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26>

독일지도.
독일에서는 각 도시와 도시를 잇는 도로를 ‘가도(街道: Straße=Route)’라고 하며, 전국의 주요도로를 7개 권역으로 나누고 있다.

먼저, 프랑크푸르트 남동쪽 약100㎞ 떨어진 뷔르츠부르크에서 퓌센까지 ‘알프스를 넘어서 로마로 통하는 약350㎞의 도로’를 ‘로맨틱 가도(Romantic Straße)’라 하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까지 이어지는 약 600km의 도로는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대문호 괴테가 작가, 변호사, 과학자 심지어 10여 년 동안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을 역임하는 등 괴테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로맨틱 가도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괴테 가도(Goethe Straße)’가 있다.

그리고 하이델베르크에서 바덴바덴을 거쳐 스튜트가르트, 칼프, 투빙겐, 콘스탄츠까지 약400㎞에 이르는 도로 양편의 울창한 숲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여서 ‘검은 숲(Schwarzwald)’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독일의 자연을 구경할 수 있는 ‘판타스틱 가도(Fantastic Straße)’, 남쪽 보덴 호수에서 서쪽 베르히테스가덴까지 약 500㎞의 알프스 산악지대는 여름에는 등산과 패러글라이딩, 겨울철에는 스키와 스케이트로 유명한 ‘알펜 가도(Alpen Straße)’가 있다.

고성 전경.
독일 최대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한자동맹으로 유명한 루벡, 소금도시로 유명한 루네부르크까지 약300㎞는 ‘북부 독일의 로맨틱 가도’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에리카 가도(Erika Straße)’, 그림(Brüder Grimm: 1785~1859)형제가 태어나서 자랐던 도시 하나우에서부터 학교에 다니던 카셀, 그리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 ‘장화신은 고양이’ 등 형제들의 아름다운 동화의 배경이 되었던 메르헨, 함부르크 부근의 작은 도시 브레멘까지의 ‘메르헨 가도(Marchen Straße)’, 그리고 네카 강과 라인 강이 합류하는 프랑크푸르트 남쪽 만하임에서부터 하이델베르크를 거쳐 독일을 가로질러 바트빔펜, 뉘른베르크까지 약320㎞의 ‘고성가도(Burgen Straße)’에는 중세 고성의 붉은 빛깔의 성곽 50여 개가 즐비하다.

정승열 한국공무원문학협회 회장
독일 교통의 중심지인 프랑크푸르트는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공습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가 재건한 탓도 있지만 볼만한 것이 별로 없고 인근 도시들에 유적이 많은데, 특히 중세대학의 도시로 유명한 하이델베르크는 유럽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고성으로 유명해서 매년 세계 각국에서 3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하이델베르크는 나폴레옹이 유럽 전역을 점령한 1815년 러시아 황제, 오스트리아 황제, 프로이센 왕 등이 이른바 신성동맹을 체결한 역사적인 도시로서 오덴발트 구릉지에서 발원한 네카 강이 라인 평야로 흘러드는 지점에 구시청사 광장․ 하이델베르크 대학․ 하이델베르크 고성(古城) 등이 주요관광 코스로서 프랑크푸르트에서 버스나 기차로 1시간 거리이다.

기차 중앙역에서 33번 시내버스를 타고 고성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승차장이 있는 등산철도역(Bergbahn)에서 내리면 되는데, 15유로를 내고 하이델베르크 1일권 패스를 구입하면 하루 동안 시내버스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성입장료와 케이블카 이용이 가능하다. 패스가 없다면 등산철도역에서 7유로를 내고 티켓을 구입하면 케이블카 왕복요금과 고성 입장료가 포함되지만, 구시청 광장에서 학사주점이 늘어선 골목길로 고성에 올라가는 여행객도 많다(하이델베르크에 관하여는 2017.06.09. 하이델베르크 구시청광장 참조).

