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여불위는 어느 왕보다도 더 넉넉한 모습으로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었다. 수시로 영을 내려 자신의 후덕함을 만천하에 알리게 했다.

“죄인을 사면하고 선왕시대에 공을 세운 공신들에게 상을 내려라. 또한 그 친족들에게 덕을 베풀고 백성들에게 널리 은혜를 베풀도록 하라.”

그의 영은 진나라 고을마다 나붙었고 그를 칭송하는 분위기가 날로 높아갔다. 진나라에서 여불위는 곧 왕이나 다름이 없었다. 모든 전권을 휘둘렀다.

하지만 진왕의 나이가 들면서 여불위의 이란 통치행위가 못마땅했다. 그가 내리는 영들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속으로 불쾌감을 삭혔다. 어찌 보면 그런 영이 왕명으로 하달되어야 함에도 상국의 명으로 나붙는다는 자체가 불충이었다. 하지만 진왕은 자신의 힘이 여불위의 그것에 아직은 미치지 못하기에 참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정의 중신들이 대부분 여불위가 심어놓은 심복들이었다.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인재들이었으므로 그들과 혼자 맞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숨을 죽이고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같이 국사를 논하다보면 서로 심대한 차이를 느꼈다. 가장 큰 차이는 통치이념이었다.  

진왕 영정은 근본적으로 법치를 주장했다. 법이 바로서지 않으면 통치에 어려움이 있다고 믿었다.

추상같은 법이야 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라고 믿었다.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나라에서 정한 법에 따라 준엄하게 심판하는 것이 통치의 기본이었다. 그곳에는 약간의 첨삭이 있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여불위의 근본이념도 법을 배제하자는 것은 아니었지만 덕치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는 상당한 견해차이가 있었다.

한번은 진왕과 여불위가 조정에 마주 앉았다. 진왕은 왕좌에 여불위는 아랫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찻잔을 기울였다. 다소 냉랭한 한기가 흐르는 가운데 둘은 차를 마셨다. 저간의 사정이 이러했으므로 둘의 관계가 고울 리 없었다.

분위기가 다소 서먹했다. 하지만 한사람은 왕이고 다른 한사람은 만 백관의 윗자리에 있으며 선왕과 형제를 나눈 중부인지라 자신들의 권위를 굽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차를 마시는 시간이 길었다. 따뜻하게 덮인 물을 따르는 소리와 찻잔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작은 숨소리만 정적을 깨고 간간이 들렸다. 섬뜩한 고요만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누구라도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이 한발 물러서는 형국을 자아낼 만큼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진왕이었다.

“과인이 생각키에 법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무엇보다 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불위가 맞받았다.

“맞사옵니다. 법이 바로 서야 천하가 복종합니다. 나라에 형벌이 없으면 백성들은 서로 뺏기고 빼앗으며 자기주장만 내세울 것입니다. 하지만 법에 앞서 덕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 되옵니다. 무릇 백성들을 다스리는 최상의 방법은 덕이며 그 다음이 상과 벌로써 다스리는 것이옵니다.”

진왕은 자신의 속내를 따르지 않는 여불위가 마음 한편으로 무례하기도 했지만 그가 전권을 쥐고 있어 더 이상 불쾌감을 표시하지는 않았다. 찻잔을 기울이는 속도만 빨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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