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 중편소설] Ⅲ. 야수-1

이광희 作.
김 사장은 계속해서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았다. 굉음과 함께 더욱 진한 연기를 토했다. 하지만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헛바퀴가 돌았다.
“저 자식은 황소고집이야. 제 마음대로야. 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잖아.”
“..........”
“너도 인정하지, 저 자식은 본래 꼴통이었잖아. 우리가 놀아주니까 같이 노는 거지 애초에 꼴통이었어. 고2때 나보고 같이 사창가 가자고해서 애를 먹었다니까.”

“그래?”
오 원장은 흥미롭다는 눈치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사귀어온 친구들인데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귀가 솔깃했다.
“그럼, 그때부터 저희 아버지 눈 속이고 거기 드나들었어. 내가 알지. 짱돌이야.”
“그럼 너도 고2때…….”

오원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저 자식 때문에……. 그날 4반 담임 선생님한테 잡힐 뻔했잖아. 들어갔다 나오는데 글쎄 그 선생님이 들어 오시더라니까. 그래서 저 자식하고 뒷담을 넘어서 도망쳤지. 잡혔으면 퇴학이었어. 생각만 해도 아찔해.”
박 교수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일찍 까졌었네. 너희들 말이야. 그런데 나는 왜 빠졌지?”
“글쎄. 그날 네가 왜 빠졌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저 자식은 그때부터 잡놈이었어. 그때부터…….”

“나도 잡놈이란 것은 알았지만 그 지경인지는 몰랐다.”
오원장이 조금 소외감을 느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자식 고3때 이웃집 아가씨를…….아니다.”
박 교수가 뱉은 말을 얼른 주워 담았다.
“뭐라고? 이웃집 아가씨를?”

오원장이 낚시를 낚듯 되물었다.
“아니야. 너 같이 순진한 사람한테 그런 얘기를 하면 안 되지. 그 비밀은 지켜주어야지.”
“뭔데, 너희들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구나.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지. 매일 붙어 다녔는데.”
오 원장은 기분이 언짢았다. 자신 몰래 둘이서 만든 추억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듣고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가능해. 네가 집에 들어가고 나면 저자식이 꼭 일을 벌였어. 너는 시내에 집이 있었잖아. 우리는 조금 변두리고. 그러니까 너희 집에서 놀다 돌아오는 길에 둘이서 일을 많이 꾸몄지.”
“30여년 만에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동안 왜 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까.”
“사는 것이 바빠서 서로 이야기를 못한 거지. 좌우지간 저 자식은 그때부터 꼴통이었다니까.”

차에서 김 사장이 내렸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한 눈치였다. 셋은 다시 지프차의 그림자에 나란히 앉았다. 오원장이 중간에 앉고 양 옆으로 김 사장과 박 교수가 앉았다.
“지나가는 차를 기다리거나 차가 다니는 길목까지 걸어 나가거나 둘 중에 하나를 해야 할 거 같다.”

김 사장이 단내를 풍기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 얼마나 떨어졌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가냐.”
박 교수가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그럼. 그냥 여기서 기다려?”

김 사장이 박 교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말속에 가시가 돋아있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지새워야할지 몰라. 저녁을 일찍 먹고 불을 피울 준비를 하자. 해가 있을 때 준비를 해야지 어두워지면 어려워.”
오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저녁을 먹자고?”

박 교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해는 금방 져. 그 다음에는 불을 피워야지. 그러지 않으면 맹수들이 올 수도 있고. 추위를 견디는 것도 어려워.”
“선택의 여지가 없네. 저녁을 일찍 먹고…….”
김 사장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단하게 먹고 밤을 대비해야겠다. 정말 맹수가 오면 큰일이잖아. 가이드의 말이 헛말은 아닐 거야. 내가 알아본 바로는 붉은 사막에 하이에나가 산데.”
박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게 고여 있었다.
“코요테가 아니고?”

“코요테보다 하이에나가 더 큰 위협이란 거야. 하이에나는 턱뼈가 강해 물리면 살아나기 힘들고 게다가 그놈들에게 잡히면 뼈도 남지 않는다는 거야.”
박 교수가 말을 하면서도 소름이 돋는 듯 움찔거렸다.
“그래?”
김 사장이 귀를 쫑긋 세웠다. 작은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적잖게 놀라는 눈치였다. 

“코요테는 늑대처럼 홀로 다니지만 하이에나는 그렇지 않아. 무리를 이루고 다니면서 쓸어버리잖아. 잔인한 놈들이야.”
“그렇게 무서운 놈들인가.”
김 사장이 몸을 움츠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이에나가 출몰하면 큰일인데.”
오원장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김 사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모습이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생긴 것과 달리 겁이 많았다.

그들은 가지고 온 마른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육포와 난이란 마른 빵, 버터와 치즈약간, 그리고 물 몇 모금이 전부였다. 물은 조금 넉넉하게 가져왔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사막에서 머물러야 할지 몰라 최대한 아끼기로 했다. 휘발유도 마찬가지였다. 여분을 충분하게 싣고 왔지만 가능하면 엔진을 끄고 버텼다.

