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가뭄 속 해외연수 떠난 도의원들, '명분'을 생각한다


요즘 충남도의회가 시끄럽다. ‘시·군 행정사무감사 조례’가 시·군 공직사회의 반발을 사고 있고, 농업경제환경위원회 의원들은 극심한 가뭄에 애타는 농심을 외면하고 유럽으로 해외연수를 떠나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옛말들이 떠오른다. 먼저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말이 생각난다. 모두들 알다시피 “오해받을 짓은 애초에 하지 말라”는 뜻이다. ‘시·군 행감 조례’가 부활한 이 시점에 잘 부합하는 말이다. 

지난해 10월 16일 공주시에서 열린 고맛나루 배드민턴대회. 이 행사에 참가한 충남도의회 윤석우 의장은 충남도 의전 서열 2위인데다,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장임에도 축사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에 대해 공주지역의 한 언론은 ‘오시덕 공주시장이 내년 지방선거에 시장 출마가 예상되는 윤 의장을 견제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놨다.

올 초, 예산군 출신 김용필 의원도 비슷한 경우를 당한 경험담을 자신의 SNS에 소개했다. 그러면서 지역정가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치단체장 도전의지를 보이는 도의원들에 대한 현직 단체장들의 견제가 시작됐다는 시각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6월. 충남도의회는 보란 듯이 ‘시·군 행감 조례’를 통과시켰다. 지방자치법에 ‘시·군 위임사무에 대한 행정사무감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도의회의 권한을 부여한 내용과 시행령의 ‘시·군을 감사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부분이 상충되기 때문에 하위법인 시행령의 관련내용을 삭제한 것.

이에 시·군의회와 공무원노조는 ‘길들이기’, ‘영향력 확보’라고 반대했지만, 도의회는 ‘행자부와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따른 조치’, ‘법적으로 보장된 권한’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강행했다. 좋다. 법을 다루는 기관인 의회가 법적 판단과 절차에 따른다고 하지 않는가. 

짙어지기만 하는 정치적 의혹…되묻게 만드는 강행 논리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기 어렵다. 아직 상위법이 개정되지도 않았는데 굳이 도의회가 먼저 조례를 고칠 필요가 있을까? 그것도 전국 시·도 중 최초다. 의견수렴을 거쳐 공감대를 형성한 다음 추진하자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강행한다. 마치 어떻게든 지방선거 이전에 10대 도의회가 칼자루를 휘둘러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시·군 길들이기’라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마치 일부러 오얏나무를 찾아가 갓을 고쳐쓰는 듯 하다. 물론 도의회는 손사래 치고 있다. 

조례통과에 앞서 시·군의회 의장단은 윤석우 의장과 조례를 대표 발의한 김종문 운영위원장을 항의 방문한 적 있다. 이 자리에서 윤 의장은 시·군의장단의 항의를 일축하며 “기초단체장의 제왕적 권한을 같은 지역사회에 속한 기초의원들이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또 다른 당위성을 제시했다. 

쉽게 말하면 “당신들이 똑바로 못하고 있으니 우리가 제대로 해 보겠다”는 의미다. 도의회가 시·군의회보다 우월하다는 논리가 기저에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도의회는 이 역시 그런 의도는 없다고 한다.

여기서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옛말이 또다시 떠오른다. 농업분야 소관 상임위원회가 극심한 가뭄으로 농민들이 신음하고 있는 이 때 해외연수를 떠났다. 가뭄을 예상하지 못하고 미리 일정을 잡는 바람에 어쩔수 없다고 해명했지만, 성난 농심 앞에서 통할리 만무하다. 

탄핵이라는 비상시국에 교육위원회와 문화복지위원회가 해외연수를 추진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게 불과 4개월 전이다. 심지어 문복위는 끝까지 연수를 강행하다 공무국외출장 심의 역사상 최초로 부결이라는 불명예도 기록했다.

이쯤 되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많은 반대와 논란을 무릅쓰고 ‘시·군 행감’을 강행하려는 도의회가, 그럴만한 명분과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촛불정국 이후 주권자들이 선출직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도덕적 잣대는 더욱 엄격해졌다는 걸 명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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