 그렇다고 치자. 그럼 누가 이런 곳에 오자고 했냐. 그리고 내가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했잖아. 그런데 그때는 박 교수가 뭐라고 했냐. 조금 더 가자고 했잖아. 이 좋은 붉은 사막에 와서 여기서 돌아가면 섭섭하다고, 언제 다시 오느냐며 더 가자고 했잖아. 그게 문제였어. 내가 차를 돌리자고 했을 때 그냥 돌리도록 했으면 이런 일은 없잖아.”

김 사장도 질세라 자신의 주장을 늘어놓았다.
“지난 것을 가지고 왜들 이러냐. 다 지난일 아니냐.”
“그래. 그런데 박 교수가 자꾸 시비를 걸잖아.”
“내가 언제 시비를 걸었냐. 우리가 더 가자고 했어도 네가 안 오면 됐고 또 찬찬히 잘 몰았으면 됐잖아. 제 마음대로 미친놈처럼 몰다 빠지니까 우리 핑계야.”

“뭐라고 미친놈? 말 다한 거냐?”
‘미친’이란 단어에 김 사장이 발끈했다.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이라도 주고받을 분위기였다.
“왜 그래 정말. 그만하자. 밖에 하이에나들이 우글거리잖아.”

오 원장이 김 사장의 어깨를 밀며 말했다. 그들도 그제야 하이에나가 문밖에 포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든지 몸을 사렸다. 눈만 끔벅 거렸다. 어둠 속에서 하이에나의 눈빛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그것들은 어둠속에서 눈만 반짝거릴 뿐이었다.

그들이 차 속에서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하이에나들도 하나 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무리의 두목처럼 보이는 것이 먼저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곧이어 다른 하이에나들도 하나 둘 어둠속으로 사라져 갔다. 물론 몇 마리는 자리를 뜨지 않고 차량 주변을 배회했지만 그것들도 얼마지 않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긴장감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차속이 조용해졌다. 세 사람의 숨소리만 자잘하게 들렸다. 그때 불쑥 박 교수가 입을 열었다.
“김 사장 너도 오 원장에게 할 말이 많다면서.”
“내가 무슨…….”
김 사장이 말꼬리를 뒤로 뺐다.
“언젠가 그랬잖아. 할 말이 많지만 참고 있다고. 오늘 같은 날 얘기를 해봐.”

박 교수가 꼬챙이로 쑤시듯이 말했다.
“나한테 할 말이 많다고? 그럼 해봐 무슨 말인지.”
오원장이 김 사장을 향해 퉁명스럽게 던졌다.
“그래, 솔직히 이런 말 안하려고 했는데. 오 원장 너 병원 짓고 남은 잔금 아직까지 안 갚았잖아. 그게 언제냐. 친구라서 말 안했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

김 사장이 대뜸 말을 들이댔다.
“아니 그 문제를 가지고 그러냐. 그것은 계산법에 문제가 있었던 거잖아. 나는 땅값을 더쳐준 거고 너는 건축비를 깎아 준거고. 그렇게 해서 상계 처리한 것 아니냐?”
오 원장의 목소리 끝이 올라갔다.
“상계처리는 무슨 상계처리냐. 땅값은 제대로 받은 거지. 다만 건축비에서 남은 잔금을 못 받은 거고…….”

“무슨 계산법이 그런 게 있냐. 내가 땅값과 건축비를 함께 계산하는 방식으로 해서 땅값을 시세보다 더 쳐주는 대신 건축비를 그만큼 깎아주기로 했잖아. 그렇게 해서 결산이 끝난 문제 아니냐?”
오원장이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저번에 오 원장에게 들었는데 김 사장 네가 너무 빡빡하게 계산을 했더구먼.”

박 교수가 오원장의 편을 들었다.
“뭐라고? 내가 빡빡하게 계산을 해? 나는 건축비 잔금도 못 받고 있는데 무슨 빡빡하단 거냐. 오 원장 네가 그렇게 얘기를 했구먼.”
“나는 그런 얘기 한 적이 없어. 다만 박 교수가 언젠가 그러데. 네가 병원잔금이 아직 남아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설명을 해주었지. 땅값은 시세대로 제값을 줄 테니 건축비를 좀 빼달라고 했다고 말이야.”

오 원장이 목소리를 낮추고 자분자분 따지듯이 말했다.
“무슨 땅값을 시세대로 주었냐. 헐값에 가져가놓고.”
하지만 김 사장은 여전히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김 사장.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내가 무슨 건축비를 떼어먹었다고 야단이냐.”
“그럼, 잔금이 남아있는데 떼먹은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

“야 너 너무한다. 말을 해도 그렇게 하냐. 아주 형편없는 사람이구만.”
오원장이 차창을 내리며 말했다. 속이 타는 모양이었다.
“뭐라고 형편없다고?”
김 사장이 발끈했다. 서로 고성이 오갔다. 차량 속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만들 하자, 이러려고 붉은사막에 온 것은 아니잖아.”
이번에는 박 교수가 나서서 두 사람을 말렸다. 둘 다 마음이 몹시 상한 모양이었다. 얼굴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앉아 있었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 섭섭한 것 다 털어놓고 가자. 그래. 내가 건축비 잔금 남았다면 돌아가서 따져보고 돌려줄게. 대신 이제 거래는 끝이야. 너하고는.”

