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19>

루체른 지도
지리적으로 스위스의 중부에 위치한 루체른(Luzern)은 수도 베른(Bern)에서 열차로 1시간 반, 북쪽 취리히(Zurich)와 남쪽 인터라켄(Iinteraken)과도 각각 약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로서 루체른 주의 주도(主都)이지만, 인구는 겨우 6만 명의 작은 도시이다. 사실 수도 베른도 13만 명에 불과하고, 스위스의 최대 도시 취리히도 겨우 40만 명이다.

알프스 산맥에 걸쳐 있는 스위스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루체른은 8세기경에 베네딕투스의 수도원이 처음 설립되면서 형성된 마을이었는데, 루체른이란 ‘빛의 도시’라는 의미이다(베네딕트 수도원에 관해서는 2017.03.31. 오스트리아 멜크 수도원 참조).

정승열 한국공무원문학협회 회장
북유럽의 젖줄인 라인 강 상류와 롬바르드 지방 사이에 위치한 루체른은 교통의 중심지로서 1178년경에 자치시(自治市)가 되었는데, 1332년 스위스연방의 4번째 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쥬빙글리(Ulrich Zwingli: 1484~ 1531)의 종교개혁의 강풍이 스위스 전역에 불어 닥쳤을 때에도 가톨릭을 고수한 보수적인 도시로서 1579~1874년까지 로마 교황청 대사가 주재하는 등 가톨릭의 영향이 강하다. 1798년 유럽의 정복에 나선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했다가 1803년에 회복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루체른의 기차역을 나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호수가 루체른의 상징인 루체른 호수인데, 알프스 계곡에서 흘러내린 빙하수를 수원으로 하는 루체른 호수는 ‘피어발트 슈테더(Vierwald stättersee)’라고도 한다. 루체른 시내는 호수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뉘며, 호수 위에는 7개의 다리가 놓여있다. 7개의 다리 중 저수탑의 옆에 있는 카펠 교(Kapellbrücke: 204m)와 슈프로이어 교(Spreuerbrüke: 80m, 1407년)는 목조 다리인데, 특히 1333년에 건설된 카펠 교는 스위스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고 한다.

루체른역
그런데, 가펠교는 다리가 직선으로 쭉 뻗지 않고 중간에서 약60도가량 꺾어서 설치된 데다가 다리 위에는 고깔 모양의 삼각 지붕에 붉은 기와를 얹어서 긴 행랑처럼 만들었다. 또, 다리의 천장에는 루체른의 역사와 수호성인을 그린 17세기에 만든 147개의 판화로 장식해서 마치 전시회장 같은 모습이고, 붉은 고깔을 쓴 것 같은 목제 다리가 구부러지게 놓인 중간쯤에 있는 팔각형의 저수탑은 예전에는 망을 보던 망루였다고 한다. 아름다운 호수와 붉은 꼬갈모양의 삼각지붕, 호수 속에 둥근 성곽 같은 신비로운 모습들은 마치 동화 속 마을 같은데, 불행하게도 1993년 화재로 다리의 절반가량이 불타면서 대부분의 판화도 불타서 30여 점만 남았다. 카펠 교는 이듬해 전면 복원되었다.

길이 133km, 최대 수심 213m, 총면적 114㎢의 루체른 호수 때문에 루체른을 호반의 도시라고도 하는데, 호수에는 알프스의 리기 산(Rigi: 1797m)과 필라투스 산까지 크루즈가 운항될 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도시와 연결되는 여객선의 선착장이 있다. 또, 호수를 무대로 매년 카지노, 노 젓기 및 배타기 경기대회, 경마 및 장애물경기, 국제음악제, 사순절 전의 전통적 축제 등의 행사를 벌이고 있다.
 

