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불쾌지수만 높인 정부·한전

폭염, 불볕, 찜통, 한증막과 같은 온갖 수식어를 붙여 올해 여름 무더위를 표현해도 모자라다 할 만큼, 처서(處暑)가 지났는데도 염천의 맹위는 기세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가 1994년 이후 가장 무더운 해라고 하지만 이미 가물가물해져서 그런지, 올 여름이 유난히 무덥게 느껴진다. 이러다간 추석을 한 달 쯤 뒤로 미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1980년 대 초만 하더라도, 에어컨은 기관장실이나 민원실에만 있었다. 밖에서 일을 보고 돌아오다 땀으로 범벅된 몸을 잠시 민원실에 들러 식히기도 했다. 이제 에어컨은 사무실마다 설치되고 웬만한 가정이면 다 가진 생활용품이다. 냉방병을 걱정하는 사람조차 있다. 일부 경로당이나 여름 쉼터에서는 에어컨을 ‘계속 켜자’, ‘이제 끄자’와 온도를 ‘좀 올리자’, ‘더 내리자’를 두고 논쟁까지 벌어진다고 한다.

가정용 전기료 폭탄… '징벌적' 표현만으로도 겁먹는 서민들

예전에는 여름철 실내온도를 27도 이상으로 유지하라고 하고, 에어컨 한 대의 전력소비량이 선풍기 30대와 같다며 절전을 외쳤으나 왠지 요즘은 들을 수 없으니, 전력사정이 좋아진 것은 틀림없다. 가정과 직장, 학교에서 전기료가 문제지 그런 걱정만 없다면 더위를 잊고 지낼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기료 부담에다, 절전이 애국이고 지구온난화를 늦추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입을 꽉 다물고 있는 에어컨을 바라보며 지친 날개로 더운 바람을 만들어내는 선풍기로 견디자니 덥기는 덥다.

올해 찜통더위, 열대야라는 말과 더불어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 말은 ‘가정용 전기료 폭탄’이다. ‘징벌적’이니 ‘폭탄’이니 하면서 마치 전기를 많이 쓰는 가정은 ‘처벌받아야 하는 응징의 대상이 되거나 전시상황이나 테러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폭탄을 맞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으니 겁먹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올해 여름, 일반 시민들을 더욱 무덥게 하는 처사가 꼬리를 물었다. 첫째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이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전기요금제 때문에 에어컨은 있어도 맘 놓고 켜지 못하고 손자가 왔을 때만 켜면서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이 바라보고 있다. 자칫 하다간 단가가 최고 11.7배나 되는 누진제 전기요금을 내야 한다니 불합리한 정도가 지나치다.

기껏해야 미국이 1.1배, 일본 1.4배, 대만 2.4배 수준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우리만큼의 누진제는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낮은 단가에 누진제가 아닌 업소나 상가에선 문을 열어둔 채 냉방까지 하는 곳이 있다지만 애꿎은 서민들은 찜통더위 속에 불쾌지수를 높이는데 거들고 있다.

둘째는 지난 8월 초, 정부 당국자는 “에어컨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때도 요금폭탄이 생긴다는 말은 과장이다. 벽걸이형 에어컨을 하루 8시간 사용하거나 스탠드 형 에어컨은 하루 4시간 정도 사용하면 월 요금이 10만원을 넘지 않는다”면서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요금인하나 체계변동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생색은 나지 않고 비난만 쏟아질 발표이기에 그랬는지 실무책임자의 입을 통하여 발표하는 정책책임자의 자세가 더 미웠다.

그러나 국민들의 원성이 계속되자 정부와 여당이 7~9월 한시적으로 누진제를 일부 완화해주겠다고 선심을 썼다. 버티던 산업통상자원부가 당‧청의 한마디에 입장을 바꾸고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이니, 과연 전기료 폭탄을 걱정하는 서민들의 처지를 생각하는 당국인지 의심스럽다.

한국전력 올 상반기 영억이익 6조3000억 성과급 잔치

셋째는 독점기업이 무거운 요금제를 책정하고, 서민들은 더위에 지쳐 허덕이는 사이에 상반기에만 6조3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리고 성과급 잔치를 했다는 보도는 더욱 무덥게 한다. 게다가 7월부터 총 100명의 직원을 미국에 해외 연수라는 이름으로 1인 당 900만원 가까이 들여서 보내기로 하고 일부 진행하다가 ‘전기료 폭탄’과 ‘외유성 호화 연수’라는 지적이 일자 중단했다는 것이다. 교수 3명의 강연료로 2억4000만 원, 기업과 시설 6곳의 견학 섭외비용으로만 8000만원을 썼다니 아무리 미래 산업에 드는 비용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엇나가는 행위를 누가 받아들일 것인가?

가정용전기료 누진제는 처음 시행당시 상황에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대 일반가정의 에어컨 보급률은 20%대였지만 지금은 80%를 넘었고, 각종 가전제품 사용은 꾸준히 증가했다. 이러함에도 갖가지 구실로 외면하다가 아우성이 하늘을 찌를 때면 한시적인 요금 감면이나 누진단계 완화 등 땜질처방만 되풀이 했다. 급기야 정부와 각 정당에서 개선책을 마련한다고 하니 이번에는 꼭 근본적인 처방이 나오기 바란다. 이왕이면 선선해지는 가을이 되기 전에 시원한 대책이 나온다면 힘껏 박수를 쳐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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