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시민 이기는 시장 없지만, 속이는 시장은 많다

과거 통신사업은 ‘전화국’에서 독점했다. 전 국민이 쓰게 된 전화로 정부 혼자 장사를 하니 노다지 사업이었다. 전화국 직원도 인기였다. 돈이 되는 사업은 민간에서 그냥 놔둘 리 없다. 대통령 사돈이 되는 대기업이 통신사업을 나눠 가지면서 전화국은 민영화의 길을 걸었다. 지금 통신사업은 민간 업체끼리 경쟁하고 있다.

전화국 직원들은 원치 않는 일이었겠지만 자본주의 국가에서 통신사업의 민영화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상품은 시장(市場) 경쟁이 가능하면 소비자는 더 싼 값에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독과점 방지 등 시장질서만 유지된다면 민영화는 실보다 득이 많다. 이런 논리를 믿는 게 자본주의다.

대전시 “상수도 민간 위탁하면 수돗물 값 싸진다”

수돗물은 어떨까? 상수도 사업은 물을 팔아 운영하는 사업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그 일을 맡고 있다. 대전시민들이 마시는 수돗물은 대전시(상수도 사업본부)가 돈을 받고 팔아 그 돈으로 사업을 운영한다. 공공기관은 수익을 내는 게 목적이 아니므로 값이 비쌀 이유가 없다. 민간 업자가 운영을 맡게 되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대전시는 민간 위탁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말하고 있다. 대전시의 경우, 수돗물을 더 깨끗하게 만드는 초고도정수처리 사업 등에 1670억 원이 필요하며, 이 사업을 민간에 맡겨 운영하면 수도요금 인상 요인이 톤당 69원으로, 나라 돈(재정사업)으로 할 때 81원보다 오히려 저렴하다고 대전시는 주장한다. 관리비도 많이 절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외국의 상수도 민영화 결과를 보면 요금이 줄줄이 올랐다. 상수도 민영화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는 민영화 이후 영국 100%, 프랑스 150%, 미국 59%나 올랐으며 이 때문에 민영화를 되돌리는 추세라고 밝히고 있다. 이밖에도 대전시 말을 믿기 어려운 명백한 이유들이 많다.

몰래 하는 사업은 국방 도시계획 분야 아니면 ‘이권사업’

첫째, 대전시는 상수도 민간위탁 사업을 몰래 추진해왔다. 시는 1년 전부터 이 사업을 추진해온 것으로 드러났으나 얼마 전에야 이 사실이 알려졌다. 김동섭 대전시의원은 “시의원들조차 몰랐다”고 했다. 도시계획이나 국방 등 보안이 필요한 사업이 아닌 데도 몰래하는 경우는 이권(利權) 사업뿐이다. 수백 억 수천 억짜리 사업도 최대한 숨긴다.

둘째, 대전시 상수도 문제는 시간을 다툴 정도로 시급한 사안은 아니다. 상수도 노후관 교체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지금 당장 수돗물이 안 나올 정도는 아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대청호 녹조 때문에 초고도정수시설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전시 수돗물은 아직 우수한 편이다. 대전시 수돗물로 만드는 ‘이츠 수’는 올해 국가브랜드 대상까지 받았다.

셋째,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만큼 대전시로서는 민간 자본이 아니라 국비를 지원받는 재정사업으로 추진하는 게 상식인데 굳이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려 한다. 정부 보조금은 쉽게 받을 수 없고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식으로 대전시는 말한다. 정말 그런 생각이면 딱한 일이다. 남들 다 받는 돈을 왜 대전시만 못 받나? 

넷째 상수도 민간 위탁이 대전시와 시민을 위해 정말 좋은 방법이라면 왜 아직 다른 시·도들은 이런 방식을 도입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김동섭 의원은 “부산 광주 등 우리나라 모든 시도들은 다 나랏돈으로 상수도 사업을 하고 있는데 대전시만 유독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려 한다”고 했다.

위탁업자에 ‘노다지 사업’이면 시민들에게 손해 당연

상수도 민간 위탁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수긍하기 어렵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배경은 있다. 민간 위탁은 시민이 아니라 특정 업자들을 위한 사업이다. 대기업들은 돈은 쌓이는데 일거리가 부족하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사업을 투자처로 삼고 있다. 공공기관을 상대로 하는 민투사업은 돈을 떼일 우려가 없을 뿐 아니라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덤벼든다.

쓰레기 처리시설이나 유료도로 가운데 민간자본으로 건설되는 경우가 필요 이상 많은 것도 이런 이유다. 지방자치단체는 재정난 핑계를 대지만 뒤에는 탐욕스런 민간 자본이 있다. 이들은 단독입찰이나 수의계약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수백 억~수천 억 짜리 사업들을 따내면서 15~20년 안팎의 운영권을 갖는다. 대전시가 현재 시공 중인 2000억 짜리 자원순환단지도 그런 사업이다. 대전시 상수도 민간위탁은 25년 계약조건이다. 엄청난 이권이다.

벤처기업이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엄청난 이권은 다른 누군가의 막대한 손해를 전제로 한다. 민간 위탁의 피해자는 시민들이다. 민투 사업은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시민 부담만 늘리는 결과가 많았다. 대전시민들은 도로 같지도 않게 짧은 갑천 유료도로를 잠깐 스치는 데 800원 이상 내야 하는 이유를 아직도 모른다. 서울 지하철9호선 등에서도 민투사업의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민투 유행은 한풀 꺾이는 듯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대전시는 여전히 민간 자본을 못 끌어들여 안달이다.

시민 이기는 시장 없으나 시민 속이는 시장은 많다

전화는 서비스가 나쁘면 업체를 바꿀 수 있고, 유료도로가 거슬리면 돌아가면 되지만 수돗물은 그게 어렵다. 대전시민 세종시민 계룡시민 모두에게 단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되는 대전 수돗물 장사는 망할 일이 없다. 위탁이든 민영화든 사업자에겐 노다지 사업이다. 위탁을 맡겠다고 나선 업체는 “남는 게 없다”고 하고, 대전시는 민간 상수도가 오히려 저렴하다고 말하지만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시의회가 마침내 민간 위탁 반대결의안을 내고,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이 한결같이 반대하고 있다. 권선택 시장은 “시민들을 이기는 시장은 없다”며 모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말은 맞다. 그래도 믿기 어렵다. 시장이 시민을 이길 수는 없으나 속일 수는 있다. 그동안 시민을 속이는 시장을 너무 많이 봐왔다. 대전시는 1700억 짜리 사업을 시의원조차 모르게 왜 숨어서 해왔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전직 관료 “대전시 논리라면 시장 자리 삼성 위탁 요구 나올 것”

수돗물을 공급하고 하수를 처리하며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지방자치단체의 기초 업무다. 이것까지 민간에 팔아넘기면 시장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며 공무원은 어떤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겠다는 것인가? 대전시의 한 전직 관료는 상수도 민영화 논란에 혀를 찼다. 그는 “대전시 논리대로 상수도의 민간 위탁이 유리하다면 대전시장 자리까지 삼성 같은 대기업의 유능한 CEO에게 민간 위탁하자는 요구가 나와도 대전시는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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