루체른 호수
전문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알프스 최고봉인 융프라우(Jungfrau: 4158m)를 등정한 뒤 인터라켄에서 버스로 루체른에 도착했지만, 루체른은 스위스의 관문이라고 할 국제공항이 있는 취리히나 제네바, 인터라켄 등 주요도시와 비교적 가까울 뿐만 아니라 열차 연결이 잘 되어 있어서 많은 여행객들은 물가가 비싼 취리히는 스위스에 입국하는 도시로 여기고 루체른에서 관광과 숙박을 하는 경우가 많다. 루체른에서 크루즈를 타고 리키 산에 가서 스키나 패러글라이딩, 등산을 하거나 고풍이 가득한 시내를 돌아보기도 하는데, 알프스의 융프라우(4158m)를 등정했다가 내려온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터라서 리기 산 등산은 포기하고 시내관광만 했다.

카펠교
해발 434m 지점인 루체른호수 오른쪽 언덕에는 14세기 쌓은 자유도시 루체른의 성벽 안에는 9개의 저수탑을 비롯하여 중세~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고풍스런 집들과 골목, 광장 등이 보존되어 있는데, 호수 왼쪽에는 주정부 건물, 중앙박물관으로 이용되는 옛 시청과 의사당․ 암린하우스․ 장크트페터 교회․ 8세기 대성당이자 장크트레오데거 대교회, 호프트키르헤․ 마리아힐프 교회 등이 있다. 그러나 루체른에서는 중앙역에서 가펠교 건넌 작은 호수공원 왼편 바위벽에 새긴 ‘빈사(瀕死)의 사자상(Löwendenkmal)’이 가장 유명한데, 사자상은 조각 그 자체도 훌륭하지만 가난하고 불쌍했던 스위스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민낯과 같은 상징이다.

카펠교
1792년 프랑스혁명 당시 파리의 튀를리 궁전에서 루이 16세 일가를 지키다가 전멸한 스위스 용병 786명의 충성을 기리기 위하여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인 1821년 용병대장인 칼 폴(Karl Pole)장군의 출생지인 루체른에 덴마크의 조각가 베르텔 토르발드젠(Torwaldsen)의 작품으로서 부러진 창에 어깨가 찔린 커다란 수사자가 머리를 수그린 채 앞발로는 백합 문양의 방패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다. 백합은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문양이다.

가펠교의 천장 판화
지금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나라 중 하나이지만, 18세기까지 스위스는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부존자원이 없는 가난한 소국으로서 젊은이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해외에 나가 일하거나 용병 생활이 주요한 생계수단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1960년대 파독 광부나 베트남전 파병, 그리고 70년대 중동개발 붐을 탄 근로자들의 해외취업, 그리고 2000년대 이래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이른바 3D업종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취업하려고 하는 제3국인 근로자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는 신세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종교개혁의 열풍 속에서도 가톨릭을 옹호하여 로마교황청의 신뢰를 받았던 루체른 인들은 1506년부터 로마교황청의 경호를 맡은 이래 1527년 스페인 군사들이 교황청을 공격했을 때 용병 189명 중 147명이 전사하면서 교황 클레멘트 7세를 도피시켰으며, 나폴레옹이 로마를 침략하던 1798년에도 교황 피우스 6세를 위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대부분 전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혁명군에 포위되었을 때에도 마지막까지 이들을 지킨 것도 궁중수비대가 아니라 궁전과 경비계약을 맺은 스위스 용병들이었다.

빈사의 사자상
당시 시민혁명군은 프랑스군 수비대가 모두 도망하고 스위스 용병들만 남게 되자 이민족인 용병들에게 퇴각할 기회를 주었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아직 계약기간이 남았다고 혁명군의 제의를 거절하면서 ‘우리가 지금 도망가면 우리의 목숨은 건질 수 있겠지만, 앞으로 우리후손들은 신의 없는 사람들이라 하여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용병으로 고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왕과 왕비를 위하여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우다가 모두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빈사의 사자상은 용감했던 스위스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프랑스 부르봉 왕조를 지키려고 했던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스위스 용병의 전설 같은 신의와 용기가 오늘날까지 로마교황청을 지키는 계기가 되고, 세계 부호들의 비자금을 잘 관리해주어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신용 있는 스위스은행의 신화를 탄생하게 한 바탕이 된 것 같다.

빈사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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