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131>

만학도들의 배움터 예지중고 학생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 같다. 못 배운 한을 풀어줄 졸업식이 지난 주말이었는데 졸업사정회를 열지 못해 15일로 연기됐다. 유 모 교장은 자신을 고소해 벌금형을 받은 학생들에게 졸업자격을 부여하지 않으려 하고 학생들도 교장 자격이 없는 사람이 주관한 졸업사정회는 물론 졸업장도 무효라며 반발하고 있다.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대전시교육청은 유 씨가 교장 자격증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예지재단에 시정을 요구했지만 그는 아직도 직위를 유지하고 있다. 졸업이 다시 연기될 경우 고교 졸업예정자들의 대학입학 취소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어 학교는 15일 졸업식을 강행할 예정이지만 교장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과의 마찰로 정상적인 진행은 어려워 보인다.

정상화 요구하는 교사·학생들 전주까지 이사들 찾아나서

학교정상화를 요구하는 교사와 학생 150여명은 졸업식 날 대전에 사는 예지재단 이사들의 집에 찾아가 집회를 벌이고 다음 날에는 전북 전주까지 가 이사들에게 물러나라고 압박할 계획이다. 재판부에 미룬 채 재단이나 교육청은 학교 정상화에 강 건너 불구경이니 견디다 못한 학생들이 이사들을 찾아다니며 입장을 듣겠다는 것이다.

1년 가까이 파행을 거듭한 예지중고는 학생과 지역사회로부터 이미 학교로서의 신뢰를 잃었다. 교장실 문은 굳게 잠겨 있고 재단이 파면한 교감은 중앙노동위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지만 복직하지 못한 채 학생들과 천막에서 농성 중이다. 정상수업이 불가능하며 교사들도 재단과 정상화추진위로 입장이 갈려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주·야간 중고교 과정으로 운영되는 이 학교 학생 535명 중 80% 가까이가 50~70대 이상이다. 늘그막에 공부하던 중 암이 발견돼 수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족의 병 수발과 생업을 꾸리면서도 학업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학생도 적지 않다. 학력을 숨기고 결혼해 가족들 몰래 공부하는 사람까지 학생들 저마다 눈물겨운 사연을 품고 있다.

학교가 정상적으로 돌아갔다면 지난 주 중학교 143명, 고등학교 130명이 졸업장을 받았을 것이다. 일흔을 바라보는 딸의 졸업식을 고대하던 90대 노모는 졸업이 안 될 수 있다는 말에 눈물을 쏟았고 남편 몰래 다니던 학교로부터 '수업료를 안내면 퇴학 시키겠다'는 내용증명을 받은 주부는 이 학교에 온 것을 후회했다. 반 년째 월급을 못 받은 교사들도 지쳤다.

꿈 향해 피나는 노력 해온 설 교육감이 만학도 한 풀어줘야

이대로라면 예지중고는 정상화가 힘들 것 같다. 교사와 학생 200여명은 카카오톡에 대화방을 만들어 놓고 학교를 살려달라고 호소하지만 아무도 속 시원한 답을 하지 않는다. 대화방에는 재단 관계자와 설동호 대전시교육감, 시의원들도 포함돼 있지만 나서는 사람 없이 학생과 교사들만 하루에도 수백 건의 글을 올리며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언제 결론이 날지 알 수 없는 재판 결과만 기다리다 학교는 고사하고 학생들도 떠나고 말 것이다. 어떻게든 중졸, 고졸 학력을 인정받겠다며 고령과 질병에도 꿋꿋하게 학교에 나오던 만학도들은 하나둘 검정고시 학원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한 어르신은 "두발로 가방 메고 학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죽기 전 못 배운 한을 풀 수 있게 제발 학교를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예지재단과 학교 측이 지난해 7월 조기방학에 들어가자 일부 교사와 학생들이 천막수업을 진행한 가운데 한 학생이 벽돌 위에 책을 올려 놓고 공부하고 있다.
교육청과 교육감은 예지중고를 더 이상 두고 봐선 안 된다. 사태가 최악까지 치달은 데는 교육청의 책임이 크다. 전횡을 일삼은 이사장이 교장까지 겸직하도록 정관변경을 승인해 주고 특별감사를 하고도 흐지부지했다. 교육청은 예지중고가 사립학교법의 적용을 받는 학교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지만 시민 세금이 연간 5억~7억 원씩 들어갔으니 철저히 감독했어야 옳았다.

지난여름 대학입시를 앞둔 고 3 어르신들이 학교 주차장에서 벽돌 위에 책을 놓고 공부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설 교육감은 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중·고교를 거쳐 대학교수와 총장까지 지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온 그가 만학도들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 이대로 폐교할 게 아니라면 교육감이 나서 예지중고 파행을 끝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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