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이슈추적 – 학교 앞 회전교차로] <下> 낮은 시민의식이 근본적 문제

선진국형 로터리 교통체계인 '회전교차로'는 2010년 이후 본격 도입돼 올해까지 전국에 460곳 이상 설치됐다. 감속 주행으로 교통사고를 줄이고, 신호체계가 없어 교통흐름이 원활해진다는 장점 때문이다. 이 회전교차로가 학교 앞 통학로에 생기면 어떨까. 회전교차로가 설치된 세종시 내 3개 학교 학부모 일부는 회전교차로 이용방법 미숙지, 시민의식 결여 등 보행자를 우선시하지 않는 통학환경에 대해 지난 1년 여간 민원을 제기해왔다. 결국 고운초는 기존 회전교차로를 4지 횡단보도로 개선키로 했다. 본보는 학교 앞 회전교차로가 가진 '딜레마'에 대해 <상>·<하>로 나눠 기획 보도한다. <편집자주>

지난 22일 고운초등학교 방학식 날. 초등학생들이 한껏 들떠 1학기 마지막 등교에 나섰다. 책가방을 메고 학교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몇몇 아이들은 엄마 손을 잡고 함께 등교했다. 이중 고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간혹 자전거를 탄 모습도 보였다.

이날 오전 8시 20분. 아이들이 한참 몰리기 시작하자 회전교차로의 진·출입구 교통지도를 담당하는 녹색어머니회 학부모와 배움터지킴이들의 염려스러운 목소리가 커졌다.

이이들 걸음 빨라질 수록 노란깃발 움직임도 빨라져 

학교를 눈앞에 둔 아이들의 걸음이 빨라질수록 노란 깃발을 든 학부모들의 손짓도 빨라졌다. 이날 학교 앞에서는 어른 7명이 아이들의 통학 안전을 유도했다.

등교시간과 맞물린 출근 시간대는 회전교차로의 차량 통행이 잦아 혼잡했다. 이미 진입한 차량이 우선임에도 머리를 들이미는 차량들로 교통흐름이 끊겨 교차로를 돌던 차량들이 도미노처럼 멈춰 서기 일쑤였다.

회전교차로는 교차로 내부 중앙에 원형 교통섬을 두고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도록 설계된 교차로를 말한다.

이때 진입차량은 속도를 줄여야 하고, 이미 주행 중인 차량을 방해하면서 진입해선 안 된다. 회전교차로 내 여유 공간이 생길 때까지 양보선에 멈춰 기다려야 하는 게 운전자 수칙이다.

하지만 이런 규칙은 무시되기 십상이다. 양보운전은 물론이고 들어갈 때 좌회전, 나갈 때 우회전 깜빡이를 켜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직진 차량이 서행 없이 진입한 뒤 교차로를 돌고 있던 차량을 방해하는 등 등교시간 30분 간 총 4번의 경적이 울렸다.

선진국형 회전교차로를 도입했다고는 하나 시민의식은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행정도시 특성상 수많은 공직자들이 거주하는 도시답지 않은 뒤떨어진 교통의식이다. 

학부모 교통지도 봉사자 “지도하는 엄마들도 위험한 상황”

이날 1시간가량 교통지도를 마친 학부모 A씨는 “교통지도에 쓰이는 녹색어머니회 깃발을 그냥 치고 가는 차도 있다”며 “지도하는 엄마들까지 사고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다”고 했다. “덤프트럭이건 승용차건 운전자들이 학교 앞인데도 불구하고 신호위반을 하는 등 교통법규에 대한 인식이 없다”고도 했다.

이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지난해부터 회전교차로 등과 관련해 시청에 민원을 넣어왔다. 1년 여간 통학안전 문제를 놓고 학부모 모임도 수차례 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학부모들은 직접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교통지도에 나섰다. 학교 앞 회전교차로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

A씨는 “지난해부터 개선을 요청했는데 이제 서야 신호등으로 교체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처음에는 원형 육교 등을 요구했지만 ‘육교 없는 세종시’를 이유로 거부돼 횡단보도 신호등으로 결정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하교시간이 12시부터 오후 시간까지 제각각이어서 통학위험은 언제나 있다”며 “적어도 아이들이 건널 때만큼은 부모 된 마음으로 양보운전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배움터지킴이 “어제도 사고, 교차로 내 접촉사고 빈번”

아침마다 나이가 지긋한 배움터지킴이들은 학부모와 함께 교통 지도에 나서고 있다.

배움터지킴이는 학생지도 등 관련 경험을 보유한 퇴직 공직자 혹은 상담사들이 맡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위촉돼 내방객 관리 등 학교 경비와 순찰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배움터지킴이 B씨는 “어제도 교차로 내에서 사고가 났다”며 “차대 차 접촉사고가 빈번하다”고 했다.

등교시간과 출근시간이 맞물려 학교에 데려다 주려는 학부모 차량과 출근 차량이 뒤엉켜 혼잡이 발생, 교차로 내 작은 접촉사고가 잦다는 설명이다.

그는 “교통량이 오전과 낮 시간에 몰려있긴 하지만 문제는 아이들의 등교 시간”이라며 “애초부터 학교 앞에 회전교차로를 설치한 것이 잘못”이라고 했다.

고운초 학생은 900여 명. 유치원과 중학교가 각각 250여명과 600여명으로 모두 합해 1700명이 넘는다.

B씨는 “유·초·중학교 학생들이 한꺼번에 모여 혼잡할 뿐 아니라 교차로 주변 불법주차도 문제”라며 “신호등 횡단보도 체계로 바꾼 뒤 나타날 수 있는 교통지체는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교통지도가 끝난 뒤, 늦은 등교에 나선 아이들은 회전교차로 횡단보도 앞에서 언제 건너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어른이라고 다를까. 어린 아이의 손을 잡은 학부모도 같은 처지였다.

교통전문가 "보행자 많은 학교 앞 설치 지양, 신호체계 보완 연구 중"

회전교차로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전문가의 의견은 어떨까.

한국교통연구원(KOTI) 김영춘 연구원은 “세종시 회전교차로는 속도 감속 구조를 갖고 있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회전교차로에서는 진입 속도가 시속 30㎞이하여야 한다. 그러나 세종시에 설치돼 있는 회전교차로는 자연스럽게 속도가 줄어드는 S자 형태의 진입 선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실정.

김 연구위원은 “보행자가 많은 곳은 회전교차로 설치를 지양해야 하고, 자문을 할 때도 학교 앞에는 지양하는 게 좋다는 입장”이라며 “무엇보다 보행자의 안전을 우선시 하는 운전문화가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는 점이 큰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교통연구원에서는 회전교차로에 신호체계를 넣는 것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회전교차로의 이점과 보행자 안전까지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했다.

그는 “회전교차로의 횡단보도를 방지 턱처럼 올라오는 구조로 설치하도록 자문하고 있다”며 “아직 세종시는 그렇게 된 곳이 거의 없지만 이런 부분을 개선해 나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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