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지난해 7월 대전도시철도 2호선 트램노선 발표 당시 모습. 자료사진

대전시가 유치하려는 철도박물관은 1000억 원짜리 사업이다. 시는 물론 시민단체가 나서 수십만 시민의 서명까지 받아 정부에 제출했으나 아직 성과가 없다. 시는 또 순환망도로 건설 사업비 830억 원 중 360억 원에 대해 정부 지원을 요청해 놓고 있다. 과학공원에 43층 규모로 건설되는 대전사이언스콤플렉스 총 6000억원 중 500억 원은 정부가 대주는 돈이다. 그런데 정부가 200억 원을 책임지려하지 않는 바람에 6개월 넘게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한해 정부예산이 400조 원을 웃돌지만 자치단체가 정부 돈 수백억 원을 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년 씩 매달려 다른 시도와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수백억은 고사하고 수십억짜리 사업조차 쉽지 않다. 대전시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시도가 정부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타내려 애쓰며 경쟁한다.

같은 규모 2호선 정부지원금, 광주 1조2천억 대전 0원~4천억

이런 현실에서 광주시가 내년부터 정부한테 받는 1조2000억 원은 엄청난 규모다. 도시철도 2호선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다. 광주도 대전처럼 순환선 노선으로 길이도 비슷하다. 광주는 ‘저심도 지하철’이고 대전은 ‘트램’이란 점이 다르다. 이 때문에 총사업비는 광주가 대전의 3배나 된다. 광주는 2조500억 원, 대전은 6600억 원이다. 60%를 정부에서 지원받는 사업이다.

광주는 정부의 승인을 받은 상태지만 대전은 아직 불투명하다. 대전은 정부 지원이 확정된다고 해도 광주의 3분의 1 수준만 받는다. 사업의 목적과 규모가 같은 데도 이런 차이가 난다. 돈을 대줘야 하는 정부로선 재정 부담을 덜어주는 대전시에게 고마운 일이지만 대전시민의 입장에선 손익을 따져볼 문제다.

가령, 정부가 주택 건축 자금의 60%를 공짜로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고 하자. 가족(인구)이 많은 집은 2억 원짜리 주택을 지을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이 경우 정부로부터 60%(1억2천만 원)를 지원받을 수 있다면 대부분 가구는 2억 원짜리 집을 지으려 할 것이다. 2억짜리 대신 7천만 원짜리 주택을 지으며 4천만 원만 지원받는 가구는 거의 없을 것이다. 재정문제에 관한 한, 정부에 대해 국민과 지방자치단체 입장은 다를 바가 없다.

2억짜리 신청한 '광주'와 7천짜리 신청한 '대전'

‘광주’라는 사람은 2억 원짜리 주택 사업을 신청해서 내년부터 정부 돈을 받게 돼 있고, ‘대전’이란 사람은 6600만 원짜리 주택을 짓겠다고 신청해 놓은 상태다. 대전도 본래 1억4000만 원짜리 주택을 신청해서 정부 승인까지 받았으나, ‘새 가장’이 건축 모델을 변경하면서 사업비 규모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그것조차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트램 예산을 지원받는 데는 몇 가지 난관이 있다. 첫째는 트램이란 새로운 방식에 대한 경제성이 검증돼야 한다. 사업비는 트램이 대략 메트로의 3분의 1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승객 수요도 그만큼 적은 데다 일반 도로까지 잠식하기 때문에 경제성 확보가 쉽지 않다. 의정부 경전철 파산 사태는 정부가 트램에 대해서도 더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둘째는 정부의 SOC 예산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트램을 추진하고 있는 점도 불리하다. 기본적으로는 같은 목적의 사업인데 어디는 주고 어디는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재정이 문제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대전시의 트램 공약화 요구를 뒤늦게 받아주긴 했으나 애초엔 거부됐다. 재정 부족 때문이었다. 복지 예산 비중이 늘면서 도시철도사업 지원 여력이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전국의 많은 도시들은 메트로 추진 조건이 안 되기 때문에 트램 사업을 한번 찔러보고 있다. 이미 울산 마산 전주가 트램이라도 해보자며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젠 여타의 다른 도시들까지 뛰어들었다. 이들 도시에게 트램은 밑져야 본전이지만, 이미 승인을 받은 메트로를 포기하고 재신청한 대전은 실패하면 정부 지원금 1조가 날아갈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의정부 경전철 파산으로 트램 경제성 통과 더 어려울 수도

지역경제의 측면에 보면 대전의 이런 선택은 이해하기 어렵다. 광주 지원액이 1조2000억 원인 만큼 건설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대전도 최소 1조 정도는 받을 수 있는 사업이다. 인구도 비슷하고 도시철도 2호선이란 이름까지 같은 사업이다.

광주는 내년부터 1조2000억 원을 지급받을 예정이나 대전은 겨우 4000억 원을 받기 위해 새로운 심사대에서 기다리는 중이다. 트램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교통수단이라면 이런 ‘반(反)경제적인 선택’도 가능하다. 

정말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트램은 유럽에선 일부 도시에서 트램이 부활했지만 아시아권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은 20년 전 정부 차원에선 트램 부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중국도 처음엔 유럽 영향을 받아 트램에 관심을 보였으나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광주는 2호선 사업으로  내년부터 2025년까지 7~8년 간 매년 2000억 원 정도의 공사 물량이 쏟아진다. 광주시가 발주하는 평년 물량 1200억 원보다 훨씬 많다. 광주지역 건설업체들은 큰 기대를 하고 있다. 대전지역 건설업체들에겐 남의 집 안에 걸린 ‘그림의 떡’이다. 대전 경제단체들은 환경훼손으로 논란을 빚는 사업에 대해서조차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대한다”며 사업 강행을 촉구하곤 한다.

트램은 단순히 노선 방식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경제 차원에서도 손익의 차이가 큰 문제다. 지역건설업체들은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하고 있다. 복지예산이 늘어나면서 SOC 사업 비중이 줄면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경제는 경제고 행정은 행정이지만, 지방의 기업들은 시도지사를 쳐다봐야 하는 상황이 많다.

이인구 왕회장, 트램으로 바뀌자 “잘못된 결정" 탄식

어떤 시도지사는 큰 사업을 유치해서 일거리를 만들고, 어떤 시도지사는 커다란 중앙정부 지원 사업을 따내서 지역경제에 기여한다. 광주는 2015년 U대회를 유치해서 지역경제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2조가 투입되는 2호선 사업으로 활력을 띨 전망이다.

대전은 1993년 대전엑스포와 1990년 대 중반 시작된 지하철 1호선 사업 이후로는 이렇다 할 ‘먹거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자치단체와 손잡고 도심의 자연하천 갑천을 파헤치고 월평근린공원까지 훼손해서 아파트를 짓는 것으로 먹거리를 삼으려 한다. 시장들이 지역경제에 대해선 너무 무책임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2호선 문제는 지역경제 측면에서도 봐야 한다. 

얼마 전 고인이 된 계룡의 이인구 왕회장은 대전시가 2호선을 트램으로 바꾸자 “잘못된 결정”이라며 탄식했다. 2호선은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익을 앞세우는 게 기업인이지만 지역경제의 측면에선 맞는 얘기였다. 그러나 기업인들은 -왕회장조차- ‘슈퍼갑’ 시장의 뜻에 반하는 말은 대놓고 할 수 없다. 이 전 회장도 기자에게만 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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