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13>

정문
중세이래 오랫동안 유럽을 지배해오던 합스부르크가의 오스트리아 제국은 1차 세계대전이후 해체되어 국토는 83,000㎢(남한 98,000㎢)에 인구는 서울시민 숫자보다 적은 870만 명의 소국이 되고, 군대를 가질 수 없는 ‘중립국’이 되어서 수도 비엔나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유럽 안보협력기구(OOZE), 국제원자력기구(IAEA)등 중요한 국제기구본부가 많이 설치된 국가가 되었다.

수도 비엔나는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와 함께 유럽 최대의 왕실가문으로서 당대 정치와 문화를 주도했던 합스부르크가의 유적과 유산이 곳곳에 산재한 중세 도시로서 서유럽에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이 있다면, 동유럽에는 비엔나에 쉔부른 궁전(Schloss Schȍnbrunn)이 있다고 할 만큼 쉔브른 궁전은 유명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이었다(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에 대하여는 2017.03.10. 비엔나 성슈테판 대성당 참조).

정승열 한국공무원문학협회 회장
쉔브른이란 1569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시밀리안 2세(Maximilian II: 재위 1564~1576)가 비엔나 일대를 차지하면서 숲속에 사냥터로 삼은 동물원과 정원을 만들었는데, 1619년 마티아스 황제가 사냥을 하던 중에 아름다운 샘(Schoenner Brunnen)을 발견했다고 해서 궁전 이름으로 삼았다.
 그러나 쉔브른 궁전은 1696년 터키군의 침략으로 파괴되어 폐허가 되다시피 한 것을 레오폴드 1세(Leopold I :1640~1705, 재위 1658~1705)가 1696년부터 1702년까지 6년 동안 원래의 궁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대대적인 공사로 지금의 궁전을 만들었다.

50만평에 이르는 넓은 대지에 3층 대리석 건물인 쉔브른 궁전의 외관은 바로크 양식이고, 내부는 로코코 양식으로 모두 1441개의 방이 있는데, 건물 외관은 물론 궁전 뒤편의 넓은 정원까지 당시 유럽 여러 나라의 군주들이 가장 부러워하던 루이 14세가 지은 파리 베르사유 궁전을 많이 모방했다(파리 베르사유 궁(1) 2017. 2. 10. 참고).

합스부르그가의 문양
베르사유 궁처럼 개축된 쉔브른 궁전은 이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Maria Thersia: 1717~ 1780)가 집권하면서 여름철에만 사용하는 별궁이 되었다. 신성 로마제국은 영국과 달리 여성은 왕위에 오를 수 없는데, 막강한 합스부르크가의 카를 6세((Karl VI: 1685~1740, 재위 1711~1740)는 자신의 뒤를 이을 자식이 없자 합스부르크가와 친인척관계를 맺어온 유럽 왕실들은 그 상속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카를 6세는 자신의 사후 거대한 영토가 분할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모든 외교적 수단을 다해서 유일한 상속녀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영토를 상속하는 것을 다른 국가들로부터 인정받으려고 노력했다. 마침내 1745년 외사촌인 로트링겐 공 프란츠 슈테판(Franz Stephana: 재위 1745~1765)이 마리아 테레지아와 혼인하여 황제가 되었지만, 실질적인 제국의 황제는 마리아 테레지아였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명실 공히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영광을 지속했으며, 16명의 자녀들은 유럽 여러 나라 왕들과 혼인관계를 맺었다. 특히 프랑스 루이 16세와 혼인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숱한 화제를 뿌린 끝에 마침내 프랑스대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된 비운의 왕비가 되기도 했다(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하여는 2017. 2.17. 파리 베르사유 궁(2). 참조).

막시밀리안 2세
쉔부른 궁전에 들어서면 정문 양쪽에 마치 오벨리스크처럼 높이 솟은 석주 위에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독수리 상은 합스부르크가의 문양이다. 그리고 궁전의 외벽이 크림색인 것이 가장 눈에 띄는데, 이것은 마리아 테레지아가 가장 좋아하던 황금색으로서 ‘마리아 테레사 엘로우(Yellow)’라고도 한다.

1805년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를 정복한 후에도 궁전으로 사용했던 쉔브른 궁전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박물관이 되어서 수많은 방 중 45개만을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쉔브른 궁전의 입장료는 11.5유로인데,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면 한글 안내서도 나눠준다. 그리고 최근 삼성그룹의 협찬으로 한국어 안내방송을 하는 헤드셋도 나눠주고 있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는 반증일 것이다.

박물관에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수집한 동양 자기와 칠기, 페르시아의 세밀화 등이 우아하고 호화롭게 로코코 양식의 ‘중국식 작은 방(Chinesisches Rundkabinett)’에 전시되어 있고, 프란시스 요셉이 사용하던 침실과 모차르트가 6살 때 연주하면서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구혼했다고 하는 거울의 방(Spiegelsaal)이 특히 유명하다. 그밖에 극장과 예배당 등이 있으나, 궁전 내부는 일체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서 아름다운 벽화는 물론 천장의 프레스코 화와 진귀한 수많은 장식물들을 눈으로만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쉽다.

마리아테레지아
쉔브른 궁전의 뒤편에는 1569년 막시밀리안 2세가 만든 약1.7㎢의 정원은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하여 넓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이다. 정원의 아름다운 분수대에는 로마 바티칸 성당의 광장이 그러했듯이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44개의 대리석 상들이 배치되어 있고, 잘 다듬어진 울창한 나무숲과 숲길이 방사선 모양으로 나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의 정원을 모방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가장 멀리 높은 언덕 위에는 대리석으로 골조공사만 하고 중단된 3층짜리 건물을 글로리에떼(Gloriete; 개선문)라고 한다. 글로리에떼는 1775년 오스트리아가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그리스신전의 양식을 본뜬 개선문으로서 파르테레(Great Parterre)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조각상들이 기하학적이고 일정한 간격으로 열을 지어 배치했다는 의미라고 한다. 높은 언덕위에 짓다만 글로리에테에서 바라보는 쉔부르 궁전의 모습과 비엔나 시내 전경이 매우 아름답다.

쉔브른 궁 전경.

바다의 신 냅툰 분수
궁전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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