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구 박사의 그림으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30>근대의 왕진

이승구 선병원재단 국제의료원장 겸 정형외과 과장.

18-19세기 영국 의사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거나 부유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환자를 잘 치료하지도 못하면서 과다한 진료비만 요구한다며 조롱거리나 웃음의 소재로 삼곤 했다.

그림1은 아픔을 호소하는 부유한 환자 곁에서 탐욕스러운 모습의 의사 다섯 명이 포위하듯 둘러선 모습이다. 의사들은 환자의 진료와 투여할 약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비싼 진찰료와 효과도 없는 약값을 청구하면서 환자의 상태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옆의 의자에는 또 다른 다섯 명의 의사가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의사들 모두 당대의 의사를 상징하는 지팡이를 쥐고 있다. 뒤쪽의 침대에는 간호사가 지겹다는 듯 잠들어 있다.

의학의 발전이 미미했던 시대다. 의사들의 처방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구토제, 가벼운 약초 진통제 정도였다. 거머리를 피부에 붙이거나 조금 절개하는 방혈로 나쁜 피를 뽑아내기도 했다. 의사들이 뚱뚱하고 탐욕스러우며 웃음을 유발하는 조롱과 풍자의 대상이었던 이유다.

그림1.

그림2는 루크 필데스(Luke Fildes)가 그린 의사의 왕진 장면을 담고 있다.

당대 최고의 의학 그림으로 선정돼 가장 많은 복사가 이뤄졌던 작품이다. 1947년 우표로 간행되기도 했다. 화가는 막내아들을 잃은 직후 이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인지 의사의 표정이 극히 경건하고 걱정이 가득하다.

어둑한 저녁에 부모가 촛불을 켜 들고 있고, 아이는 고열에 땀을 흘리며 잠들어 있다. 당시에는 디프테리아, 성홍열 및 뇌막염 등의 소아 열병을 잘 치료할 수 없었고, 탁자 위에는 반쯤 빈 약병이 놓여있다. 아이의 열이 떨어져 회복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려야만 하는 의사의 눈빛이 애절하기만 하다.

그림2. ‘의사(The Doctor)’ 루크 필데스(Luke Fildes), 캔버스에 유채, 166.4×241.9㎝, 1891년.ⓒThe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그림3은 1950년대 후반 안나 모세스(Anna Moses)가 그린 시골농가의 왕진 장면이다.

여성스러운 터치로 동화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을 담았다. 왕진을 위해 말을 타고 막 도착한 검은 정장의 의사 곁에 농민 부부가 마중을 나왔다. 마차를 끄는 아이와 또 다른 여섯 명의 아이들은 풀밭 정원에서 뛰놀고 있다.

이 아이들 중 한 명을 진찰할 것 같은데 건강한 아이들의 모습과 뛰어난 자연 경관이 의사의 왕진이라기보다는 마치 야외 소풍을 나온 듯하다.

그림3. ‘의사(The Doctor)’ 안나 모세스(Anna Moses), 1959년, 뉴욕,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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