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구 박사의 그림으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42>한국과 동양의학의 탄생과 발전

이승구 선병원재단 국제의료원장 겸 정형외과 과장.

서양에서는 2000여 년 전 히포크라테스라는 걸출한 의사가 나타나 의료의 기본 이념을 빠르게 확립했던 반면,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설 등 자연치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이후 1000년간 동서양 의학의 위상은 정반대 양상이었다. 서양은 중세 암흑시대에 접어들면서 종교적 맹신에 빠져 의료 발전의 정체기를 맞이했다. 반면, 동양은 서양보다 1000여년 앞서 중국과 티베트에서 약초, 한약, 침, 뜸 등 자연적 접근에 따른 의료 기술을 발달시켰다.

그러나 1500년경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에서는 현대적 의학을 발전시킨 반면, 동양은 19세기까지 폐쇄정치와 늦은 문호개방으로 뒤처지기 시작했다. 동양의 현대의학 수용이 서양보다 400~500년 늦어진 이유다.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의학서인 <황제내경(皇帝內經)>은 건강을 평소에 잘 관리함으로써 오래 살도록 하는 양생법과 음식 섭취를 기본으로 한 명상, 약제, 뜸 등의 치료법을 기록하고 있다.

‘환자 다리에 침을 놓는 조선 침술사’ 작자 미상, 수묵담채화, 19세기경, 런던 웰컴 도서관.

중국의 고대의학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고조선 이후 한사군 시대(기원전 313-108)다. 당시 중국과 지역적으로 인접해 문화교류를 한 낙랑군을 통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순으로 전파됐다. 다시 백제는 일본과 의학교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의학은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임진왜란 당시 저술된 허준(許浚, 1539-1615)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이 광해군 5년(1613년)에 목활자본 25권으로 간행됐다. 이후 1724년에 일본판, 1763년에 중국판으로 편찬됐으며, 2009년 7월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동의보감 속 인체 장기 모식도’ 허준, 1613년.

고대일본의 의학은 백제를 통해 비로소 시작됐다. 459년 백제에 의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면서다. 개로왕이 고구려 출신의 명의(名醫) 덕래를 파견했는데 그가 바로 고대일본 의술의 시조로 추앙되고 있다.

984년 일본의 단바노 야스요리가 편찬한 <의심방(醫心方)>에는 백제와 신라의 의서인 <백제신집방(百濟新集方)>과 <신라법사방(新羅法師方)>의 의학 처방이 인용돼 있어 삼국의 의학이 일본 고대의학이 시초가 됐음을 알 수 있다.

‘의심방((醫心方)’ 단바노 야스요리, 984년.

또 선조와 광해군 시기의 침의(鍼醫)였던 허임이 저술한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에는 각 혈(血) 자리의 위치와 작용, 침 뜸법, 혈을 잡는 방법들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침구경험방>은 일본에서도 간행돼 우리나라 한의학이 고대일본 의학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18-19세기 우리나라보다 빨리 문호를 개방하면서 현대 서양의학을 받아들였고, 그 뒤로 일본 전통 한의학은 침, 뜸, 지압과 보양제 등으로 축소돼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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