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정치 현실 반영해야"…대법원 권선택 시장 파기환송

지난 2014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공직선거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당선무효 위기에 몰렸던 권선택 대전시장이 극적으로 살아났다.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고법에 돌려보내면서 권 시장은 정해진 임기를 채우는 한편, 시정도 탄력을 받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가 26일 상고심 판결을 통해 내린 결론의 요지는 간단하다. 권 시장이 고문으로 있던 사단법인 대전미래경제연구포럼(이하 포럼)은 권 시장의 지방선거 당선을 위해 설립된 선거 유사기관이 아니며, 권 시장과 그의 지지자들이 포럼을 통해 벌인 활동도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심과 항소심 법원이 대부분 검찰 측 의견을 받아들여 당선무효형인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것을 뒤집은 판결이다.

이번 판결에 참여한 대법관 12명 중 9명은 선거운동의 범위가 분명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쪽에 힘을 보탰다.

이는 권 시장 측 변호인이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과정에서 줄곧 주장해 왔던 것으로, 현행 공직선거법 제58조는 '선거운동이라 함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라고만 규정돼 있다. 구체적인 사안이나 행위에 대한 제한이 없다보니 대법원에서도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능동적·계획적인 행위'라고만 인정돼 왔던 게 사실.

9명의 대법관은 유권자가 공직자를 선출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정치인과 유권자 간 소통과 접촉의 기회가 충분히 보장될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선거운동의 개념을 분명히 해야한다고 판시했다.

또 이들 대법관은 현행 선거법이 선거운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기 크다는 데 동의했다. 정치신인이나 원외정치인은 현역에 비해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게 사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출발선을 동일하게 하는 등의 실질적 기회균등을 보장해 주는 차원에서 정치인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활동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했다.

선거운동은 특정 선거에서 특정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어야 하고 선거일에 가까울수록 특정 선거를 전제로 그 선거에서 당락을 도모하는 행위임을 유권자가 명백히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대법관 9명의 의견이다. 인지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행위나 단체 등을 통한 활동의 경우에도 특정 선거에서 당락을 도모하려는 목적 의사가 인정되지 않는 한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 대법관은 권 시장 등이 조직하고 운영한 포럼 활동의 경우, 선거일에서 멀리 떨어진 시기에 이뤄진 것이고 대전시장 선거에서 권 시장에 대한 지지를 부탁하는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권 시장의 인지도와 긍정적 이미지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더라도 이를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거나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포럼을 설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앞서 포럼과 관련한 유죄 판례들은 모두 수정키로 했다.

이번 판결로 권 시장을 비롯한 포럼 사무처장과 캠프 조직실장 등 5명의 사건은 대전고법으로 파기환송돼 다시 심리를 시작하지만 포럼과 관련한 혐의는 사실상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인해 향후 선거운동 등으로 처벌될 수 있는 범위가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전원합의체의 판결을 통해 선거운동에 관해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제고되고 정치활동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될 것"이라며 "국민의 진정한 의사를 선거에 반영될 수 있게 해 정치인의 정치적 책임성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진정한 대의민주주의가 구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싱크탱크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단체에 많은 수의 정치인들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정치현실을 반영하고 50년 동안 이어온 규제 중심의 선거문화에서 탈피해 선진적인 정치 문화의 시금석이 되길 기대한다"면서 "금권선거나 부정선거 등은 사전선거운동죄가 아니라 개별적 금지 처벌규정에 따라 단속가능하고 규제 방향은 정치활동 자체를 제한하는 방식이 아니라 선거비용이나 정치자금을 합리적으로 통제하는 방법이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포럼에 대한 권 시장의 선거운동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서는 다소 여지를 남겼다. 포럼의 설립 및 각종 활동들이 선거유사기관 설치나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정치활동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파기 환송 후 더 심도깊은 심리를 해보라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포럼에서 사용한 자금 중에 정치 활동에 사용된 것이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반대 입장, 즉 권 시장이 포럼을 통해 선거운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대법관도 3명이 있었지만 선거운동이 아니라고 판단한 대법관들의 다수 의견에 밀렸다.

아직 권 시장에 대한 재판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핵심이었던 포럼을 통한 사전선거운동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의 입장을 밝히면서 권 시장은 당선무효의 굴레에서 벗어나 시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향후 각종 선거에 출마하려는 정치인들은 적어도 선거운동할 수 있는 가능 범위가 확대된 셈이어서 보다 활발한 정치 활동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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