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6>

콜로세움 경기장 조감도
로마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영화 벤허, 로마제국의 멸망, 그리고 글라디에이터 등에서 자주 보았던 콜로세움 경기장(Colosseum; Colosso)이다. 이것은 경기장의  건축 동기나 기능보다는 역대 로마 황제들의 황제 숭배정책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체포하여 처형하거나 맹수들의 먹잇감으로 제공하고, 또 검투사들의 목숨 건 싸움을 즐기던 경기장으로서 영화 글라디에에터(Gladiator)에서 제위를 물려받기를 거절했던 정의로운 로마의 장군에서 검투사로 추락한 막시무스를 많이 떠올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콜로세움 경기장은 72년 로마제국에서 군인황제시대를 열었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Vespa- sianus: 69~79)가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을 위하여 시작했는데, 착공한지 8년 만인 80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 티투스 황제(Titus 79~81)때 완공되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이 여성적이고 섬세해서 ‘반원형 극장’에서의 연극 공연을 즐겨하는 것과 달리 빈번히 침략해오는 침략자들과 싸우면서 용맹과 무(武)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겨서 평소에도 ‘원형경기장’에서 목숨을 건 잔인한 살인게임을 즐겼다. 화산재에 묻혔던 폼베이에도 원형 경기장이 있다.

정승열 한국공무원문학협회 회장
초기에는 ‘플라비오 원형 야외극장(Anfiteatro Flavio)’이라고 불렀던 콜로세움 경기장은 둘레 527m, 높이 48m나 되는 거대한 원형경기장으로서 외벽에는 80개의 아치형 울타리가 있는데, 원형 야외극장이 콜로세움으로 바뀌게 된 것은 ‘거대한 경기장’이라는 라틴어 콜로수스(Colossus)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경기장 옆의 ‘거대한’ 네로 황제의 동상에서 유래했다고도 말하기도 한다. 흔히 콜로세움 경기장은 네로 황제(Nero: 54~68)가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장소로 알고 있지만, 사실 네로 황제의 생존 시에는 콜로세움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콜로세움은 로마시내의 지하철 콜로세오역(콜로세움) 앞에 있다. 콜로세움의 오른편은 고대 로마의 발상지인 포로 로마노로 가는 길이고, 포로 로마노와 콜로세움 경기장과의 중간에는 로마시대 인기 있던 마차 경기장이 한눈에 보이는 등 이 일대가 고대 로마의 중심지에 몰려 있다. 경기장 입장료는 12유로이지만, 통합입장권 한 장을 사면 바로 옆에 있는 포로 로마노와 파라치노 언덕까지 관람할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유럽 어느 도시 어떤 관광지를 가더라도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매표창구는 언제나 길게 줄을 서게 되는데, 짧은 여행기간에 소중한 시간을 매표하는데 허비하지 않고 비용절감은 물론 지체하지 않고 바로 입장하려면 출국 전에 인터넷으로 미리 뮤지엄 패스(Museum pass)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도 늦게나마 지난해 8월부터 1일 관광시설이용권 ‘디스커버 서울 패스(Discover Seoul Pass)’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경복궁 등 4대 고궁은 물론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삼성미술관 ‘리움(Leeum)’,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N서울타워 전망대 등 16개소를 입장할 수 있다.

패스 가격은 3만9900원으로서 16개 관광시설 전부를 개별 방문할 경우에 부담하게 되는 입장료 15만2000원보다 무려 70% 이상 할인된 금액이다. 또 여행기간 동안 시티투어버스도 10~20% 할인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제 아무리 홍길동이라 해도 하룻 사이에 16개소를 어떻게 모두 돌아볼 수 있을까? 조금은 허울 같다는 생각이다.

콜로세움 출입문
전국 주요도시마다 건설된 월드컵 경기장처럼 입장할 때에는 지정된 출입문으로 그리고 경기가 끝났을 때에는 관객들이 여러 문으로 신속하게 나갈 수 있도록 설계된 콜로세움경기장은 넓은 지름 188m, 좁은 지름 156m로서 타원형 경기장으로서 관중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 그런데, 1층은 토스카나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 등으로 각층마다 스타일을 달리해서 시대에 따른 로마의 건축양식을 한곳에서 엿볼 수 있는데, 관람석 1층에는 황제를 비롯하여 원로원 의원, 사제들이, 2층에는 로마제국의 군인들, 3층은 로마 시민들, 4층에는 일반인과 여자들의 관람석이었다고 한다.

특히 넓은 경기장에 강렬한 햇살과 비를 막기 위하여 특별한 천막지붕 베라리움(Velarium)으로 가리고 천장 한가운데에는 둥근 구멍을 뚫었다고 하는데, 물론 이런 시설은 지금은 볼 수 없지만 환기는 물론 전기와 같은 조명시설이 불가능했던 당시에 채광을 위한 조치였던 것 같다. 로마의 판테온 신전의 천장 한가운데의 커다란 구멍도 채광과 환기를 위한 조치였다. 

콜로세움 경기장 내부
한편, 경기장 바닥은 나무판자를 깔고 그 위에 모래로 덮었는데, 라틴어로 모래(Arena)는 이후 이탈리어로 ‘원형경기장’을 의미하는 아레나로 불리게 되었다. 경기장 바닥의 지하층에는 맹수 우리와 죄수들을 가둬두는 유치장이 있었는데, 경기에서 패한 사람들의 시체를 맹수의 우리로 던져서 먹이로 삼았다고 한다. 또, 하루에 수차례 경기를 치룰 때마다 사상자가 생기면 그 시체를 치우고 모래로 피 흘린 흔적을 덮은 뒤 다음 경기를 진행했는데, 로마인들의 즐거움을 위하여 셀 수 없이 죽어나갔을 이름 모를 영혼들의 한이 서린 경기장은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이후 검투사 경기를 폐지하고, 본래의 경기장으로 환원되었다.

로마제국의 영화(榮華)를 잘 보여주는 콜로세움경기장은 217년 대화재로, 그리고 442년 지진으로 크게 붕괴된 후 폐허가 되어서 이후에는 로마의 여러 성당을 짓는 건축자재와 귀족들의 대저택을 짓는 석재로 뜯겨나가 지금처럼 잔해만 남았다. 1744년 교황 베네딕트 14세는 콜로세움경기장을 초기 기독교도들이 수많은 피를 흘린 희생지라 하여 성지로 인정하고, 지금까지 매년 부활절 예배를 이곳에서 거행하는데, 경기장 앞에는 높이 21m, 너비 25.7m, 두께 7.4m인 거대한 개선문이 있다. 이 개선문은 312년 밀리비우스 전투에서 승리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으로서 로마에서 기독교를 처음 받아들인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밀리비우스 전쟁으로 서로마제국의 확실한 지배자가 되었다. 

콜로세움 전경.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