저녁노을에 물든 붉은 사막이 더욱 발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녀자의 알몸처럼 부드러운 곡선이 이리저리 이어져 있었다. 그것은 온전한 붉은 선이었다.
내려가는 듯하면 올라가고 깊은 우물이 패인 듯하면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앞에서 가리면 뒤에서 풀어헤쳤다. 참으로 오묘한 모습이었다.
하늘을 유혹하기 위한 대지의 몸부림이었다. 그것이 손에 만져지도록 입체화된 것이 붉은 사막 이었다.

자동차의 그림자가 점점 길게 모래위에 드리워졌다. 열기는 여전했다. 마른 목을 축였다. 물을 아껴먹었지만 그래도 탈진이 와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적당하게 수분을 섭취했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자동차는 모래밭에 깊이 빠졌고 밤은 몰려오고 있었다. 전화가 되는 곳도 아니고 답답했다. 몸부림친다고 누가 달려올 기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하루 밤을 보내고 다음날 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
자동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워온 나무뿌리로 불을 지폈다. 생각보다 빨리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붉은 사막 동쪽부터 검붉게 물들어왔다. 붉은 기운을 머금은 태양과 붉은 사막과 저녁노을. 모든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노란 자동차와 구릉과 풍문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세 사람의 얼굴도 빨간 홍시가 되었다.

이광희 作.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까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해가 지고 모닥불 주변에 셋이 모여 앉았다.
“그래도 좋다. 이것이 사막에서 맛보는 정취지.”
박 교수가 모닥불을 보며 얼굴을 폈다.
“정말 좋다. 이러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사막 한가운데서 밤을 보내겠냐.”

오 원장이 김 사장과 박 교수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래. 차가 빠져 이루어진 일이지만 좋은 추억이 되겠어.”
김 사장 역시 자신으로 인해 차가 빠졌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
“벌써 우리가 30년을 넘게 이렇게 살았어. 잠깐이야.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남은 시간을 아껴서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 원장이 발갛게 피어오르는 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맞는 말씀. 30년의 세월이 순간처럼 지나갔어. 어른들이 나이가 들면 시간이 쏜살같이 간다더니 정말 그런 것을 느껴. 신입생을 받을 때마다 나는 절감하지.”
“박 교수는 그래도 늘 싱싱한 아이들과 함께 놀잖아. 우리는 살벌한 세상에 살다보니 사는 것도 거칠어지는 것 같아. 내가 본래 잡놈은 아니었잖아.”

“뭘, 너는 본래 잡놈이었어.”
오원장이 말을 잘랐다.
“그래? 나는 정말 순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순진하다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웃겠다. 우리 둘이 너 때문에 이렇게 세상을 일찍 배운 것도 있긴 하지.”

박 교수가 오 원장을 보며 말했다.
“내가 뭘, 나는 도리어 너희들한테 배웠는데. 담배도 그렇고 술도 마찬가지고.”
“야, 세상이 웃겠다. 너 때문에 우리가 배웠어. 그뿐이냐. 대학 들어가서 요정집 드나든 것도 너에게 배웠어.”

오 원장이 낄낄거렸다.
“뭐라고? 내가 왜.”
“김 사장 네가 우리를 그런 곳에 데리고 다녔잖아. 건설회사 다닐 때 접대를 한다나. 어쩐다나. 요정집 맛을 가르쳐줬지.”
“내가 그랬나?”

김 사장이 겸연쩍게 웃었다.
“그럼, 네 덕분에 정말 좋았었어. 안 그러고서 우리가 어떻게 요정집 구경을 할 수 있었겠냐. 그 나이에.”
오원장이 박 교수를 보며 말했다.
“맞아.”  

그들은 늦은 밤까지 지난 추억을 돌이켰다. 하늘에서 별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이렇게 많은 별을 본적이 없었다. 총총하게 조금의 틈도 없이 별이 하늘에 들어차 있었다. 색깔도 가지각색이었다. 반짝이는 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흐릿한 별, 밝은 별, 찌그러져 보이는 별, 그림자를 드리운 별, 온통 하늘이 별로 채워진 모습이었다.

그들이 별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기분 나쁜 울음소리가 들렸다. 별들이 반짝이는 사막 한가운데 또 다른 별들을 흩뿌린 모습이었다. 반짝거리는 불빛이 어둠 저편에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불빛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김 사장이 화들짝 놀랐다.
“왔다.”

이 한마디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동차 속으로 뛰어들었다. 열기가 사라진 자동차 속이지만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불가에 있던 것과는 달랐다.
뒷자리에 실려 있던 가방을 풀어 옷을 챙겨 입었다.

그들에게 한기를 심하게 몰고 온 것은 기온보다 창밖의 하이에나였다. 그것들은 그들이 차에 오르자 슬금슬금 불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코를 씰룩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노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캄캄한 차속에서 유리창 너머로 내다본 풍경은 공포였다. 하이에나가 20여 마리는 족히 되어 보였다. 소름이 오싹 돋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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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디트뉴스24 사장·소설가
이광희 소설가는 지난 1997년 구인환 선생과 윤병로 선생의 추천으로 천료되었으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붉은새> 상·하, <청동물고기> 1·2·3권, <소산등>, <문화재가 보여요>, <충청혼맥> 등이 있다. 현재는 본보에 연재소설 <진시황과 여>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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