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11>
파리는 2,000여 년 전 원주민 갈리아인들이 센 강(La Seine)의 작은 섬 시테(Citê)에서 처음 정착했다가 지금과 같은 대도시가 되었는데, 494년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Clovis)가 파리를 탈취한 뒤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파리 시내를 약12.8km가량 곡선으로 흐르는 센 강은 시테 섬과 생루이 섬을 에워싸는데, 센 강의 옹벽에는 배들을 정박시할 떼 묶었던 커다란 철제 고리들이 지금도 남아있다.
퐁네프다리를 건너자마자 프랑스 대혁명 때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로 처형할 대까지 가뒀던 형무소를 비롯하여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아름다운 생트 사펠 성당(Eglise Sainte Chapelleie) 그리고 고딕 양식의 걸작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고, 노트르담 성당 뒤편으로는 넓은 요한 23세 광장(Square Jean ⅩⅩⅢ)이 있다.
노트르담 성당의 입장은 무료이지만, 영화 ‘노트르담에서 꼽추’에서 종지기 콰지모도가 시간마다 종을 울리던 종탑까지 올라가서 성당과 파리 시내를 조망하려면 10유로를 내야 한다. 만일 뮤지엄 패스가 있다면, 종탑 입장은 무료다. 중세 유럽에서 성당은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지배해온 중심지여서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주요한 관광코스인 것은 우리나라의 수많은 전통사찰들이 오랫동안 사찰이라는 건축물을 비롯하여 불화라는 미술, 불상과 석탑 등으로 대표되는 각종 조각물과 공예품을 보여주는 문화재의 보고인 점과 일맥상통한다.
프랑스에 기독교가 정착되면서 6세기에 시테 섬에 갈리아-로마 시대에 세웠던 주피터 신전을 세웠던 헐어내고 그곳에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었는데, 1163년 모리스 드 쉴리 주교는 노트르담 성당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운 고딕 양식의 대성당을 짓기로 결정했다. 폭 50m, 길이 130m, 높이 35m의 노트르담 성당은 착공후 182년이 지난 1345년에야 준공되었는데,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에 큰 피해를 입고 포도주 창고로 사용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나폴레옹 1세(Napoléon I)가 성전으로 회복하면서 자신의 대관식도 이곳에서 거행했다.
직경 5m나 되는 둥근기둥이 성당 안을 5개의 복도로 나눈 노트르담 성당에는 동시에 9,000명이 입장할 수 있다고 하며, 특히 남쪽과 북쪽의 유리창에 그려진 형형 색상의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은 유명하다. 노트르담 성당은 오랫동안 파리 왕조들이 사랑하는 성당으로서 수많은 임금과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된 장소였으며, 수많은 왕족들이 세례를 받았다. 또, 근래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에 망명정부를 세웠던 제5공화국의 드골 대통령, 그리고 1996년 미테랑 대통령의 장례식도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성당 지하에는 유명한 주교와 명사들의 무덤이 있다.
그리고 소설과 영화로 잘 알려진 종지기 콰지모도가 머물렀던 노트르담의 종은 사실 모두 5개가 있는데, 가장 큰 종은 남쪽 탑에 있는 엠마뉘엘 종(Emmanuel)으로서 무게가 13톤이 넘는다. 엠마뉘엘 종은 매일 시각을 알리고 또 여러 행사나 전례를 알리며, 북쪽 탑에는 바퀴 위에 붙어있는 4개의 종은 흔들리면서 울린다. 이 종들은 예전에는 수동으로 작동했지만, 지금은 모두 전기모터로 작동한다. 이 종들에는 작은 건반악기의 연주와 조음하기 위한 외부 해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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