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민호 전 국무총리비서실장

월 평균 1000만 원이 넘는 세비를 받으면서 각종 특권을 누리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올해 7월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가 결성된 뒤 이들이 마련한 개혁안이 지난 17일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제출돼 국회 입법 절차를 앞두고 있다.

최민호(59) 전 국무총리비서실장은 지난 7월 행정부 공직자 출신이자 지방인사로서는 유일하게 이 추진위에 위촉됐다. 충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안전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등을 역임한 그를 만나 90일간의 소회와 개혁안에 담긴 주요 내용에 대해 들어봤다.

‘세비’ 용어 분석부터 시작… “자부심·책임감 갖고 임해”

최민호 전 국무총리비서실장이 국회의장 직속
추진위원들은 정치권 인사를 제외한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법조계 등으로 구성됐다. 이 중 공직자 출신은 최 전 국무총리비서실장이 유일했다.

그는 “위원들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3당에서 각 3명씩, 정세균 국회의장이 6명을 추천해 위촉됐다”며 “어느당 혹은 누구에 의해 위촉된 것인지는 여야 간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위촉 통보를 받았을 때 당혹스럽기도 했고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도 컸다”면서 “자부심과 책임감, 사명감을 갖고 지난 3개월을 보냈다”고 소회를 전했다.

추진위 활동에 앞서 그는 ‘세비’라는 용어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했다. “흔히 국회의원의 보수를 세비라고 하는데, 대통령과 장·차관은 ‘보수’를 받는데 왜 국회의원들에게는 세비라는 단어를 쓰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세비’는 일본식 용어다. 일제 치하를 지나 제헌국회 때 쓰기 시작해 법률상으로는 1973년 사라졌다는 것. 하지만 계속 관행적으로 써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용어 사용의 부적절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더니 추진위 위원들도 다들 놀랐다”며 “개혁안에는 세비가 아닌 보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안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과도한 수당, 세금 안내는 눈먼 돈?

‘보수’는 봉급과 수당을 합친 말이다. 국회의원은 수당만 받는다. 순수하게 봉사하는 직업이고, 실비 변상적 비용만을 지급받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국회의원들의 평균 보수가 연 1억7400만 원 정도인데, 이를 고스란히 수당으로 받고 있어 소득세도 내지 않을뿐더러 건강보험료 산정 지급항목에도 빠져있다”며 “국회의원 역시 보수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근로 대가로서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입법활동과 회의참석은 국회의원 본연의 임무인데 이를 특별활동비, 입법활동비 등의 수당으로 받는 것도 잘못된 일”이라며 “개혁안이 통과되면 실질적으로는 현재 받는 보수의 15%가 삭감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국회의원의 보수를 누가 결정하느냐’에 있다. 이에 추진위에서는 국회의원들의 보수 수준과 수당 항목 등이 적정한지를 심의하는 독립된 기구, 가칭 ‘보수산정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안을 냈다.

면책특권은 ‘보장’, 불체포특권은 ‘제한’

지난 7월
추진위에서는 면책특권은 인정해줘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오히려 회기 중 발언에 대해서는 자유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에게 필요한 권한이지만, 면책이란 이름 아래 욕설이나 비방, 저속어 등이 다 이해돼서는 안 된다”며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서는 윤리심사위원회에서 엄격히 심사할 수 있는 안을 마련해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방탄국회를 가능하게 했던 ‘불체포특권’에 대해서는 엄중한 기준을 적용했다. 그동안은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지 72시간 이내에 표결하지 못할시 자동 폐기됐지만 개혁안은 다음 본회의의 첫 의제로 표결해야한다는 의무조항을 담았다.

그는 “그동안 72시간을 넘기면서 유야무야 되는 일이 많았는데, 이는 시간 내 표결하지 않았을 때 따르는 조치나 지침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동의든 가결이든 부결이든 표결하는 의무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각종 특별대우 제한… 국회의원 상징 ‘금배지’ 없어지나

국회의원이 누렸던 각종 특별대우를 삭제하는 방안도 이번 개혁안에 담겼다.

그는 “장관 등 국무위원을 겸직한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입법활동비와 특수활동비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며 “입법활동비를 챙겨 중복 활동비를 받는 것이야 말로 특권 중의 특권”이라고 했다.

또한 해외공무 시 국회의원들이 의전에 있어 과도한 대우를 받는다는 지적에 따라 추진위는 차량제공은 물론 대사관 직원의 수발 등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국외활동 내용을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연간 의정활동 보고를 제출하도록 하는 안을 냈다.

보좌관 채용에 있어서도 4촌 이내 친인척 채용을 금지하고, 8촌 이내는 의장에게 신고하도록 했다. 민방위 제외 특권도 삭제할 것을 제안했다.

금배지를 없애는 것은 상징적인 특권 내려놓기로 제시됐다. 국회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국회의원 역시 배지 대신 출입증을 사용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그는 “국민들 눈에는 사실 금배지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며 “국회의원을 의미하는 금배지가 사실상 특권의식 등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만큼 상징적인 특권 내려놓기의 일환으로 개혁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국회의원 특권이 200가지? 특권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을 두고 그 항목이 무려 200여 가지나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에 따르면, 이 200가지 특권의 진실은 와전된 측면이 있다. 잘못 알려진 특권이나 특권이 아닌 국회의원의 고유 권한도 상당수 있기 때문.

그는 “200가지 특권이라는 이야기는 추진위 확인 결과 항목이나 리스트가 따로 존재하지 않아 실체가 없었다”며 “추진위 활동을 통해 국민들에게 잘못 알려진 특권에 대해서도 알리고자 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잘못 알려진 특권 중 하나는 ‘국회의원은 당선만되면 하루를 일하더라도 평생 연금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65세부터 매달 120만 원씩 지급되던 연금제도는 18대 국회의원까지만 적용되는 특권으로 지난 19대 국회 때 이미 사라졌다.

그는 “KTX와 선박, 비행기를 무료로 이용하는 특권도 사실상 없어진 특권 중 하나”라며 “철도청이 한국철도공사로 전환되고 항공사가 민영화된 이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어떤 권한도 없어진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약비준동의안, 예산안제출권, 법안제출권 등은 국회의원이 가진 고유한 권한이지 특권이라고 볼 수 없다”며 “독점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특권으로 보는 것에는 일부 문제가 있고, 지켜줘야 하는 권한도 있기 때문에 이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국회의원부터 시작, 사회 전반 특권 논의 확산돼야”

우리 사회에서 ‘특권’이란 단지 국회의원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그에 따르면, 추진위 역시 이번 활동이 국회의원에게만 적용되지 않고 정치권 전반, 기업 등에서 하나의 신호탄으로 작용하길 바라고 있다.

그는 “이번 계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특권의식에 대해 고민하고, 정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이를 신호탄으로 정치권 전반, 기업 등에서도 특권 내려놓기 운동이 확산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막상 활동을 하다 보니 현실에 부딪히기도 했다”며 “예를 들어 차관급인 국회의원 보수를 낮추면 국회 사무총장보다 낮아지는 일이 발생하는데, 이는 국회의원만이 아닌 정치권 전반에서 함께 가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해결 가능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추진위에서 제출한 개혁안이 어떻게 처리될지는 이제 국회의 몫”이라며 “국민들의 관심이 큰 만큼 지연되거나 잠자는 일 없이 추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20대 국회 이슈는 ‘특권 내려놓기’로 모아졌다. 숱한 비난을 받아 온 국회의원들이 제 살을 깎는 고통으로 그동안의 과오를 씻어낼 수 있을지 그의 말대로 이제 국민들이 지켜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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