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웅의 경제포커스] 한국일보 미래기획단장 | 부국장

직업을 서열화하는 게 바람직하진 않지만, 예로부터 판·검사는 의사와 함께 가장 선호하는 직종 중의 하나다. 필자가 어린시절 학교 성적을 잘 받아오면 할아버지와 친인척 어른신들은 “커서 판검사 되겠네”라고 습관적으로 말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확한 통계를 내긴 어렵지만 매년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사회초년생 중 최상위 1% 이내의 인재들이 판·검사가 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요즘 신문 지상을 뒤덮고 있는 법조계 비리를 보면 답답한 마음을 가눌 수 없다. 우리나라 최고 수재들이 모여 있는 법조계의 행태가 너무 한심하기 때문이다.
 
‘정운호 게이트’의 발원자인 최유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서울고등법원 판사와 전주지방법원에서 부장판사를 지낸 엘리트다. 이런 최 변호사는 유사 수신업체인 이숨투자자문 송창수 대표의 보석 및 집행유예를 받아주겠다며 50억원, 도박 혐의로 구속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사장의 보석 석방 대가로 50억원 등 총 100억원 상당의 부당 수임을 한 혐의로 구속됐다. 모두 선후배 판사들을 대상으로 부당 구명 로비를 해주겠다는 조건이다.
 
최 변호사는 사건 의뢰인들이 모두 재범에다 도덕적으로도 비난 받을만한 일을 저질렀다는 약점을 십분 활용, 통상 수임액의 수십 배를 받아 챙기는 기민함(?)을 보였다. 현직 선후배 판사들을 대상으로 부당한 로비를 벌였을 것을 생각하면 ‘과연 최 변호사가 현역판사 시절에 내린 판결은 공정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정운호로부터 고가 외제차를 받고, 딸의 미인대회 수상까지 지원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현직 부장판사도 최 변호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사채왕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수수해 구속된 현직판사 사건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런 추문이 잇따르고 있어 법원의 권위와 위상은 추락할대로 추락했다.
 
검사 쪽은 더욱 심하다. 넥슨의 뒤를 봐주는 대가로 대학동창 김정주 회장으로부터 주식과 승용차, 해외여행 등 각종 특혜를 받은 진경준 현직 검사장의 사례는 부패한 검찰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여기에 특수통 전문가라는 홍만표 전 검사장은 고액 수임, 탈세, 부당 변론 등의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예전 ‘그랜저 검사’는 오히려 애교로 보일 정도다.

이것뿐이 아니다. 현역 부장검사의 부당한 업무 지시와 강압으로 후배 검사가 자살하는 등 요즘 검찰은 개혁대상 1호로 꼽히고 있다.

판사와 검사는 일반적인 공직자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법을 수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최후의 보루다. 검사에게는 개인의 자유마저 강제할 수 있는 기소독점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이 있다. 판사에게는 법률과 양심에 근거해 개인의 죄를 판결하는 준엄한 권한이 주어져 있다. 그래서 이들에겐 더욱 정의롭고 공정하며, 깨끗한 삶이 요구된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에서 보듯 적잖은 검사와 판사들은 국가가 부여한 이 신성한 권한을 개인의 영달이나 조직의 안위를 위해 쓰고 있다. 퇴직 후에는 전관예우라는 잘못한 방법으로 개인 치부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나라 상위 1%의 인재들이 판·검사 시절 쌓은 지식을 범죄자의 잘못을 대변해주고 돈을 받는 비도덕적인 일에 매진한다면 그것은 죄악이다. 이래선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 
 
물론 모든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그렇지는 않다. 적잖은 인권변호사와 양심적 변호사들이 있지만, 그 비율이 미미하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역설적이지만 판·검사는 현역시절 유능할수록, 높은 직책에 올라갔을수록 범죄자들의 고액 부당 수임의 유혹이 더 강하게 오는 구조다.

개인적 의견으로 사법고시나 로펌 수료와 동시에 아예 변호사 업종과 판·검사 업종을 완전 분리해, 이들 업종 간 교류를 차단하는 방법은 어떨까 싶다. 변호사 업종으로 갈 경우 계속 변호사 일만 하고, 판·검사는 퇴직할 때까지 판·검사 관련 일만하는 방식이다. 판·검사로 퇴직해도 나중에 변호사로 진출하지 못하게 제도화하는 것이다. 대신 판·검사의 임기를 보장하고, 은퇴하는 판·검사에 대한 노후 대책을 마련해 준다면 못할 것도 없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