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구 박사의 그림으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44>의학 속 누드화

고대의학을 소재로 한 명화나 삽화에서 여성의 누드화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원전 400-500년의 히포크라테스 시절은 물론 1500년대의 중세 유럽을 거치는 동안 그림 속 주제로 여성의 누드를 그릴 만한 용기 있는 화가는 없었다. 게다가 여성의 누드를 그리는 것이 철저히 억압됐던 시대여서 일반 누드는 물론 의학을 주제로 한 누드화는 더욱 희소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의 누드화는 유럽 왕정시대에야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했다.

옷을 입은 남녀 모델보다는 옷을 벗고 육체의 일부가 노출되는 그림이나 조각들이 유행했다. 그래도 이 시대에도 의학 소재의 누드를 그린 명화는 극히 드물었다.

다만 여성의 누드를 그리고자 열망했던 몇몇 화가들이 역사적‧의학적 사실을 빙자해 그림의 내용과 제목을 당시의 의학적 사실과 일치시켰다. 때문에 마치 누드화가 아니라 역사적인 의학 그림인 듯 보이는 그림들이 드물게 발견된다.

그림1. ‘아스클레피오스의 진찰’ 에드워드 존 포인터, 캔버스에 유채, 228.6×151.1㎝, 1880년, 개인소장.

그림 1은 기원전 400년경이 배경이다.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여성 환자들을 진찰하는 <의학의 신(神)의 진찰>(1880)이다. 그림 속 환자들은 질병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아름다운 여성의 누드를 그리고자 했던 화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진찰’은 누드를 그리기 위한 변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림 2. ‘클레오파트라의 자살’ 귀도 카냐치, 캔버스에 유채, 140×159.9㎝, 1659년경, 빈미술사미술관(오스트리아).

그림 2는 1658년 카나치(Cagnacci)가 그린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이다.

여성들은 옷을 벗은 상태지만 여왕의 영광, 아름다움, 사랑, 그리고 죽음까지 한 폭의 그림에 모든 것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림의 제목이 말하듯, 역사성을 띠고 있어 누드화의 느낌이 전혀 없다.

제목이 주는 건전하고 신성한 느낌은 단순 누드화와 거리를 두게 한다. 이는 그림을 감상하는 또 다른 묘미이며 우리 감상자들이 화가의 은밀한 의도를 짐작해보는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시대의 흐름은 누드화를 유행시켰지만, 의학을 주제로 한 명화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상품화된 그림의 주제가 될 수 없었다.

다만 최근 들어, 현대인의 황폐해지는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주제의 명화 속에 간혹 누드가 등장한다.

그림3. ‘잠에서 깨기 직전 석류 주변을 날아다니는 한 마리 꿀벌에 의해 야기된 꿈’ 살바도르 달리, 캔버스에 유채, 41×51㎝, 1944년, 티센-보르네미차 미술관(스페인 마드리드).

그림 3은 1944년 달리가 그린 <석류 주위에 벌이 날아다녀 잠에서 깨어나기> 에서는, 현대인의 성적 강박 관념과 편집증 등 혼란스런 정신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현대인의 절망, 고뇌, 정신, 신경증 등을 묘사한 의학 그림들은 있지만, 역시 여성의 아름다운 누드화는 의학을 주제로 한 명화의 주제로써는 부적합한 듯하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