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찬의 꿈과 희망이야기] 한밭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객원 논설위원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늦가을 하늘은 티 없이 순수하고 참으로 푸르다. 발갛게 매달린 아침 해가 쾌청한 푸르름 속에 산뜻한 대비를 이루며 늦가을을 재촉한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에 쫓긴 나뭇잎들은 어느새 낙엽이 되어 제 길을 찾으려 방황하고 있다. 녹음의 왕성한 혈기를 자랑하던 산들은 중년을 지나 이제는 황혼의 아름다움을 불태우고 있다. 

가을 산 발등을 디디고 서 있는 감나무에는 빨간 홍시 하나가 가지 꼭대기에 힘겹게 매달려 있다. 마지막 남은 까치밥이다. 노란 감꽃으로 시작해서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렸던 탐스러운 홍시로 변한다. 감꽃이 변화해야 탐스런 홍시가 된다. 푸르던 감나무가 계절에 따라 변화해야 풍성한 결실을 맺는 가을 감나무가 된다.

민병찬 한밭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객원 논설위원
봄에는 노오란 감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탐스런 홍시를 맺어야 감나무다운 감나무인 것이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여, 파란 하늘과 풍성한 결실과 넉넉한 인심이 있어야 가을다운 가을이 되는 것이다. 홍시다운 홍시를 맺어야 감나무로서 자격이 있고, 풍성한 결실로 넉넉한 인심을 풍겨야 가을로서의 제격을 갖추는 것이다. 가을은 가을대로 제격을 갖추어야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제격을 이루어야 한 해 한 해, 또 우리의 모든 시간과 세월이 제대로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제격이란 ‘그 지닌 바의 정도나 신분에 알맞은 격식’을 말한다. ‘격(格)’:바로잡을 격)’이란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를 뜻하는 말로서, 사물이나 사람의 ‘자격’을 나타낸다. 그럴 때 우리는 ‘격에 맞다’, ‘제격이다’라고 한다. 한마디로 모든 면세서 ‘제대로 되었다’라는 뜻이다. 물건의 ‘격’을 나타내기 위하여 가격을 매긴다. 그 물건의 좋고 나쁨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사람들은 좋은 물건을 만들어 높은 가격을 받으려 애쓴다. 사람들은 좋은 것, 희귀한 것, 가격이 높은 것을 차지함으로써 자신의 ‘격’을 높이려 한다.

자격이란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거나 일정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을 말한다.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국민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국민으로서의 기본 자격을 얻은 사람은 각자의 위치와 신분에 맞는 격, 자격이 있어야 그 환경에 어울리는 행동을 할 수 있다. 농업, 어업, 축산업, 상업, 기업 등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지식과 경험을 통하여 각자의 격에 맞게 활동한다. 교육, 의료, 행정, 과학 등의 전문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전문작인 자격을 얻어야 그 격에 맞는 활동을 할 수 있다.

대학에서 전문적인 학문을 익히기 위한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박사가 되기 위해서, 의사가 되기 위해서,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 판사가 되기 위해서 등등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자격을 얻어야 한다. 일정한 자격을 얻은 사람이 그 자격에 어울리는, 그에 부합하는 행위를 했을 때 그 역할에 상응하는 ‘격’에 맞는 자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을 품격이라 한다. 특별한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품위를 말하기도 한다. 길가에 줄지어선 아무런 풀마다 품위가 있다고 하지 않는다. 오랜 풍상을 겪고 의연한 자태로 자연과 사람에게 무언가 이로움을 주는 낙락장송에서 그 품위를 느낄 수 있다. 사람으로서 그 품격을 갖춘 사람을 일컬어 인격 있는 사람이라 한다.

개인적으로 지식을 갖춘 사람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한다면, 우리사회에 유용한 자격을 갖춘 사람을 인격자라 한다. 인격자의 기본 요건으로서 삼강오륜이 있다. 최소한 삼강오륜은 알고 지켜야 사람다운 사람, 즉 인격자라 할 수 있다. 역할과 자격에 부합하는 기능을 다 했을 때, 비로소 그 자격이 있고 사람다운 사람으로서 인격이 있다 하겠다. 그 자격, 인격은 권한과 책임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로 더 많이, 더 정직하게 요구된다. 그 한 사람의 인격이 수많은 사람, 한 나라의 국민, 때로는 인류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큰 나무가 쓰러지면 주변의 작은 나무들도 꺾인다. 큰 강물이 범람하면 온 벌판이 물바다가 된다. 큰 별이 떨어지면 그 주위가 어두워진다. 큰 것일수록 힘이 있고 그 주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사물과 환경이 그럴진대,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서 힘이 있는 한 사람의 격에 맞는 행동은 주위에 얼마마한 영향이 끼칠 것인가?

교육자, 법률가, 행정가, 정치인 등은 전문가들로서 그들에게만 부여된 자격을 갖추고 있다. 그들에게 자격을 주고 그 자격 안에서 권한을 주는 것은 국민들에게 이롭게 활용하라는 사회적 약속이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전문가들은 그들의 자격을 백성 위에 군림하는 조선시대의 관리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국민의 세금을 받고 그 대가로 국민에게 서비스하는 직종인데 그 권한을 가지고 국민 위에서 상전 노릇하는 게 오늘날이다.

자격을 갖춘 자로서, 자격 안에서 더 많은 권한을 가진 자가 더 확실하게 갖추어야 할 자격요건은 선공후사(先公後私)이며 솔선수범(率先垂範)이다. 인격의 완성에 주안점을 두는 인격교육, 한국의 선비 교육이 전문 지식교육보다 더 더욱 강조되는 현대 사회다. 사람다운 사람, 최소한의 인격자로서 오늘날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天生我材必有用일진대 誤用이나 濫用이 되어서는 기필코 아니 될 것이다.

풍성한 수확으로 제 역할, 그 자격을 다한 가을 들판은 텅 비어 있다. 그 빈자리가 있어야 내년에 또 다른 작물이 들판의 역할을 기대하며 자랄 것이다. 나는 내 위치와 환경에 맞는, 그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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