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찬의 꿈과 희망 이야기] 청춘 불태울 직장이 없다

무더위, 폭서, 폭염, 찜통더위, 땡볕더위, 불볕더위….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덥다. 모시 적삼, 베 잠뱅이, 부채, 죽부인, 계곡, 원두막…. 여름이면 생각나는 시원한 말들이다.

나만 덥겠는가? 새벽잠 놉을 얻어 텃밭 품앗이를 나갔다. 가뭄과 땡볕에도 잘들 버티고 있다. 더위에 무르익은 붉은 고추, 마른 땅에서 각개전투로 포복하는 고구마 줄기, 고소한 향기를 뿜어내는 들깻잎, 삶의 현장에서 나름대로 그들만의 달인이 되어 있다. 그 중에 유독 무성한 줄기와 부쩍 자란 키를 뽐내고 있는 놈들이 있다. 그 땡볕과 가뭄에도 유독 물기가 촉촉이 배어 있는 곳으로 뿌리를 박고 줄기를 뻗힌 노력의 결과다. 그 힘으로 잡초들을 물리친 승리의 대가다. 대견스럽고 고맙다. 농민들은 그들 속에서 더위를 잊는 법을 터득하나 보다.

한 때는 대학생들이 농촌 봉사활동을 통하여 이열치열 작전으로 무더위를 이겨내기도 했었다. 봉사의 보람이 있고 나름대로 청년의 의미와 새로운 생각을 더듬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요즘은 냉방시설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는 학생들이 많다. 추억과 보람과 낭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취업의 관문을 찾아야 한다.

경제성장이 지속되던 시기에는 각자 전공분야를 찾아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요즘처럼 어렵지는 않았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세계화 속의 무역경쟁에 앞서 대응하기 위하여 기업들 역시 기업구조와 신제품 출시에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

신제품의 상품 기간이 단축되고 구조적 변화 주기 또한 짧아졌다. 구성원들에게 신속한 대처능력, 새로운 사고와 발상, 업무능력 등을 요구하면서 근무연한도 짧아졌다. 새로운 지식, 사고, 정력적인 업무를 위한 신규직원의 채용 주기 또한 자연히 짧아지고 채용 인원도 줄어들게 되었다.

일반기업 재직자들은 힘든 업무, 짧아진 정년, 구조조정 등은 물론 퇴직 후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미되어 당연히 심리적 압박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돌파구로 찾아 나선 것이 공무원이 되는 길이다.
 
대졸 취업 준비생 10명 중 4명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5월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청년층 940여만 명 중 취업자 수는 400여만 명으로 취업률이 40% 정도라고 한다. 취업준비생은 62만여 명으로 전년보다 늘었다고 한다. 경제 불황과 기업들의 불안한 구조조정 속에서 대졸자들은 안정적인 공무원의 길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시 공무원 필기에 무려 90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직급에 따라 서류접수에 최고 170여대 1의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50대에 그 수십 대 일의 공무원시험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점차 증가하는 심각한 구직난은 평생을 대비할 청년 구직자들을 또다시 국가고시라는 시험에 지치게 하고 있다. 일자리 환경이 나빠지면서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추세가 더 심화된 것으로 분석된단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최근 음식·숙박업과 일부 서비스업 분야에 취업이 늘었으나 저임금 때문에 어떻게든 다른 일자리로 옮길 것이라 한다. 일반기업의 짧은 재직기간과 미래에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공무원시험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오랜 기간에 걸친 부모들의 뒷받침과 젊은이들의 노력의 대가가 공무원시험 응시라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 다양한 전공분야에서 학문을 익힌 만큼 각계각층의 전문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보람과 즐거움을 찾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한 국가행정 분야도 당연히 전문화되고 발전되어야 하지만, 안정적인 직업으로서 공무원 시험에 심각한 수준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외국에서는 보기 드문 한국적인 특이현상이라고들 한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 격차를 줄이면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너도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9급 공무원에 응시하는 데 대해 공무원 채용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직장을 옮기는 것이 자연스런 사회현상이 되도록 바뀌어야 한다고도 한다. 어떤 방안이든 국가나 기업이 단기간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취업을 위하여 졸업을 연기하거나 유예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공무원시험이나 자격증 취업을 위하여 1~2년을 더 시간과 사교육비를 투자해야 한다. 공무원시험에 응시한 10명 중 9명은 실패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합격률은 더 낮아진다고 한다.

신지식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패기 있게 청춘을 불태워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없어 고민한다면 국가와 국민이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가뭄으로 메마른 땅에서 허덕거리는 농작물에게 물을 주듯이 국가 미래의 새싹들에게 취업이라는 단비를 내려주어야 한다. 대학과 관련 부처에 대한 예산지원과 형식적인 정책만으로는 안 된다.

대기업들은 유아독존 격으로 독주하지 말고 중소기업들을 이끌어 그들의 국제 경쟁력도 제고시켜야 한다. 국가는 많은 중소기업들을 활성화하여 취업의 밭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그 밭을 일구어 가꾸는 것은 청년들의 몫이다. 기성세대는 중소기업에서도 땀 흘리며 보람을 얻을 수 있도록 국민의식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정부, 기업, 국민이 한 마음으로 갈증에 허덕이는 청년들에게 촉촉한 물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농작물이 축축한 물기를 따라 뿌리를 뻗어 가듯이 취업 준비생들이 갈증을 해결시켜주는 직업을 찾아 손길을 뻗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 길이 공무원이 되는 길이든 직장인이 되는 길이든. 그러나 공무원시험이 더 이상 취업문으로 가는 외나무다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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