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 통(痛)] (사)대전교육연구소장

국가대표 선수들의 축구경기는 온 국민의 관심사다. TV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부터 국제대회에서의 축구경기를 온 국민이 가슴을 졸이며 보았다. 시원하게 이기는 경기도 있었지만, 승리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선수들이 골대 앞에만 서면 슛을 시원하게 쏘지 못하는 것이었다. 멈칫 하는 사이 볼을 빼앗기거나 어이없는 실축으로 실망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게도 시원하게 잘 달리고 볼을 잘 빼돌려서 골대 앞까지는 잘 가는데 그놈의 슛이 항상 엉성했다.

성광진 (사)대전교육연구소장
그런데 언젠가 여러 분야의 친구들이 만난 자리에서 이 엉성한 슛이 화제에 올랐다. 슛 감각이 없어서라는 둥, 아직도 선수들의 슛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라는 둥, 우리 선수들이 간이 작아서라는 둥 여러 설이 오가는데, 학창시절 운동부였던 친구의 말이 가장 그럴 듯했다. 사실 그럴 듯한 것을 넘어 오랫동안 가슴에 담겨져 기억이 또렷하다.

“그러니까 우리 선수들은 슛하기 전에 이것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강박이 순간적으로 작용하는 거야. 우리 엘리트체육은 오로지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선수를 만들려고 키우는 거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아이들을 족치기 마련이라서 운동만 하루 종일 하도록 해. 사실 그렇게 10여 년을 단련하면 본능적으로 반응하기 마련이라서 웬만한 운동신경이 있으면 잘 할 수 있어. 한데 한계가 있어. 무엇이 부족할까?”

“.........” 모두들 고개를 갸웃했다.
“창조적이지 못한 거지. 골대 앞에서는 0.01초의 찰나에서 반응해야 하는데, 이것은 창조적인 반응이 필요한 거야. 왜냐하면 골대 앞에서는 매우 다양한 장면이 나타나고 여기에는 순간적으로 임기응변의 창조적인 반응이 필요한데, 문제는 우리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억압적으로 훈련을 받으면서 자라왔거든. 운동을 오로지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처럼 윽박지르면서 훈련을 해대니 엄청나게 부담이 되는 것이지. 경기에 졌을 때는 물론이고 경기 중에도 욕을 먹거나 벌을 받거든. 그러니 움츠러드는 거야. 특히 슛 한 방으로 그 경기의 승패가 좌우되는 상황에서 선수들은 슛을 쏘기 전에 엄청난 압박을 느끼는 거야. 그러니 주변 상황에 창조적으로 반응하며 슛을 쏠 수 없는 거지. 아무리 엄청나게 많은 슛을 연습했어도 심리적으로 위축되어서 엉성한 슛을 하고 마는 거야.”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지난 2004년 한일월드컵에서 우리 선수들은 창조적인 슛을 했어. 박지성의 슛은 정말 예술이었지. 난 당시 감독이었던 히딩크가 잘했다고 봐. 선수들이 창조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 윽박지르기보다 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배치하고, 실수하더라도 격려하면서 시합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봐.” 

자유롭고 다양하게 상상력 키울 수 있는 교육해야

우리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오로지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 교육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공부하고 과외와 학원을 찾아 밤늦게까지 오로지 점수 높이기 공부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식은 쌓이고 문제 풀이에는 뛰어난 인재를 만들어내겠으나, 결국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창조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하는 것이다.

위대한 진리의 발견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발명에는 대부분 창조적인 반응이 필요하다. 창조적인 반응이란 바로 영감이다. 반짝이는 새로운 영감은 자유롭고 다양하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 반짝이는 창조적인 영감이 많아져야 2004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것처럼 우리 사회가 발전하리라고 믿는다. 지금처럼 억압적으로 공부를 강요받는 방식으로 커온 사람들에게서는 바로 이 창조적 반응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