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111>

공무원 시험은 말 할 것도 없고 웬만한 공기업 공채 경쟁률도 100대 1에 육박한다. 지난해 금융공기업의 평균 경쟁률은 90대 1이었는데 올해는 100대 1이 넘을 것이란 소식이다. 지난 6월 치러진 대전시의 지방공무원 9급 세무직 경쟁률은 70대 1이었으며 일반 행정직도 51대 1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경우도 있다니 무서운 취업전쟁이다.

도시철도공사 채용비리 후 대전시 산하기관 또 인사문제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지난 3월 대전도시철도공사 기관사 채용비리가 터진 후 개선될 것으로 보였던 대전시 산하기관의 인사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이런 보도가 나올 때마다 공채 합격을 위해 몇 년씩 공부하는 취업 준비생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최선을 다해 공부한 후 그 결과를 하늘에 맡길 수야 있지만 특정인을 위한 자리에 들러리 서는 심정은 슬픔을 넘어 비참하니 말이다.

기관단체장이 새로 임명되면 그를 중심으로 조직이 정비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기관장 한 명 바뀌었다고 원칙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인사를 하는 것은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조직이 안정적으로 굴러가려면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사를 해야 하고 특히나 사람을 새로 쓰는 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대전도시철도공사는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해 사장과 친분 있는 교수들을 면접관으로 불렀으며 면접점수까지 조작하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대전시 산하 공기업 시험이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모자라 점수를 조작해 합격자를 뒤바꾸는데 밤잠 안자고 코피 쏟으며 공부한 ‘흙수저’들이 어떻게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겠는가? 이런 범죄행위는 개인기업에서도 보기 힘들다.

그런데 대전시 출연기관인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에서도 인사 잡음이 나오는 걸 보면 대전시와 산하기관 공채에 신뢰가 안 간다. 계약기간이 끝난 직원을 근무평가나 정규직 전환 심의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정규직으로 바꿔주는가 하면 6급으로 채용됐다가 급여수준 등을 이유로 임용을 포기하자 5급으로 직급을 올려 다시 채용했다.

정보문화진흥원 심의절차 없이 계약직서 정규직 전환 등 인사 논란

7급 공채 입사자들에 비해 나이와 경력이 적음에도 '계약직 마급'에서 '정규직 6급'으로 올려줌으로써 조직 내 위화감이 적지 않다고 한다. 지난해 말 43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온 7급 채용자들은 2,000만 원대 연봉을 받는 데 비해 계약직으로 들어와 별도 근무평가도 거치지 않은 채 정규6급으로 전환돼 3000만원 상당을 받으니 불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6급 합격자가 처우를 이유로 임용을 포기하자 5급으로 직급을 올려 재공고 한 뒤 같은 사람을 채용한 걸 두고도 뒷말이 많다. 최종 합격자가 임용을 포기하면 후순위를 합격 시키거나 재공고하는 게 보통인데 직급을 한 단계 올려 동일인을 채용한 것은 특혜로 비칠 수 있다. 진흥원에서는 대상자가 없어 직급을 올려 재공고한 것이라는데 잘 이해가 안 된다.

이외에도 진흥원 시설관리 용역사 직원이 5급에 응시하며 진흥원 소속의 경력증명을 허위 발급받아 서류전형 1위로 합격했다가 번복했는가 하면 인사위원회 구성 지연을 이유로 10여명의 계약직원을 사전 심의도 없이 약식 채용했다. 인사 논란의 대상자들이 박찬종 원장의 전임 직장과 관련된 사람들이라는 데 특혜 의혹을 더하고 있다.

박 원장은 "연구단지와 대학 등 여러 곳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이곳 출신들이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고 채용자들은 나와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라는 입장이지만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다. 대전시 한 출연기관에서도 기관장의 출신대학 학생들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직종에 채용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조직의 리더로서 유능한 인재를 채용하려는 욕심은 당연하며 채용과정에서 지연·혈연·학연을 완벽히 배제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대전시 산하기관들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뽑으면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개인기업도 좋은 인재를 뽑기 위해 백방으로 사람을 찾는데 하물며 시 산하기관들의 방만한 인사행태를 보면 한심하다.

권선택 대전시장은 지난 6일 확대간부회의에서는 산하 기관장들에게 “그동안 시장이 낙마할 것이란 전제하에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며 “잘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걸어야 하고, 못하겠다면 자리를 내놔야 한다”고 했다.
권 시장 산하기관장들에 "못하겠으면 자리를 내놓으라"

지도 감독해야 할 대전시는 다음 달 쯤에나 있을 종합감사 때 살펴보겠다니 별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 조직원에게는 가장 예민한 인사 문제이며 시민과 응시생들에게는 기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중대한 일인 만큼 대전시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박 원장 역시 연구단지 내 여러 기관과 대학에서 근무한 이력 때문에 오해를 받는 것이라면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

대법원 판결에서 당분간 시장 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권선택 대전시장은 얼마 전 간부회의에서 "시장이 낙마할 것이란 전제하에 움직인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여러분이 중대결심을 해야 할 때"라며 산하기관장들에게 "못하겠으면 자리를 내놓으라"고 큰소리쳤다.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올해 안으로 1~2명의 기관장을 교체할 것이란 소문도 있다.

도시철도공사 채용비리 때도 권 시장은 "부정부패나 사회문제 야기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했는데 또다시 군기잡기를 하는걸 보면 시장 말이 잘 안 먹히는 것 같다. 산하기관장의 책임 있는 자세와 시민에게 믿음을 주는 시정을 강조한 권 시장의 메시지가 헛말이 아니길 바라며 대전시와 산하기관 공채를 못 믿겠다는 오명은 듣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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