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찬의 꿈과 희망 이야기] “안녕하세요?”

무더위가 갑자기 뚝 부러지고 외출하기 좋은 계절이 되었다. 일요일 아침, 집 근처로 산책을 나섰다. “안녕하세요?” 예닐곱 살쯤 되는 사내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가며 인사를 한다. 아이한테 인사받기가 참으로 힘든 세상이 되었다. 아니,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직접 만나는 것조차 보통 우연이 아닌 사회가 되었다.

아침이면 함께 등교하자고 대문 앞에서 친구 이름을 크게 불렀다. 밥 먹던 숟가락을 던지듯이 내려놓고 후다닥 문밖을 향해 내닫곤 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참새 떼 같이 등교하는 얘들이 보고 싶다. ♬ 빨간 우산 검정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갑니다. 지금은 영화에서도 보기 어렵게 정겨운 장면들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요즘 어린이들이 고향이란 말의 의미를 알까? 그 시절, 그 고향, 그 어린이들이 그립다.

생활수준은 급성장했는데 핵가족 세대들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 만 낳아 잘 기르자!’ 기성세대들의 다자녀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려던 시절도 있었다. 출산율이 1.3명 아래로 떨어진 뒤 15년째 초저출산 국가에 속해 있다고 한다. 지난해 출산율은 1.24명에 머물렀다. 결혼한 부부 두 세대에서, 즉 남녀 네 명이 세 명도 낳지 않는다는 얘기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구는 점점 감소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 고령화 사회로 가는데, 그들을 지탱해 줄 세대들이 없게 되는 것이다. 연령대 인구의 불균형으로 어느 순간 사회가 쇠락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면 생산가능인구와 수요가 감소하여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200여개 정책에, 10년 동안 출산정책으로 80조원을 지출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가 2017년 저출산 주요 정책에 7835억 원을 지출하여 난임 부부 지원확대, 보육교사 처우개선 등을 지원한다. 결혼 후 출산·육아·교육 지원을 강화하고 직장에서 임신과 출산에 따른 불이익을 해소하며 신혼부부의 주택문제 등을 해결한다고 한다. 키울 때는 고생스럽지만 키우고 나면 든든하고 뿌듯한 자산이라고 말들은 쉽게 한다.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주요 과제로 삼았는데 아이를 낳는 것만큼 의미 있는 창조가 또 있느냐고들 한다. 대부분이 임시방편적 재정지원과 말로 하는 타령들이다.

독일의 미래학자 팝콘(F. Popcorn)이 사용한 용어로 ‘코쿠닝 현상(Cocooning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현대인들은 마치 누에고치처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막을 친다는 것이다. 외부 위험을 피해서 가족을 중심으로 생활반경을 좁혀간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이 같은 ‘움츠리기’가 가족과 이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증폭시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현실에 부딪혀 사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가족과 가정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보호가 우선이다. 웬만한 수입을 얻는 신혼부부들도 당장은 둘만의 삶을 위한 움츠리기에 신경을 쓴다. 니트족, 오리신드롬, 캥거루족, 프리터족, 사토리세대, 프리커족 등이 요즘 청년들의 특징을 대변하는 말이다. 급기야 3포 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취업의 어려움과 불안정한 직장 등 복잡한 현실 속에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청년층에게 결혼이나 가정이란 문제는 어찌 보면 이상향인지도 모른다.

자녀가 성장하여 자립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0여년을 교육과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직장으로 일정한 가계 수입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미래는 점점 더 불확실하다. 청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감이라도 주어야 하는데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동상이몽 속에서 헤어나지 않으려 한다.

국가와 사회를 책임지어야 할 고매하신 분들은 당론당쟁으로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에 분주하시다. 지역발전에 막중하신 분들은 호화청사, 무분별한 시설 건립 등에 불철주야 참으로 다망하시다. 평균연봉 9000만원이 넘는 직장인들은 파업으로 철벽같은 옹성을 지키기에 고군분투하신다. 많은 중소기업들은 외국인 노동자로 연명해야 하는데 대기업들은 고임금을 핑계로 해외에 나가 타국의 발전에 기여하는 공로가 크다. 흥청망청 자기들만 누린 아성이 무너지면 정부는 국민들의 세금 수천억을 들여 뒷정리를 해 준다. 그분들은 ‘안녕’하실지 모르나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꾸려야 하는 이들에게는 점점 멀어져가는 꿈속의 ‘안녕’으로 들린다.

말로만 하는 대 국민정책, 국민들 세금만으로 치부하는 저출산 대책, 진정 대안은 없는 것인가, 대안을 세우지 않는 것인가? 소도 언덕이 있어야 등을 비빌 수 있다고 했다. 청년층이 기대어 비빌 수 있는 언덕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직장과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편안한 사회일 것이다. 지금 당장 물고기 몇 마리로 치부하지 말고 그들이 편안하게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불안정하고 신뢰 없는 사회는 자기중심, 자기보호, 간섭불용, 사회방임주의 등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자기보존의 본능이 코쿠닝 현상을 자연적으로 유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得天下英才而敎育之一樂也(득천하영재이교육지일낙야), 자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영재들도 많을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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