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구박사의 그림으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5> 의학의 아버지

무지한 고대의학이 인간존중의 현대의학으로 전환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진정한 ‘의학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가장 오래된 의학 자료는 기원전 700년경에 창작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이다. 이중 <일리아스>에는 아름다운 아내 헬레네를 뺏긴 불운한 남편 메넬라오스 왕이 허리에 화살을 맞자 이를 제거하고 치료하는 의사 마카온이 등장한다. 마카온은 당대 의술과 의사의 신으로 칭송받던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들이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당시 훌륭한 의사로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했는지, 저승 명계(冥界)의 신(神) 하네스가 인간의 사망률이 급감한다고 제우스에게 하소연해 제우스가 그를 번갯불로 쳐 죽였다는 신화가 있다. 의사를 뜻하는 영어 ‘아스클레피오스(Aesculapius)’는 그의 이름에서 비롯됐고, 위생을 뜻하는 영어 ‘하이진(Hygiene)’은 그의 딸이자 위생의 여신 하기에이아에서, 만병통치약을 뜻하는 ‘파나케이아(Panacea)’는 그의 다른 딸이자 약학의 여신 파나케이아에서 유래되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경치가 좋고 건강에도 좋은 신선한 곳에 많은 신전을 세워 환자들이 즐겁게 오락을 즐기며 스파나 온천, 연극 공연 등을 볼 수 있는 현대식 휴양원을 지었다. 특히 환자에게 약간의 약초 수면제를 먹여 재운 후 환자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면 의사의 상징인 지팡이에 뱀을 감아 환자에게 갑자기 들이댔다. 놀람과 함께 신이 자신을 찾아왔었다는 신뢰감과 자기암시를 통해 자연 치유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들은 악마 때문에 병이 생긴다는 오랜 믿음을 부정하면서 만물의 으뜸 요소는 공기이고, 질병이란 습하고 건조한, 뜨겁고 차가운, 쓰고 단, 두 가지 상반된 성질들 사이의 균형이 깨지면서 발생한다고 믿었다. 특히 이 학파의 엠페도클레스(BC 495-435)는 모든 물질은 물, 불, 흙, 공기의 네 기본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며 주술적인 의학개념을 무시했다. 종양(腫瘍)은 신의 천벌이 아니라 그저 비정상적 생장물이라며 보다 과학적인 치료를 강조했다.

그로부터 약 100년 후 에게 해(海)의 코스섬에서 태어난 그리스인 의사 히포크라테스(BC 460-377)는 아스클레피오스 학파보다 더 현실적으로 과거의 주술적이고 철학적인 의학을 거부했다. 그는 환자의 머리맡에서 직접 관찰한 것과 자연과학을 토대로 한 새로운 의학개념을 일으켰다. 제사장의 아들이었던 그는 신전에서 수많은 병자들을 관찰하고 치료하면서, 엠페도클레스의 세상 물질의 근원인 4원소설에 비견하여, 인간의 체액(體液)은 혈액(불), 점액(물), 황담즙(공기), 흑담즙(흙)의 4체액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 네 가지 체액들이 사람의 성질과 건강을 결정하며, 담즙질은 화를 잘 내고, 점액질은 냉정하고, 우울질은 비관적이며, 다혈질은 쾌활하고 변덕이 심하다고 했다. 즉 4체액들이 조화를 이루면 사람은 건강하고, 조화가 깨져 어느 하나가 모자라거나 넘치면 질병이 든다고 보았다. 의사의 임무는 이들이 조화와 균형을 회복하도록 도울 뿐이고, 병을 낫게 하는 근본 힘은 자연 치유력에 있다(Natural healing)고 했다.

그들은 항상 같은 방식으로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증상과 진찰결과를 상세히 기록했고 진단한 후에는 예후를 설명했다. 집안의 공기를 자주 환기시킬 것과 햇볕을 들이고, 청결한 병실과 실한 섭생을 당부하는 예방의학을 강조했다. 또한 질병의 시간별 경과를 임상보고서에 적어 추후 병의 예후는 물론 예방도 가능하게 하였다.

또 히포크라테스가 처음 시도한 수술법 몇 가지는 현재도 임상에 응용되고 있는데, 흉막염을 치료하기 위해 흉벽에 작은 구멍을 뚫고 고름을 배액 할 튜브를 삽입하거나, 골절을 뼈끝이 서로 닿도록 하고, 탈구된 관절은 견인과 정렬을 통해 잘 붙거나 제 위치로 정복 및 복구 시키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위대함은 환자의 현대적 진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현대 의학 윤리의 기반을 다졌으며, 항상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것이며, 좋은 의사가 되려면 반드시 먼저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젊은 의사들은 졸업식장에서 “나는 의사의 신인 아폴로(Apollo), 아스클레피오스(Aesculapius), 하기에이아(Hygenia), 파나케이아(Panacea)에 맹세하여 나의 능력과 판단 하에 의사와 환자 간 지켜야 할 11가지 선서를 준수할 것을 모든 신과 여신 앞에 선서”하게 된다. 히포크라테스가 3000년 전 작성한 의사의 윤리내역은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영원할 것이다. 

전혀 무지한 초창기의 미신과 주술적이고 종교적이던 과거의학에서 탈피하여 과학적 관찰과 직접적인 진단, 휴양을 통해 현대의학의 문을 처음 연 아스클레피오스 학파와, 그로부터 100여 년 후 좀 더 과학적이고 자연치유를 바탕으로 현대의학이 가야 할 윤리적 의학의 길을 제시한 히포크라테스 학파 중 누가 ‘의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기에 적합한가는 ‘둘 다’ 라는 결론이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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