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137>

100년 전통의 대전고등학교를 국제고로 전환하려다 지역사회의 반발에 부딪쳐 무산됐던 국제중고 문제가 이번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중에 뜨게 생겼다. 대전시교육청은 옛 유성중학교 부지에 국제중고를 통합 운영하는 형태로 변경해 지난해 말 교육부의 지정 동의를 받아 다음 달 중앙재정투자심사를 앞뒀지만 국제고 폐지라는 대선 공약에 발목이 잡히게 됐다.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후보들은 특목고와 자사고 폐지는 물론 교육부까지 없애자는 교육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EBS 여론조사 결과 특목고와 자사고 폐지에 찬성하는 의견이 46.1%였는데 중고생 자녀를 둔 40대 학부모들의 찬성(54.8%)이 유독 많았다. 중고생과 대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교육부 폐지에 대해서도 자녀가 없는 사람에 비해 많이 찬성해 국민들의 교육개혁 정서를 반영했다. 

바른정당 대선 후보인 유승민 의원은 "자사고와 특목고를 폐지해 공교육을 정상화 시키겠다"고 했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경선후보는 "입시명문고가 돼 버린 외국어고와 자사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국민의당 대선 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는 '5년(초등)-5년(중등)-2년(진로탐색학교 또는 직업학교)'으로 학제를 개편하고 교육부 폐지를 약속했다.

대전교육청 인재유출 막고 과학벨트 등 연구원 자녀 위해 국제중고 설립 필요

특목고 폐지 목소리가 커지자 대전국제중고 신설을 준비하는 대전교육청의 속내가 복잡해졌다.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와 대전시의회의 공유재산 관리계획 변경 동의안 통과에 속도를 내던 교육청으로서는 새 대통령이 누가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판이다. 각 당의 유력 주자뿐 아니라 대부분 후보들이 특목고 자체에 부정적이어서 국제중고 신설은 여의치 않다. 차기 정부의 눈치를 봐야할 처지인 교육부가 국제중고 설립에 속도를 낼 가능성도 없다.

대전교육청과 설동호 교육감은 지역의 인재유출을 막고 과학벨트와 대덕특구 등 연구원 자녀들의 안정적인 교육환경을 위해 국제중고 설립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올해 서울대 신입생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 영재학교, 과고, 외고, 국제고, 자사고인 것처럼 학부모들은 특목고를 명문대 진학의 발판으로 인식하고 있다. 계층 간 양극화가 교육 양극화로 이어져 학교마저 서열화하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속에서 국제고를 보는 시선이 좋을 리 없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서 근무할 해외 과학자 및 외국인 자녀들의 교육여건 마련을 위해 국제학교가 필요하다면 처음부터 과학벨트 내에 짓는 게 맞았다. 과학벨트 사업지연 등으로 국제중고가 난항을 겪자 유성중과 유성생명과학고 실습 부지, 대전고의 국제고 전환 등으로 오락가락하다 이제는 설립 취지 자체가 퇴색했다. 지역 인재의 타 시·도 유출을 막겠다지만 우리 아이들을 대전에서만 키워야 한다는 논리 자체가 우물 안 개구리식 발상이다.

전교조 등 교육의 공공성을 주장하는 단체들의 반대는 더욱 거세다. 수업료와 기숙사비 등 연간 800만원이 예상되는 국제고 학비는 서민 가정에는 '그림의 떡'이어서 결국 특권층을 위한 귀족학교가 될 것이라는 비판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수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일부 학생들을 위한 국제중고 신설은 교육 예산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측면에서도 타당성이 부족하다. 전국적으로 국제고와 외고의 경쟁률이 2대 1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도 고려할 대목이다.

그동안 눈치만 보며 국제중고 문제에 찬반 입장 표명을 미루던 대전시의회 의원들도 자당 대선 후보가 내놓은 공약에 따라 의견이 정해질 것 같다. 22명의 대전시의원 중 15명이 민주당이니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후보가 국제고 폐지를 공약한 만큼 시의원들이 앞장서 대전국제중고 신설을 추진하기는 어렵겠다. 당장 공유재산 관리계획 변경 동의안을 심의할 교육위원 5명 중 3명이 민주당 출신이어서 상임위 논의부터가 만만치 않다.

설 교육감의 ‘모두가 행복한 대전교육’에 국제중고 꼭 필요한가?

2019년 3월 개교를 목표로 국제중고 건립을 추진하는 대전교육청으로서는 답답하겠지만 국제중고가 대전 학생들을 위해 꼭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대전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국제중고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해 시작된 일은 아니다. 과학벨트의 외국 연구원 자녀를 위한 시설인지, 대전 학생들이 타 지역으로 공부하러 가는 게 안타까워서 만드는 것인지, 교육감의 치적용인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여러 상황적 요인들만 봐도 대전국제중고 신설에 속도를 내기는 어렵게 됐다. 아예 백지화 될 수도 있고 심의 자체가 대선 이후로 미뤄질 공산도 크다. 대전의 교육가족들이 국제중고 설립을 강력하게 요청해도 늦어질 형편인데 반대 목소리가 더 크니 교육청과 교육감으로서는 강하게 밀어붙이기 더 힘들다. 그렇다면 설 교육감이 주장하는 ‘모두가 행복한 대전교육’을 위해 국제중고가 꼭 필요한지 이번 기회에 더 검토하고 논의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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