오 원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찬바람이 쌩하고 돌았다.
“알았어. 더 이상 거래할 일도 없네. 잔금이나 마무리 지어.”
김 사장도 한 치를 물러서지 않았다. 바락 거리는 아이처럼 대들었다. 
“더럽고 치사하다. 잔금이 몇 백 될라나.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이런단 말이냐. 이게 친구냐?”
“친구, 그럼 너는 그 몇 백을 안주고 지금까지 버티면서 친구타령이냐?”
두 사람은 치고받기를 거듭했다. 분위기가 살벌했다. 서로 눈빛도 주지 않았
다. 그들의 말처럼 이미 친구가 아닌 것처럼 쌀쌀했다.

“그만들 하자, 이게 뭐냐. 친구지간에 큰돈도 아니고 부스러기를 가지고 얼굴 붉히고. 창피하다.”
박 교수가 둘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 원장이 발끈하고 나섰다.
“창피하긴 뭘 창피하냐. 그래 몇 백 된다고 치자. 땅값은 시세보다 더 줬어. 내가 복덕방에 알아봤어. 그것도 다른 사람 땅도 아니잖아. 김 사장 네 땅이었지. 그곳에 건축을 했는데 땅 값은 따로 따지고, 건축비는 건축비대로 또 따져. 한꺼번에 퉁 치기로 했잖아.”

“말이 안 되잖아. 그 땅 너한테 안 팔았으면 다른 사람한테 더 비싸게 팔았어. 사러온 사람이 있는데도 네가 병원을 짓는다고 해서 싸게 준거잖아. 그럼 건축비 잔금을 마무리를 지어야지. 화장실 갔다 밑 안 닦은 것처럼 지저분하게 그러냐.”
“뭐 지저분하게. 말 다한 거냐. 정말 상대 못할 사람이구만.”

오 원장이 식식거렸다. 평소 이성을 잃지 않던 오원장이 단단히 열이 난 모양이었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했다.
“정말 너무들 한다. 이곳까지 와서 돈 얘기냐. 더러운 놈들아.”
박 교수가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더러운 놈이라니. 박 교수 말다했어. 뭐가 더럽냐. 솔직히 잔금이 남아있어 말한 건데. 뭐가 더러운 놈이냐.”

김 사장이 이번에는 박 교수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야 죽인다. 김 사장 계산법이 그러냐. 알았어. 알았다니까. 돌아가는 즉시 얼마 남아있는지 보고 떨어버릴 테니까. 십 원짜리 하나도 안 깎아 치사하게.”
오원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치사하긴 누가 치사하냐.”

김 사장이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김 사장 정말 그만하자. 이게 친구냐?”
박 교수가 말을 잘랐다.
“친구는 무슨…….친구가 이런 거냐?”
김 사장이 말했다.
“말 잘했다. 나도 품격 안 맞는 너하고 친구 안한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너같이 무식한 놈하고 친구하냐.”

오 원장이 쓴 소리를 내뱉었다.
“뭐야, 무식한 놈. 그래 너는 그렇게 똑똑하냐. 잘났다 잘났어.”
“이게 뭐냐. 밖에는 야수들이 우글거리는데 차안에서 친구들끼리 치고받고. 창피한줄 좀 알아라.”
박 교수가 “빵”하고 경적을 크게 울렸다. 잠시 휴전 분위기가 감돌았다. 각자 말없이 앉아 있었다. 모두 각기 다른 방향으로 어둠이 내려앉은 사막을 넘어다보고 있었다. 정적만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김 사장이 입을 열었다.

“너도 할 말 없어. 박 교수.”
“내가 왜?”
“우리 아들 진로 문제로 조언 좀 구하자고 했는데 뭐 대단하다고 만나 주지도 않냐.”
“그것은 또 무슨 얘기야. 그때 이야기 했잖아. 해외 학술대회 있어서 그곳에 다녀오느라 시간을 못 냈다고. 그다음에 찾아오라니까 오지 않더니만. 그게 무슨 소리냐?”

“나도 다 들은 얘기가 있어. 입장 난처하니까 해외 학술대회 나갔다고 둘러댔잖아.”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내가 왜 거짓말을 하냐. 안 나간 해외 학술대회를 나갔다고 속인거란 이야기야. 이사람 몹쓸 사람이구만.”
“몹쓸 사람. 말이면 다 말이냐?”
김 사장이 다시 빨끈했다. 얼굴이 훅훅 달아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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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디트뉴스24 사장·소설가
이광희 소설가는 지난 1997년 구인환 선생과 윤병로 선생의 추천으로 천료되었으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붉은새> 상·하, <청동물고기> 1·2·3권, <소산등>, <문화재가 보여요>, <충청혼맥> 등이 있다. 현재는 본보에 연재소설 <진시황과 여>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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