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 통(痛)] (사)대전교육연구소장

학교운영위 회의가 끝나고 학교장이 입시 현황에 대해 설명하자, 학부모 위원들의 표정이 달라진다.
“작년에는 00대학에 몇 명이 갔나요?”
“우리 학교에서는 몇 등급까지 00대학에 지원할 수 있나요?”
“이번 수시에 00대학에 들어간 그 학생은 어떻게 전형에 통과했나요?”
이런 질문이 계속되자, 자리에 있던 교사위원들은 갑자기 입시상담가가 된다.

성광진 (사)대전교육연구소장
그리고 학부모들의 요구가 이어진다.
“학력 증진을 위해 더 많이 노력해줬으면 좋겠어요. 근처의 00학교에서는 특별반을 토요일까지 불러서.....”
“자율학습도 우리 학교는 너무 느슨한 것 아니에요. 자는 애도 많다고 우리 애가 그러던데. 그리고 다른 학교는 자율 학습시간에 따로 특별 수업도 한다고 하고.....”
“1, 2학년도 토요일에 특별반 수업을 해야 해요. 그리고 자율학습도 했으면 좋겠어요.”

학력 증진에 대해 학부모들의 노골적인 충고가 쏟아진다. 이렇게 학부모 임원들과 학교에서 모임을 하다보면 학력을 높이기 위한 각종 요구가 이어지는 것은 여느 고등학교나 마찬가지다. 학력 증진에 대한 학부모들의 뜨거운 관심은 그만큼 입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정규 및 보충수업, 야간자습 등 하루 14시간 이상 학교서 보내는 아이들

학부모만이 아니라 교육부도, 교육청도, 학교도 학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대부분의 고등학교를 보자. 밤 10시까지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한밤중까지 공부한다. 이들은 아침 8시까지 학교에 오후 4시까지 일곱 시간의 정규수업과 오후 6시까지 다시 두 시간의 보충수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는 저녁식사를 하고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한다. 3학년 학생들과 일부 1,2학년 학생들은 다시 밤 11시까지 이어진다. 하루 가운데 최소 14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셈이다.

전국의 2300여 고등학교가 연합평가와 모의평가라고 하는 시험을 한 해 동안 여섯 번에서 많게는 열 번까지 치른다. 거기에 학교의 정기고사가 네 번이다. 이 시험 성적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은 머리를 쥐어짜며 쳇바퀴 돌 듯 공부해야 한다. 시험 성적이 곧 학력이라 믿는 이 나라의 교육계는 줄기차게 성적을 높이기 위한 끝없는 경쟁으로 학생들을 몰아넣는다. 

아직도 많은 교사와 학부모와 교육 관료들은 학력 증진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학생들이 학교 또는 학원에서 더 많은 수업을 받아야 하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예습, 복습하기 위한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다른 학교보다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더 많이 하려고 온갖 편법과 경쟁이 나타난다. 그런데도 학교에서 채워지지 않는 입시 갈증은 심야나 휴일에 학원으로 이어진다. 잠마저 빼앗기고 휴일마저도 그냥 놔두지 않는 이 경쟁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그러나 진정한 학력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느냐’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는 이 나라의 학생들이 다른 나라의 학생들보다 우수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과학고까지 만들어 국가 차원에서 과학 영재에 투자한 지가 벌써 서른 해가 넘었는데도 과학 부문에서의 노벨상 수상자 하나 없다. 과학고까지도 입시경쟁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어림한다.

이렇게 고통을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아내며 시험 성적을 위한 학력 증진에 매달리는 우리 청소년들의 시간은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일까? 과연 국가와 학교와 부모가 요구하는 학력 증진에 순응했던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나? 그들 가운데 일부가 소위 입시명문대에 들어가서 출세의 길을 걸어갔지만 공부만 잘한 우등생들의 일그러진 모습은 작금의 국정파탄에서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입시명문대의 졸업장조차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하지 않게 되자, 처절한 입시 공부의 끝이 어디인지를 묻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학력은 스스로 공부하고 싶어서 할 때 만들어져

학력은 스스로 공부하고 싶어서 할 때 만들어진다. 억지로 하는 공부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오로지 시험 성적을 위해 공부한다고 하면 그것처럼 무의미한 것이 없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싶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교사들에게는 가르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더불어 하나가 되어 학문을 탐구할 수 있을 때에야 진정한 학력이 만들어진다.

학생들 자신이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알아야 자신의 길을 찾고 공부를 하고 싶은 의지를 갖게 된다. 그래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도 고민하고 인간적으로 성숙해가기 마련이다. 학교는 그들이 잘하는 것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진정한 학력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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