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148>

시골마을에 어느 날 대규모 공장이 들어오게 됐다. 휴양림과 청소년 수련시설이 있는 조용한 동네에 웬 공장인가 하여 주민들은 의아했지만 삶이 나아진다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기존 도로를 넓히면 될 것을 450억 원을 들여 진입도로를 다시 낸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에게 항의를 하고 시장에게 탄원서도 내봤지만 소용없었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청와대와 감사원에 어이없는 행정을 바로잡아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대전하소산업단지가 조성되는 동구 하소동 주민들의 이야기다. 산업단지는 2019년 6월 준공 예정이며 산단 진출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지원도로는 2019년 말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동구 삼괴동 월계교차로에서 산단 입구까지 총연장 4.56㎞에 국비와 시비 등 450억 원이 투입된다. 지역 국회의원은 국토부로부터 국비 403억 원을 확보했다는 자랑도 했었다. 당초 일정보다 사업이 늦어져 도로의 공정률은 현재 5%다.

이 노선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기존도로를 최대한 활용하면 될 것을 대전시가 빙 둘러가는 신설도로를 만들며 70억~80억 원의 예산을 낭비한다고 주장했다. 돈이 많이 드는 교량을 2개나 설치하면서까지 새 도로를 내는 이유는 특정 정치인 측근의 농장을 수용해 토지 보상비를 주기 위함이라는 게 주민들의 의심이다. 산업단지 이야기가 나오기 전부터 아무개 농장으로 도로가 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는 것이다.

황인호 대전시의원 “기존도로 활용하면 될 걸 100억 가까운 예산낭비”

황인호 대전시의원도 기존도로의 활용방안을 두고 불필요한 교량을 만들어 100억 가까운 예산을 더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수차례 지적했다.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비사업이라는 이유로 일사천리 진행되는 사업을 쫓아다니느라 그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병원신세까지 졌다. 하지만 대전시의 도로신설 계획을 변경할 수는 없었다. 황 의원은 지금도 "왜 예산을 더 써가며 새 도로를 내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전시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타당성 조사와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을 추진했으며 주민 의견도 충분히 수렴했다고 반박한다. 기존도로를 활용하면 예산이 적게 들기는 하지만 초등학교와 마을 앞을 지나기 때문에 사고위험이 높아져 산업용 우회도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다양한 노선을 놓고 기술적·경제적·환경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비교 검토한 결과 현재 노선이 수립된 것이기에 조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특정인의 보상을 염두에 둔 노선이라는 의심에 대전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 행정을 해서도 안 되지만 만약 그랬어도 증거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주민들은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을법한 어이없는 행정이 대전에서 벌어지는 이유를 찾겠다”고 했다. 누구든 한번이라도 현장에 가 보면 왜 이런 도로가 만들어지는지 이상하다는 것이다. 도로 계획부터 설계, 시행까지 명명백백하게 감사를 해 달라는 요구다.

7500명의 서명을 받아 대전시장에게 탄원서를 냈지만 사업이 그대로 진행되는데 화가 난 주민들은 청와대와 감사원에 탄원서와 감사청구서를 넣었다. 이들은 공사중지가처분신청도 할 예정이며 변호사를 선임해 도로 신설을 막는 법적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배후에 특정 정치인이 있고 그 결과 엉터리 행정이 벌어졌다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들은 적폐청산을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교통 백년대계 위해 노선 문제 있다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대전시를 상대로 한 주민들의 싸움은 무모할지 모른다. 시는 도로 신설에 대한 타당성 검토는 물론 설계 용역, 주민설명회까지 필요한 행정절차를 밟았고 증빙자료도 확보해 놨을 것이다. 소송을 벌이더라도 주민들이 이길 확률은 높지 않아 보인다. 컴퓨터 활용도 제대로 못하는 70대 어르신들로는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것이며 이들도 그것을 안다. 어쩌면 소송 도중에 보상비 몇 푼 받아들고 고향을 등져야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도로 신설을 막는 이유는 수백 년 살아온 고향이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반대의견을 충분히 들어줬다고, 노선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외면하는 공무원들에게 교통 백년대계를 위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대전시 행정을 믿을 수 없다는 이들의 하소연이 어디까지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더 늦기 전에 권선택 시장이 나서 의혹을 풀어주기 바란다.

하소산업단지 조감도.

대전하소산업단지 진입도로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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