해자와 성벽
고성은 1400년경 하이델베르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해발 100m의 예텔불 산위에 쌓았는데,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한 깊이 20m의 해자(垓子), 해자를 건너는 도개교(道開橋), 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높은 첨탑(尖塔)과 두께가 7m나 되는 견고한 성안의 궁전들이 있으며, 시대별로 다양한 고성의 아름다움 이외에 하이델베르크 시내와 네카 강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가 되어 더욱 인기 있는 장소이다.

파괴된 첨탑
해자를 건너 고성으로 들어가면 성탑 전면에는 왕국의 상징인 문양이 뚜렷한데, 성안에 들어서면 왼쪽의 단조로운 저택들은 선제후 루돌프 3세가 독일 왕으로 선출되던 1400년부터 기거했던 저택이고, 그 뒤편에 관광객을 위한 일반화장실이 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는데도 화장실 사용료를 따로 받는다.

 

세계최대의 포도주통
입구에서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역대 제후들과 주교(主敎) 상을 조각하여 부착한 르네상스식 건물이 오트 하인리히 궁(Place Otto Heinrich)이고, 그 왼편으로 지붕이 뾰쪽한 고딕 양식의 프레드리히 궁(Palace Fredrich)이 있어서 여러 시대에 걸쳐 오랫동안 번성했음을 알게 해준다. 그런데, 오트 하인리히 궁은 외관의 독특함과 함께 궁의 지하층을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독일의 전통약재를 전시하는 ‘의약박물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의대발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의약박물관에서 알뜰하고 자상하게 소개한 여러 약재며, 치료기구, 서적 그리고 유리병에 담겨진 쑥이며, 뱀가루, 개구리 같은 것이 원통형 유리병이나 우리네 한약방의 약재상자와 비슷한 것을 보면 자연에서 얻는 약재들은 동서양이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오트 하인리히 궁과 직각을 이루며 시내 쪽으로 길게 자리 잡은  프레드리히 궁은 프레드리히 4세(1592∼1656)가 사용하던 궁으로서 궁전 옥상에서는 네카 강과 하이델베르크 시내가 한눈에 바라보여서 ‘하이델베르크의 전망대’라고도 한다. 특히 궁의 지하에는 길이 8.5m, 높이 7m인 세계 최대의 오크 포도주 통 한 개가 있는데, 오크통에는 무려 221,726리터의 포도주를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하인리히 궁.
당국에서는 관람객들이 오크 통 주위를 오르고 내려가며 한 바퀴를 돌아보도록 올라가고 내려갈 수 있는 계단까지 만들고, 또 관광객들에게 오크통에 담긴 포도주는 한잔씩 무료로 시음하도록 서비스하면서도 포도주 잔은 별도로 판매하는 게르만족 특유의 상술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약재 기구
도대체 작은 도시에 이렇게 큰 포도주통을 왜 만들었을까 싶지만, 이것은 당시 칼 테오도르 왕이 농민들에게서 세금으로 포도를 받은 때문이라고 하니, 몇 년 전까지 우리의 농촌에서도 농지세(農地稅)를 곡식으로 받아들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칼 테오도르 왕은  하이델베르크를 관통하는 네카 강위에 목재 다리 대신 튼튼한 철제다리를 건설한 왕이다(칼 테오도르 왕에 관해서는 2017.06.09. 하이델베르크 구시청광장 참조).

전통약재박물관
성의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궁중의 정원인데, 푸른 잔디밭이 찾는 이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준다. 튼튼했던 고성은 약300년 동안 외적의 침입을 잘 막아냈지만, 1693년 왕위계승전쟁 당시 프랑스의 루이 14세 군대의 화약과 대포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성곽의 첨탑이 절반가량 깊은 해자 쪽으로 무너진 채 그대로 있다.

부서진 첨탑의 아랫부분은 푸른 이끼가 잔뜩 끼어 있어서 고성의 영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무너진 첨탑을 다시 복원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복원은 원형을 변조시키는 것이라는 반대여론에 밀려서 그대로 두기로 했다고 하니 우리의 문화유적을 관리하시는 관리들도 한번쯤 참고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일까? 유럽의 다른 성들과 달리 폐허처럼 스산한 느낌이 가득하다

건약재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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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서 본 테오도르 다리.
고성에서 본 하이델베르크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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