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 통(痛)] (사)대전교육연구소장

교무실에서 한 여교사가 전화를 받더니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아들의 담임교사에게 전화가 왔는데, 시험 감독을 도와줄 학부모들을 연락해 선정해 달라고 하더란다. 아들이 반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급 학부모들의 대표 역할을 해야 하는 그 여교사의 처지도 참으로 딱했다. 학부모들을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아이를 위해 그런 역할까지 해야 하나라는 답답함이 짓눌렀던 것이다. 어렵다고 했더니 상대방 아들 담임교사도 이렇게 푸념하더란다.

성광진 (사)대전교육연구소장
“00학교에서는 학년의 학부모 대표가 나서서 감독 학부모를 선정해서 알려주시는데, 여기는 저더러 어떻게 하라고 이런 것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교사가 학부모에게 필요한 때마다 이런 부탁을 하는 것도 고역이지만,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이런 동원에 대부분의 맞벌이 학부모들은 더욱 힘들다.

그런데 학부모를 동원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학교 내 각종 위원회는 학부모들의 참여가 필수적인데, 이를 채우느라 담당자들도 애태운다. 학교운영위원회, 교원능력개발평가관리위원회, 학교급식소위원회, 학교체육소위원회,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등에서 학부모위원이 필요하다. 여기에 가끔씩 교육청의 각종 정책 설명회 등에도 ‘학부모 0명 반드시 참석’의 요청도 빠지지 않는다. 이래저래 학교에는 이러한 위원회나 ‘반드시 참석의 요청’ 때에 단골처럼 부탁에 응하는 부모가 있기 마련이며 학교로서는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학부모는 학교의 이런 요청에 달갑게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사실상 학교 운영이나 급식, 학교폭력 등과 같은 전문적이거나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 자문을 받거나 학부모 자신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이렇게 참여하는 것이 학교나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학부모들은 들러리로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학부모 의견 제대로 반영되려면 학부모회 법적 보장받는 기구 되어야

학부모들의 의견이 학교에 제대로 반영되려면 먼저 학부모회가 법적으로 보장받는 기구가 되어야 하며, 학교와 사회로부터 각종 지원이 이루어져서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 학부모회 모임이 있을 때 직장에서 참여할 수 있도록 법적인 차원에서 지원이 있어야 한다. 학부모회 참석이 출장처럼 당연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 학부모회는 독자적인 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고, 학교의 간섭이 완전히 배제될 수 있도록 법적인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 운영비가 학부모의 호주머니에서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학부모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반장, 부반장 등 학생회 임원들의 부모들이다보니 학부모회가 몇몇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아이에게 유리한 영향을 끼치기 위해 참여하는 학부모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먹고 사는 것이 바쁜 서민들은 대부분 참석을 법적으로 보장한다 하더라도 일당을 줄이면서, 또는 상사와 동료들의 눈치를 받으려 참석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문제점의 대안으로 소통을 위한 각종 방안을 마련했으면 한다. 학교별 학부모 홈페이지나 학급별 SNS 네트워크을 만들어 쌍방향 소통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면 한다. 어찌되었든 학부모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모아서 아이들 교육에 보탬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학부모 동원대상 아니라 교사들과 학교 주체로서 실질적 역할 해야

그런데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를 오로지 내 아이의 성적을 높여 상급학교 진학에 이용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어 과다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학교는 성적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올바른 성장이 목적이 되어야 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을 학습하는 곳이어야 한다. 학부모들도 내 아이만 잘 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모두 함께 성공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잘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학부모들이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교사들과 더불어 학교의 주체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빠른 시일 안에 학부모회가 법적인 기구로 보장받았으면 한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