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 통(痛)] (사)대전교육연구소장

교직생활 중 처음으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가르치게 되자, 당황했던 것은 교과서를 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대신 EBS(한국교육방송)에서 간행한 문제집이 주어졌다.
“선생님 지금 교과서로 수업하는 학교는 없어요. 다들 EBS 문제집을 하고 있지요. 3학년은 특별하잖아요. 만약 얘들한테 교과서 진도를 나가겠다고 해보세요. 다들 미쳤냐고 할 거예요.”

“그래도 수업시간에 문제풀이만 하는 것을 아무래도 저는 할 수 없어요. 그 교재는 방과후수업 때나 사용하고 정규수업은 그냥 교과서로 수업할게요.”
“그렇게 되면 곤란해요. 작년부터 3학년을 맡아 수업을 해왔는데, 아이들은 지금 교과서보다 문제집을 풀어주길 바라고 있어요. 다른 학교 모두가 그렇게 하는데 우리 학교 애들만 그럴 수는 없어요.”

성광진 (사)대전교육연구소장
현실을 도외시하는 한심한 교사로 여기는 동료와 이런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대세(?)를 따르기로 하였다. 그 뒤로 3학년 수업을 다시는 맡지 않았다. 대학입시를 눈앞에 둔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은 한해 내내 뭔가 붕 떠 있는 느낌이다. 마치 전선에 배치되어 전투를 눈앞에 둔 어린 병사들처럼 학생들도 늘 긴장되어 있고, 마음처럼 오르지 않는 성적으로 속이 타들어가는 안타까운 현장이다. 학교는 이렇게 긴장된 아이들을 더욱 조이며 입시 경쟁에 온통 몰입하도록 한다. 모의고사와 중간, 기말 고사를 합해 10여 번이 넘는 일제고사를 치르며 학생들은 문제 풀이 기계가 되어 간다.

이런 상황에서 국어・영어・수학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과목에서 교과서를 제대로 읽어보거나 교육과정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는 없다. 주요 과목 대부분이 EBS에서 만들어 파는 연계교재를 수업교재로 사용한다. 따라서 교과서는 그저 사물함에서 잠자고 있으니 구입에 들어간 돈만 날리는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거기에 더해 방과후수업도 역시 EBS 교재 문제풀이로 이루어진다.

‘수능-EBS 교재 연계출제율 70%’ 정책으로 EBS 문제풀이 수업

이렇게 된 것은 2011학년도 수능부터 적용된 '수능-EBS 교재 연계출제율 70%' 정책 때문이다. 작년 치러진 수능까지 7년째 이 정책은 유지되어 왔다. 정부는 이 정책을 시행한 이유로 사교육비 절감과 공교육 정상화에 있다고 주장해 왔다. 물론 이 정책 이전에도 3학년의 수업은 각종 사설 참고서로 이루어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 정책이 시행되고 나서는 EBS 교재를 통한 문제풀이가 방과후수업은 물론이고 정규수업까지 정착되었던 것이다.

이 연계출제 정책은 참고서 시장에서 EBS의 독과점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 EBS는 고교 참고서 시장에서 50%에 가까운 점유율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2013년과 2014년도 EBS 교재 매출현황’에 따르면 고등학교용 교재의 매출액만 총 8백억 원에 가깝다. 공영방송이 참고서 시장에서 수백억 원대의 매출액으로 이득을 챙기고 있다면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입시경쟁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고 있다는 비난을 들어도 싸다는 생각이다. 과연 이것을 공영방송이 해야 할 짓인지도 의심이다.

그렇다면 원래의 목표인 사교육비 절감과 공교육 정상화라는 목표는 과연 실현되었을까? 비싼 사설 참고서를 쓰기 보다는 공신력 있고 저가로 공급되는 EBS 교재가 약간의 교육비 절감을 가져왔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과연 피부로 느낄 만큼 절감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사설 참고서와의 가격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로 교육부가 말하는 사교육비 절감의 목표에 조금이라도 도달하려면 무상으로 배포했어야 했다.

비정상적 교육 판 쳐도 수능 앞에서 입 닫는 현실

그런데 정규 학습에서도 EBS 교재를 사용하면서부터 나타난 현상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은 EBS 교재의 문제를 푸는 것이 수능을 대비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도라고 생각하고 유형별로 달달 외는 실정이다. 그리고 학교의 각종 시험에도 이 문제 유형으로 출제할 것을 요구한다.

수능을 대비하는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가 이 모양이다. 이것을 바람직한 수업으로 교육부와 교육청 그리고 학교장까지 나서서 교사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더욱이 교사들도 EBS 교재 문제풀이 수업에 대해 잘못된 교육이라고 말하기를 꺼린다. 입시경쟁의 현실 앞에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전국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모두 똑같은 교재로 문제풀이만 해대는 것이 과연 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수능으로 인한 우리 교육의 타락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교육이 판을 쳐도 수능 점수 앞에서는 그저 입을 닫고 모른 척하는 것이 슬프기조차 하다. 교육의 본질에 대해 우리 모두가 성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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