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도리가 없는 일.”

진왕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혼잣말을 했다.

온몸이 땀으로 얼룩졌다. 이마에서 구슬땀이 뚝뚝 떨어져 그녀의 수줍은 가슴살 위를 굴렀다. 그녀도 매한가지였다. 막 목욕을 끝낸 아낙처럼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침상이 눅눅했다. 침전에 군불을 지핀 듯 훅훅 거렸다.

진왕은 비지땀으로 얼룩진 초란을 가로타고 앉아 포효를 질렀다.

“대제국을 이룩할 것이로다.”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검을 높이 쳐들어 초란의 몸속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것은 소용돌이였고 휘몰이였으며 바람이었다.

거친 바람. 굴욕으로 얼룩졌던 지난날에 대한 아낌없는 버림이었다. 모든 것을 초란의 몸을 빌려 버리고 싶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위해서는 묵은 술을 버려야 하는 법. 진왕은 자신의 몸에 녹아있던 모든 번뇌를 초란의 뜨거운 몸에 구겨 넣었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도, 여불위에 대한 분노도 다 구겨 넣었다. 또 다른 신하들에 대한 배신감도 이제는 버려야했다.

썰물처럼 자신의 몸을 빠져나가는 많은 것들에 대해 도리어 시원함을 느꼈다.

침전에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두 남녀는 죽은 소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다. 초란은 알몸으로 진왕의 품에 안겨 새근거리며 자고 있었다.

진왕은 이제 초란도 물려야 할 때가 되었으며 그동안의 지정과 사랑도 대제국을 이룩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야할 길이 너무나 멀었다.

삶과 죽음이 운명으로 다가오듯 대제국을 이룩해야만 하는 숙명이 그를 향해 몸부림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가야한다. 5백년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전장에서 죽어갔는가. 이제 과인이 그 모든 업보를 마감 지으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쉼 없이 가야한다.’

진왕은 이렇게 마음을 바로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추수렷다.

그제야 초란이 화들짝 놀라며 부스스한 눈으로 자신의 알몸을 가렸다.

“초란아. 과인이 너를 가까이 한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대왕마마. 그 무슨 말씀 이시옵나이까?”

영문을 모른 채 고개를 조아리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과인이 가야할 길이 너무나도 멀도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모든 것을 물려야 하느니라. 서러워하지 마라.”

“대왕마마. 미천한 계집이 어찌 서러워하겠나이까. 하지만 대왕마마의 사랑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은 죽음보다 더 싫사옵나이다.”

진왕은 옷깃을 여미며 침전 창문을 열고 한동안 멀리 정원을 넘어다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과인이 너를 싫어함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그 누구도 만나지 않을 것이니라. 정사를 돌봐야 함이 너무나 막중하기에 한눈팔 겨를이 없을 것이라 하는 말이로다.”

그 말에 초란이 고개를 숙이고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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