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구박사의 그림으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4> 타진법과 청진기의 발명

환자의 배나 가슴을 두드리거나 청진기 등으로 환자의 병을 청진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은 오랜 의학 역사에 비하면 꽤 최근의 일이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BC 460-370)는 자신의 귀를 직접 환자의 가슴에 대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어 진찰하였다고 한다.

현대의 타진법(打診法)은 고작 300년 전 오스트리아의 아우엔 부르거(1722-1809)가 처음 보고했다. 그의 아버지는 술집을 경영하면서 맥주 통의 맥주가 동나면 손님들의 원성이 심한 것을 보고 항상 맥주가 떨어지지 않도록 통 안에 맥주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주먹이나 나무망치로 두드려 보곤 했다. 맥주 통을 두드려서 맥주의 양을 알아내는 그의 기술은 아주 뛰어나서 다른 술집처럼 맥주가 동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때 빈 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된 아우엔 부르거는 그의 아버지가 맥주 통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도 통을 두드려서 그 안의 맥주 양을 알아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환자의 가슴이나 배를 두드려보면 그 속의 상병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후 그는 모든 환자들의 가슴과 배를 두드려 그 소리를 기억해 기록하였으며, 점차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 사이의 소리, 또 아픈 사람들 중에도 심장병이나 폐결핵 등 질환별로 그 소리가 다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술통이 완전히 비어 있으면 술통 어디를 두드려도 공명(共鳴)성의 소리가 나지만 통속에 술이나 물이 차 있으면 둔탁한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로, 폐염이나 늑막염 등으로 늑막에 물이 차거나 심장병 혹은 간염 등으로 복수가 차면 타진음이 완전히 둔탁한 소리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1761년 자신의 연구결과를 모아 <가슴을 두드려 병을 알아내는 새로운 진단 타진법>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렇지만 당시 음악의 도시였던 빈 사람들은 그에게 “환자의 몸에서 나는 소리로 오페라라도 작곡하려나?”라는 빈정거림만 있었을 뿐 세상에 잘 알려지지는 못했다.

그후 20년이 지나 프랑스 의사 라에네크(1781-1826)가 보다 효율적인 청진기(聽診器)의 원형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날 그는 어린이들이 속이 빈 긴 통나무를 사이에 두고 한 아이가 통나무를 한 끝에서 두드리거나 못으로 긁으면 반대편의 아이는 통나무에 귀를 대고 무슨 소리인지 알아맞히는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라에네크도 호기심에 통나무에 귀를 대어보니 상대편의 소리가 크고 똑똑하게 잘 전달되어 들리는 것을 알게 됐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그는 곧장 집으로 가 두꺼운 종이를 둘둘 말거나 대나무 통으로 가족들의 가슴에 대어보고 심장 박동소리가 더욱 크고 뚜렷하게 들리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개량하여 그림에서와 같은 긴 원통형의 ‘가슴 검사기’를 고안해 내었다.

이후 라에네크의 가슴 청진기는 당시의 수많은 폐결핵, 심장병 및 복수가 차는 많은 환자들의 조기 진단과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는 1819년 <심장과 허파의 병을 귀로 들어 진단하는 법>이라는 최초의 책을 저술하여 유명해졌으나, 그 자신도 폐결핵으로 4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현재 사용되는 두 귀로 듣는 고무줄 청진기는 1852년 미국의 조지 간몬이 만들었다.

맥주 통 속 맥주의 양을 알기위해 맥주 통을 두드리거나 어린이들의 빈 통나무속의 공명(共鳴)소리를 전달하는 놀이가 타진법과 청진기의 발명이라는 근대 의학의 발전으로 이어질 줄은 어느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이 역시 단순한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소한 사건이나 힌트를 자신의 일과 결합하여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던 몇몇 선각자들의 예리한 응용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찬탄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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