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경기도 야당 아이디어 받아 지방장관 도입

김학용 주필
지금 경기도에서 주목할 만한 지방자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지방에선 처음으로 ‘지방장관(地方長官)’을 두고 이 자리에 도의원을 임명하는 이른바 ‘경기도형 의원내각제’가 추진되고 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올 가을 지방장관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남경필 경기지사 “올 가을부터 지방장관 도입”

경기도 실국장과 부지사 중간급의 지방장관을 두고 그 자리에 도의원을 임명하는 방식이다. 경기도의회에서 5~10명의 장관을 선출, 도정(道政)에 직접 참여시키는 제도다. 현행법상 지방의원은 겸직이 어렵고, 공무원 업무에 지방의원이 참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경기도는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지방장관제를 실시해 보겠다는 계획이다. 지방장관직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하면 시행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법에도 없는 지방장관인 만큼 업무의 책임과 권한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실효성이 어떠할지도 아직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의 실험은 주목받을 만한 하다. 무엇보다 이 제도의 ‘추진 과정’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 지방장관제는 남 지사 공약인 ‘연정(聯政)’의 연장선에서 추진되고 있지만 남 지사 자신의 아이템이 아니다. 야당(더민주당) 도의원들이 요구하고 남 지사가 이를 받아들여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야당 의원 아이디어 수용해서 ‘연정 대표 상품’으로

경기 지역의 한 신문은 지방장관제를 ‘연정 시즌 2’의 대표 상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난 2년 간 실시해온 ‘사회통합부지사(정무부지사)’는 남 지사 자신의 연정 공약을 처음 실천한 정책 상품이었다. 그런데 그 후속작인 지방장관제는 야당 의원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남 지사가 이를 전격 수용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지방장관제를 제안한 더민주당 소속의 양근서 경기도의원은 작년 4월에는 “남 지사가 겉으로는 연정으로 권력을 나누겠다며 의회를 존중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잦은 말바꾸기로 의회를 무시하고 약화시키며 의회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남 지사의 연정을 비판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지난 5월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는 의원내각제를 하면서 의원들이 장관을 하고 있다. 남 지사는 경기도만의 의원내각제를 시행할 의향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남 지사가 “현행 지방자치법상 도의원의 겸직은 불가능하게 돼 있다”고 답변하자, 양 의원은 “직제 상에만 존재하는 무보수 경기도형 장관직은 도의원도 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남 지사는 다음날 도의회 답변을 통해 “지방장관 신설문제와 관련해 명예직 무보수 등 내각제 운영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대화를 해 좋은 방안을 모색했으면 하는 생각”이라며 야당 의원의 제안을 적극 수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마치 유럽 등 선진국 지방의회 모습을 연상시킨다. 

야당 “‘계약서’ 제대로 쓰지 않으면 연정 안해”

우리의 정치와 지방자치 수준으로 보면 지금 경기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신기할 정도다. 필자는 남 지사가 꾸미는 ‘고도의 정치쇼’에 야당까지 넘어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지방장관제를 제안한 양근서 의원에게 연락, 남 지사에 대한 평가를 부탁해 봤다. 양 의원은 “남 지사는 정치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합리적 제안을 하면 받아들이는 사람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연정을 성공작으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전반기 2년의 연정은 모양만 연정이지 내용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후반기 연정에는 남 지사와 ‘연정 계약서’를 다시 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남 지사의 지방장관제 수용은 야당이 요구하는, 더 까다로운 계약서에 도장을 찍겠다는 뜻이다.

경기도 연정은, 주민들이 지방의회에 요구하는, 도지사에 대한 감시 기능을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양 의원도 그 점을 걱정했다. “경기도의회는 여소야대 구조다. 도지사를 제대로 감시하라는 게 도민의 뜻으로 볼 수 있다. 연정 참여는 도민들 뜻을 왜곡시킬 수 있다. 연정에 참여하는 한, ‘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지방장관제가 성공할지는 알 수 없다. 오늘자 경기지역 유력 지방신문 두 곳의 사설 논조도 시각 차이가 있다. 한쪽은 지방장관제를 환영한 반면, 다른 쪽은 실효성에 의문을 달고 있다. 그러나 언론에선 지방정치에서조차 싸움질만 하는 모습이 크게 줄었다는 것만으로도 연정을 긍정평가하는 편이다.

대권 주자 남경필의 ‘소통쇼’라고 하더라도

남경필 지사는 연정을 통해 지방자치가 무엇이고 소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치인이라면 한결같이 소통을 외치지만 정말 소통할 줄 아는 정치인은 찾기 힘들다. 소통이 가능해야 상대와 대화를 통해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 남 지사는 도지사로서 그걸 보여주고 있다.

남 지사는 2년 전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자 자신의 공약대로 야당(더민주)에 정무부지사 추천권을 주었다. 더민주는 처음엔 남 지사의 술수에 말려드는 것 아닌가 하는 경계감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국회의원 출신을 추천하여 집행부에 보냈다. 정무부지사가 3개국에 대해 실질적 권한을 가지고 이끌도록 하면서 지방의 연정실험이 시작됐다.

연정과 지방장관제가 대권을 염두에 둔 남 지사의 전략이고 ‘소통 쇼’라고 해도 그를 인정해줘야 한다. 소통이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도 해도 여소야대 구조에서 도지사와 도의회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무엇인가를 실험해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대전시 충남도에서 볼 수 없는 지방자치

대권 주자 남경필에 대한 헌사(獻辭)처럼 돼버렸다. 누군가 왜 편파적인 글을 쓰느냐고 따져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남 지사가 이끄는 경기도가 우리 지역 수준과는 너무 대비 된다.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우리 지역에서는 이런 지방자치를 구경할 수 없다. 

한쪽에선 도지사와 도의회가 6년째 ‘불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갈등이 깊어지면 도지사 이름을 딴 특위까지 등장하지만 도지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른 한쪽은 집행부에 아무 말도 못하는, 마치 시장비서 같은 의원들로 채워져 시의회가 존재하는지조차 시민들은 모를 지경이다. 누가 시의장이 되든 시장의 하수인이 되고 만다. ‘무기력한 시의회’ ‘무능한 시의장’은 이제 전통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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